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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Jun 04. 2020

20살, 넘어질 것 같이 위태롭게 대학에 가다

힘들게 고3 생활을 버티고, 대학을 가게 되었다. 오직 ‘대학에 간다’는 결심 하나로 고3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절뚝거리면서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매점을 가기는커녕 점심시간에도 급식실에 함께 가지 못 하는 학교 생활은 매일매일이 불안의 연속이었다. 힘들 때면 ‘대학에 가기만 하면 다 나아질 거야’라고 되뇌었다. 그건 마치 주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문을 하도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나는 그것이 사실이 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물론 몸은 그렇게 쉽게 낫지 않았다. 수능을 치고, 해가 바뀌고, 합격 발표가 나고 날이 점점 풀리는데도 내 몸은 큰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혼자 걷기 두려울 정도로 위태롭게 절뚝거리면서 걸어야 했고, 잠깐도 뛰지 못했으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두렵고 힘들었다. 밖에 홀로 나가는 것이 늘 두려운 상태였다. 늘 넘어질 것 같이 위태로웠다.

2월 중순, 개강 전 오리엔테이션 엠티에 가게 되었다. 수술 한 이후 처음으로 집이 아닌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것이었다. 모든 것이 걱정이 되었다. 2박 3일의 엠티였으나 2박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아 졸업식 핑계를 대고 두 번째 날 조인하기로 했다. 인터넷에 오리엔테이션 엠티에선 무엇을 하는지 몇 시간이고 검색했다. 정확한 일정이나 정보가 있을 리가 없었음에도 불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엠티 당일, 아직 날이 추웠는데도 남들 앞에서 신발을 신고 벗는 것이 두려워서 그나마 가장 신고 벗기 쉬운, 얇은 천으로 된 벤시몽 운동화를 신고 집합 장소인 학교로 갔다. 얇은 신발을 신고 야외에서 버스를 기다리자니 발이 너무 시렸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엠티 장소로 가게 되었다. 가기 전에 걱정했던 대로 야외 활동이 많았다. 보물 찾기를 하느라 언덕 위로 올라가야 했는데 가파른 경사를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 조 선배에게 ‘저 다리를 다쳐서 못 올라갈 것 같아요’라고 얘기했다.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랐지만 그는 흔쾌히 ‘그럼 올라가지 말고 아래 있자. 나도 힘든 거 싫어해’라고 말했다. 그 한 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걸 보면 그 말이 어지간히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약간 고등학교에서처럼 ‘깍두기’ 같은 존재로 어찌어찌 밖에서 보내는 첫 밤을 무사히 넘겼다.
 
그리고 3월, 개강 시즌이 되어 본격적으로 학교에 가게 됐다. 학기 초라 이런저런 식사 자리, 술자리가 많았다. 내 걸음을 본 동기와 선배들은 ‘다리가 왜 그래?’라고 자주 물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발목을 심하게 다쳤는데 좀 오래가네요’라고 답했다. 


내가 시간표를 짜는 가장 큰 기준은 강의실 간의 거리였다. 아무리 듣고 싶은 강의가 있어도 이전 강의실 건물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강의를 신청하지 않았다. 강의 후기가 조금 좋지 않더라도 쉬는 시간 15분 내에 내 느린 걸음걸이로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강의실에서 열리는 수업을 선택했다. 한 번은 우연히 수업이 겹치게 된 동기들과 자연스럽게 함께 다음 강의실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전 수업의 교수님께서 수업을 늦게 끝내 주셔서 조금 급하게 다음 건물로 이동해야 했다. 동기들은 모두 시간을 확인하고는 점점 빠르게 걷기 시작했고, 나는 뒤쳐지기 시작했다. 특히나 중간에 계단을 한 번 올라가야 했는데, 그 높은 계단을 올려다보는 순간 손바닥에 땀이 죽 나면서 가슴이 쿵, 떨어졌다. 그 순간에는 그냥 수업이고 뭐고 그 상황에서 도망쳐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뒤쳐지자, 결국 모두들 내가 계단을 잘 오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나와 함께 가던 동기들 모두를 지각하게 만들었다. 창피하고 미안한 마음에 그다음 강의 내내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날 이후로는 혹시나 비슷한 일이 생길까 봐 늘 남들보다 먼저 가방을 챙겨서 혼자 강의실을 빠져나와서 그다음 강의를 위해 천천히 걸어가곤 했다. 


그러나 사실 이 때는 내가 2학기가 되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교적 우울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집, 고등학교, 병원이 아닌 야외에서 걷고 활동하는 것이 처음이라 당황할 만한 일이 생겨서 자주 놀랐던 시기지, 오히려 온갖 공포가 생기기 전, 무서운 것이 없어서 뻔뻔했던 시기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술도 안 마셨지만 점점 술도 마시고, 미팅도 나가고, 소개팅도 나가봤다. 


물론 그러면서도 일주일에 두 번씩 병원에 가서 재활 치료를 받았다. 이 때는 동기들에게도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어차피 2학기가 되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그땐 정말 여름 방학이 지나고 나면 다 나아서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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