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공부하랴, 병원에서 치료받으랴 정신없었던 고등학교 마지막 반년의 시간. 4월에 복학해서는 여름 방학만을 기다리면서 학교를 다녔고, 여름 방학 이후에는 수능이 끝나고 어서 졸업하기만을 기다리면서 11월에 수능을 봤다. 사실 4월 초 복학을 한 시점부터 11월 수능을 보기 전까지의 이 시간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느 정도냐하면 몇 반이었는지, 우리 반은 몇 층에 있었는지, 학교 구조는 대략 어땠는지, 우리 반에는 어떤 얼굴들이 있었는지 등이 기억이 안 난다. 마음이 참 힘들었던 시기여서 그냥 이 시간에 대한 기억을 본능적으로 지워버린 것 같기도 하다.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의 배려로 나는 ‘깍두기 학생’으로서 학교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계단 대신 교사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닐 수 있었고, 아침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조금 늦게 등교할 수 있었다. 야자와 각종 방과 후 학습이 암묵적으로 필수인 분위기였는데, 나는 수업만 7-8교시까지 듣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자리도 늘 뒷문 바로 앞자리여서 한 달에 한 번 있는 짝 바꾸기에 참여하지 않아도 됐다. 그저 어색하게 내 옆으로 짐을 싸들고 오는 얼굴과 인사하면 됐다.
늘 겉도는 느낌이 들었던 쉬는 시간, 점심시간 보다도 차라리 수업 시간이 마음은 더 편했지만,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들이 불편해하시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한 명씩 앞으로 나와서 칠판에 문제를 풀 때 나를 앞으로 불러야 하나 고민하시는 것 같았고, 돌아가면서 지문 해석을 할 때도 학교를 오래 빠진 나를 시켜야 하나 고민하시는 것 같았다. 사실 나 하나에 무슨 관심을 그렇게 가졌을까 싶으면서도 괜히 친구들, 선생님들 모두 나를 불편하게 여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늘 주변에 무슨 일이 생길까 경계하고 긴장하느라 수업 시간에 단 한 번도 졸지 않았다. 고등학교 첫 2년 동안은 그렇게 졸았는데! (심지어 졸지 않기 위해 야자 시간에 씹던 육포를 그대로 입에 물고 잠에 든 적도 있었다)
그때 내 최대 공포는 긴 학교 복도를 걷다가 넘어지는 것, 그리고 누군가 내가 그 긴 복도를 걷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밤에는 내가 학교 복도처럼 생긴 긴 복도를 걷는 것을 수많은 시선들이 지켜보는 악몽을 자주 꿨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악몽이다.
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했다. 대학에 가야했기 때문이다. 대학은 내게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20살이 되어 대학에 가면, 기적적으로 내 몸이 새로운 시작을 인지해서 알아서 다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아마 그 6개월의 시간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늘 스스로에게 조금만 더 버티자고 되뇌며 그 시간을 보냈다. 반년만 버티자. 대학만 가면, 새로운 시작이다. 새롭게! 건강하게! 완벽하게, 아주 완벽하고 확실하게 나는 행복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