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받고 나서 엉망인 상태로 병실 침대에 누워있을 때, 퉁퉁 붓고 마비가 와서 손가락을 움직이기도 힘들 때, 그때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가장 많이 왔다. 괜찮냐, 학교 언제 오냐, 수술 얘기는 들었다, 그렇게 아픈 줄 몰랐다, 얼른 돌아와라, 보고 싶다, 병문안 가도 되냐, 등. 침대 등받이의 경사를 올려서 기대앉아있을 수 있게 되자 나는 그 연락들에 천천히 답장을 했다.
또 답장이 왔다. 드디어 연락이 왔네, 괜찮냐, 병원 주소를 말해줘라, 등. 병문안을 가도 되냐는 문자들에는 하나같이 오지 말라고 답을 했다. 엄마에게도 친구들이 오지 않게 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해 놓았다. 내 모습이 창피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끼던 수면 시력 교정 렌즈를 낄 수 없어 대충 병원 1층 조그만 안경점에서 대충 맞춘 못생긴 갈색 안경은 내 눈을 원래 크기보다 반 이상 작아 보이게 했다. 샤워를 하지도 못 해서 온 몸에는 각질이 하얗게 일어나다 못해 쌓여 있었고, 머리는 오래 감지 못해 간지럽지도 않은 상태로 그냥 질끈 묶고 있었고, 얼굴도 여드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게다가 나는 병문안을 온 친구와 1층 카페로 내려가 음료 한 잔 할 수 있기는커녕, 기대지 않고는 혼자 앉아있지도 못 했다. 누군가 그런 약한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싫었다. 상상만으로도 위축됐다. 그래서 병문안을 모조리 거절했다. 거의 반년 입원해 있는 동안 병원에 방문한 친구는 퇴원 직전에 온 단 한 명뿐이었다. 그러면서 학교 친구들의 연락도 점점 뜸해졌다. 매일 연락을 주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점점 문자 간격이 길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복학했을 땐 학교에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매일 학교에 가면 쉬는 시간, 점심시간이 가장 두려웠다. 나는 늘 혼자였고 대화에 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친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반연간의 공백은 컸다. 친했다고 생각했던 친구들 몇 명과는 아예 대화를 하지 않는 사이가 됐다. 결국 복학 이후 고3 생활 1년 내내 정말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 하나 없어 그렇게 졸업을 했다. 오히려 졸업을 하고 대학에 가서 다시 연락하면서 친해진 고등학교 동창들은 있는데, 그때는 그렇게 외롭게 학교를 다녔다.
나는 학생의 신분으로서는 처음으로 수업 시간이 쉬는 시간보다 더 좋았다. 왜냐하면 쉬는 시간에는 함께 매점에 가고, 복도에서 장난치고, 어제 야자 시간에 있던 내가 모르는 얘기를 하는 반 친구들을 보면서 소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점심시간이 하루 중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다. 점심시간은 한 시간이니까, 괴로운 쉬는 시간의 6배나 되는 시간이었다. 반 친구들은 급식실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급식실은 3학년들이 수업을 듣는 건물과는 다른 건물에 있어서,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그걸 내가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혼자는 못 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남들의 귀한 급식 시간을 나에게 투자하라고 할 만큼 뻔뻔하지도 못 했고, 우리 우정에 자신이 있지도 못 했다. 그래서 엄마는 도시락을 아침마다 챙겨줘야 했다. 난 또 유난을 떨면서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반찬을 늘어놓고 호화롭게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주로 우유와 프로틴 파우더를 싸갔다. 그걸 먹고 나면 느릿느릿 화장실로 가서 천천히 양치를 했다. 아프기 전에는 너무 쏜살같이 지나가던 점심시간이 지독하게도 천천히 흘러갔다. 그래서 나는 양치를 매우 느리게 했다. 두 번 씩 한 날들도 있었다. 교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그렇게 양치를 느릿느릿하고 있는데 예전에 알던 친구가 양치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왔다. 걔는 나한테 인사를 하더니 그 날이 자기 생일이라고 했다. 나는 생일 축하한다고 했다. 걔는 갑자기 자기가 예전부터 나한테 생일 선물을 받고 싶었다고 했다. 난 좀 당황했다. 그런데 그 날이 자기 생일이라는 애 앞에서 싫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난 그랬냐고 물었고, 걔는 원래 자기가 나랑 친했고, 나는 친한 친구들 생일 선물도 잘 챙겨서 자기도 나에게 생일 선물을 받아보고 싶다고 손을 닦으면서 얘기했다. 난 걔의 당당함에 놀랐지만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 날 집에 가자마자 선물을 챙겨서 그 다음날 걔의 반에 절뚝거리면서 찾아가서 선물을 전해줬다. 걔는 활짝 웃으면서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로 선물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걔랑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마디도 한 적이 없다.
난 그게 좀 아쉽고도 놀랍다. 2년 9개월을 함께 알아놓고 반년 동안 아무도 아닌 사이가 된 것.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결국 아쉽지만 돈독한 고등학교 친구 하나 남지 않게 되었다. 반년에 한 번 정도 보는 친구들 두셋은 있지만, 오히려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친구들은 곁에 더 남아 있는데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관계는 그렇게 흩어져버리게 되었다. 그건 그들이 내가 가장 아프고 불편할 때 나의 옆에서 날 봤기 때문에 내가 피해 서일 수도 있고, 내가 부재했던 반년 동안 공고해진 그들의 틈을 더 이상 내가 파고들 수 없게 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시간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게 된 건 노력하지 않으면 유지되는 관계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오래 지속시키고 싶은 관계가 있으면 내가 먼저 한 번씩 연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