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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Apr 29. 2020

왜 하필 나야


아프기 전, 시험을 보는 전 날이면 밤에 침대에 누워서 온 마음을 다해서 두 손을 맞잡고 기도를 했다. 시험 잘 보게 해 달라고, 공부한 문제들만 쏙쏙 나오게 해 달라고, 전교 1등 하게 해 달라고. 딱히 기도의 대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냥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절대자들을 떠올리며 나의 행운을 위해 기도했다.

병원에서는 매일 밤 그 어느 때 보다도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두 손을 맞잡을 수 없으니 두 눈을 꼭 감고 기도를 했다. 


처음에는 꿈에서 깨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 제발, 제발, 제 몸이 움직이지 않는 이 상황이 전부 꿈이게 해 주세요. 내일 아침이 되면 꿈에서 깨게 해 주세요. 그리고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 확실해 진 다음부터는 걷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다. 제발, 제발, 제발, 걸을 수 있게 해 주세요. 학교에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원래처럼 건강하게 해 주세요. 그렇게만 된다면, 평생 열심히 살 수 있어요. 평생 나쁜 짓 안 하고 착하게 다른 사람들 도우면서 살 수 있어요. 제가 버는 돈, 평생 기부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 수 있어요. 한 번만 기도를 들어주세요. 그렇게 매일 밤 기도를 했다.

내 기도는 들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억울함이 찾아왔다. 왜 하필 내가 아파야 하는거지? 어디선가 삶은 공평하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그래, 공평함을 위해서, 뭔가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내가 아픈 거라고 치자. 사람이 가져야 하는 기쁨과 아픔의 양이 공평해야 한다고 치자. 내가 이 만큼 아파야 내 기쁨이 상쇄돼서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기쁨의 양과 동일해진다고 쳐 보자. 그러나 말이 안됐다. 나보다 성적이 더 좋은, 더 머리가 좋은, 더 예쁜, 더 부유한, 더 몸매도 좋은데 거기다가 건강하기까지 한 사람들이 내 주변에만 수두룩한데 굳이 내가 아파야 세상이 공평해진다고? 말도 안 됐다. 여전히 나는 억울했다.

그러나 이 억울함은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실체가 있는 누군가를 정해놓고 ‘당신 때문에 내가 억울해, 왜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해야했지? 내 억울함이 해소되도록 나를 납득시켜봐’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나 혼자 내 속이 너무 억울해서 타들어갔다.

특히나 치료 후 몸이 지쳤거나 마음이 지쳐있는데 무언가 트리거가 되면 정말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면 치료 시간 30분 내내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이지 않는 내 몸을 봐야했다. ‘허벅지에 더 힘을 주세요’ ‘더 균형을 잡으세요’ ‘발목을 더 올리세요’ 라는 요구에 ‘당신이 해 봐!나도 힘 주고 있다고!!!’라고 소리치고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근육이 움직이지 않으면 힘도 안 들 것 같은데 아니다. 움직이지 않는 근육이라도 움직이려고 노력하다보면 똑같이 지친다. 게다가 마음도 더불어 지쳐갔다. 조절이 안 되는 몸을 보면서 이것은 더 이상 몸이 아니라 '몸뚱아리'가 아닌가, 이 살색 덩어리는 사람 몸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고자 하면 움직이는 것이 몸이었던 나에게는, 움직이고자 해도 움직이지 않는 이것은 나의 일부가 아닌 다른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몸이 지쳐있거나, 마음이 지쳐있거나, 혹은 둘 다 지쳐있거나 한 상태에서 수액을 맞아야하는데 간호사가 계속해서 수액을 놓는 것에 실패해서 팔에 핏줄이 하나씩 터져가거나, 학생 인턴 선생님들이 내가 치료를 받는 옆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실수로 다리를 툭툭 치거나, 엄마가 치료를 받는 데 따라와서 이렇게 해 봐, 저렇게 해 봐, 하고 치료에 참견하면 몹시 짜증이 났다. 겉으로는 ‘수액 좀 잘 놔 주세요’ ‘쳐다보지 마세요’ ‘몸 만지지 마세요’ ‘치료에 끼어들지 마세요’ 였지만, 속으로는 ‘대체 왜 내가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지? 왜 남들은 느끼지 않아도 될 지침을 느껴야 하지? 왜 나만? 왜 하필 내가?’라는 마음 때문에 화가 났다.

이렇게 나는 병원에서 굉장히 예민해 져 있었다. 툭하면 울고, 툭하면 화내고, 짜증내고. 내가 생각해도 내가 성격파탄자임이 분명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제정신이 들면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별 것도 아닌 걸로 유난을 떤 것 같아서 민망했지만, 억울함에서 비롯된 분노를 참기는 쉽지 않았다.

학교 생각을 해도 억울해서 눈물이 줄줄났다. 특히나 물리치료를 받고 난 후 침대에 누우면 더 학교 생각이 많이 났다. 치료를 받고 나면 고작 그정도 움직임 가지고 너무 진이 빠지고 어지러웠으니까. 경사침대에 15분 매달려 있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학교에 돌아가지, 난 원래 하루에 15시간씩 앉아서 공부를 했는데 15분 몸을 세워놨다고 이렇게 어지러운 게 말이 되나, 앞으로 수업은 어떻게 듣고 공부는 어떻게 하지,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눈물이 계속 났다. 


내 미래는 더이상 확실하지가 않았다. 깜깜한 바다속 깊이 빠진 기분이 들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데서 오는 불확실함과 두려움, 그러나 힘이 빠져서 물 밖으로도 나가지 못 하는 데서 오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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