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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Apr 22. 2020

휠체어 위에서 동정받고 싶지 않았다

몸이 원하는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참 당황스럽다. 의사가 근력과 감각 체크를 하러 들어와서 내 허벅지를 가리키며 말한다. 

"허벅지에 힘을 주고 들어보세요."

그러면 나는 다리를 드는 느낌을 떠올리면서 몸에 명령을 내려본다. 그러나 몇 번이고 몸에 명령을 내려도 움직임이 없다보니 점점 어떻게 다리를 들어야하는 건지, 내 다리가 원래 움직이기는 했는지,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허벅지를 쳐다보고 명령을 내려본다.

올라가. 올라가. 올라가!!
움직임이 없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니었나? 원래 허벅지를 어떻게 들어 올리는 거였더라? 뇌에 집중을 해본다.
뇌야 허벅지에 명령을 내려. 명령을 내려. 명령을 내려!!
여전히 움직임이 없다. 점점 머릿속이 엉켜버리는 기분이 들고 뇌가 지쳐버리는 기분이 든다.

내가 느낀 제멋대로 따로 노는 내 몸



처음에는 누워서 누군가가 밀어주는 침대 채로 이동했다. 침대 위에서 굴려다닐(?) 때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환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침대가 이동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보기 싫어서 눈을 감았다. 내 몸이 허공에 둥둥 떠서 침대에 누워있는 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대체 거기 축 쳐져서 눈 감고 뭐 하는 거니, 눈이라도 떠, 의지를 보여.
어쩔 수 없잖아, 눈 뜨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는 걸. 내 팔다리는 이미 사용하지 않아서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어.
머리 위로 들리는, 잠시만요, 침대 지나가요, 하는 말소리들이 들리면 허공에 떠 있는 나와 대화를 하면서 현실을 도피하듯이 침대 위에서 굴려다녔다.


그 다음엔 누군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했다. 병원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육체적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안전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병실을 나가기만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 해서 병실을 나가는 것이 끔찍하게도 싫었고, 사람들의 시선이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마 그 사람들은 날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 위에 앉아 있는 날늘 보면 동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휠체어 위에서 그런 생각이 들면 괜히 아프기 전, 건강했던 나의 모습에 대해 떠들곤 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옆의 건강한 사람들이 나를 불쌍하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 뒤에서 휠체어를 밀어주던 엄마에게 ‘우리 몇 년 전 여행갔을 때, 우리 예전에 수상스키 타러 갔었을 때‘ 라며 맥락 없는 내가 ‘휠체어를 타지 않던 시절 얘기’를 했었다. 내가 언제나 이렇게 아픈 애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그러니까 나를 동정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하기 위해서.

목 뼈를 가르고 수술을 했기 때문에 뼈가 굳기까지 목 보호대를 차고 앉아야 했다. 게다가 왼쪽 팔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어깨 근육이 약해져서 아래로 빠진 왼쪽 팔을 들어 올리기 위해 팔 보조기를 차고 앉아야 했다. 그렇게 보호대를 두 개나 차고 비로소 휠체어에 앉으면, 마비된 내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 쪽으로 힘없이 픽 기울어졌다. 근육을 사용하지 않아서 팔 다리는 이미 얇아질대로 얇아진 상태였다. 나는 힘 없이 보조기 위에 얹혀있는 내 팔과 휠체어 위 기울어진 내 다리를 보고 불쌍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내가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여겨서 다른 사람들도 나를 동정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그 휠체어 위에서 동정받고 싶지 않았고 병원에서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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