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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Oct 26. 2020

복도를 걷다가 넘어지면


수능 공부하랴, 병원에서 치료받으랴 정신없었던 고등학교 마지막 반년의 시간. 4월에 복학해서는 여름 방학만을 기다리면서 학교를 다녔고, 여름 방학 이후에는 수능이 끝나고 어서 졸업하기만을 기다리면서 11월에 수능을 봤다. 사실 4월 초 복학을 한 시점부터 11월 수능을 보기 전까지의 이 시간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느 정도냐하면 몇 반이었는지, 우리 반은 몇 층에 있었는지, 학교 구조는 대략 어땠는지, 우리 반에는 어떤 얼굴들이 있었는지 등이 기억이 안 난다. 마음이 참 힘들었던 시기여서 그냥 이 시간에 대한 기억을 본능적으로 지워버린 것 같기도 하다.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의 배려로 나는 ‘깍두기 학생’으로서 학교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계단 대신 교사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닐 수 있었고, 아침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조금 늦게 등교할 수 있었다. 야자와 각종 방과 후 학습이 암묵적으로 필수인 분위기였는데, 나는 수업만 7-8교시까지 듣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자리도 늘 뒷문 바로 앞자리여서 한 달에 한 번 있는 짝 바꾸기에 참여하지 않아도 됐다. 그저 어색하게 내 옆으로 짐을 싸들고 오는 얼굴과 인사하면 됐다.


늘 겉도는 느낌이 들었던 쉬는 시간, 점심시간 보다도 차라리 수업 시간이 마음은 더 편했지만,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들이 불편해하시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한 명씩 앞으로 나와서 칠판에 문제를 풀 때 나를 앞으로 불러야 하나 고민하시는 것 같았고, 돌아가면서 지문 해석을 할 때도 학교를 오래 빠진 나를 시켜야 하나 고민하시는 것 같았다. 사실 나 하나에 무슨 관심을 그렇게 가졌을까 싶으면서도 괜히 친구들, 선생님들 모두 나를 불편하게 여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늘 주변에 무슨 일이 생길까 경계하고 긴장하느라 수업 시간에 단 한 번도 졸지 않았다. 고등학교 첫 2년 동안은 그렇게 졸았는데! (심지어 졸지 않기 위해 야자 시간에 씹던 육포를 그대로 입에 물고 잠에 든 적도 있었다)


그때 내 최대 공포는 긴 학교 복도를 걷다가 넘어지는 것, 그리고 누군가 내가 그 긴 복도를 걷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밤에는 내가 학교 복도처럼 생긴 긴 복도를 걷는 것을 수많은 시선들이 지켜보는 악몽을 자주 꿨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악몽이다.


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했다. 대학에 가야했기 때문이다. 대학은 내게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20살이 되어 대학에 가면, 기적적으로 내 몸이 새로운 시작을 인지해서 알아서 다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아마 그 6개월의 시간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늘 스스로에게 조금만 더 버티자고 되뇌며 그 시간을 보냈다. 반년만 버티자. 대학만 가면, 새로운 시작이다. 새롭게! 건강하게! 완벽하게, 아주 완벽하고 확실하게 나는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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