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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May 14. 2020

'브라운 시쿼드 증후군'

수술 이후 내게 남겨진 것

수술 후 3주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수많은 검사 끝에 내가 갖게 된 수술 후유증은 ‘브라운 시쿼드 증후군 Brown-Sequard Syndrome’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불완전 척수 손상’이니, ‘칼로 옆구리를 찔리면 나타날 수 있는 척수 손상’이니 하는, 이 병에 대한 학술지나 책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설명이 나와 있었다. 그러나 직접 겪은 사람의 후기는 찾기 힘들었고, 그래서 병에 대한 딱딱한 설명만 읽다 보니 내 몸에 대해서 뭘 기대해야 될지 잘 모르겠는 상태가 되었다. 병원에서의 입원 기간이 좀 더 길어지며 매주 근력 체크를 하고, 감각 체크를 하면서 서서히 브라운 시쿼드 증후군의 증상이 어떤지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는 브라운 시쿼드 증후군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1) 동측성 편측 마비 2) 그 반대쪽의 온도, 통증 감각 상실 3) 같은 쪽 자기 수용 감각, 진동 감각 상실을 꼽는다. 실제로 나는 수술 부위 아래로 왼쪽은 근력과 고유 수용 감각을 잃었고 진동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오른쪽은 힘이 남아있는 대신 통증이나 온도를 느끼지 못한다. 


사실, 통증이나 온도, 진동 감각을 느끼지 못해도 평소에 조심만 하면 크게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지만, 내게 문제가 되는 것은 고유 수용 감각과 근력을 잃은 것이었다. 고유 수용 감각은 쉽게 말해 내 몸이 어디 있는지를 보지 않고도 뇌가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감각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눈으로 발을 쳐다보지 않아도 누군가 힘을 줘서 발목을 누르면 ‘발목이 아래로 내려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고유 수용 감각 덕분이다. 그래서 이 감각이 손상된 나는 눈으로 보지 않으면 내 몸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면 눈으로 쳐다보면 되지 않느냐, 싶지만, 걷을 때 반드시 다리 하나가 몸 뒤쪽에 남게 되어 눈으로 확인할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특히나 근력도 손상되었기 때문에 그 순간 가뜩이나 잘 들리지 않는 발목이 꺾이고, 쳐지는 문제가 생겨서 걷는 것이 어렵게 된다. 그리고 종아리 근육 경직이 생겨 인식하지 못하고 힘을 과하게 주거나, 근육이 지치거나, 근육에 충격이 가해지면 종아리부터 발목이 달달 떨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다행히도 브라운 시쿼드 증후군을 가진 환자들은 다른 신경 손상 환자들에 비해서 예후가 좋다고 했다. 예를 들어, 요추를 다친 신경 손상 환자들은 걷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의로 요의를 느끼고 소변을 보는 것도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브라운 시쿼드 증후군 환자들은 앞서 말한 감각 손상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회복이 빠르게 되는 편이라고 했다. 나 역시도 회복이 빨리 되는 편이었다. 처음에는 등받이 없이 앉아있는 것도 불가능했으나, 꾸준히 치료를 통해 앉는 연습, 서는 연습을 하고 근력 회복 운동을 하니 걷지는 못 해도 앉아서 하는 활동들은 가능 해 졌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은 것이었다. 기분이 우울한 날에는 수술이 잘못될 확률이 그렇게 낮았다면서 왜 내 수술은 잘못된 건지 질문했고, 기분이 좋은 날에는 ‘그나마 예후가 좋은 후유증을 갖게 되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브라운 시쿼드 증후군을 가진 재활병동 장기 입원 환자가 되었다. 재활병동에서는 일상생활을 하는 법과 움직이는 법, 걷는 법을 중심으로 배운다. 일상생활을 하는 법, 움직이는 법, 걷는 법이라니. 수능 공부를 하던 내가. 그렇지만 별 수 없었다. 일단 일상생활을 하고, 움직이고, 걸어야 그 이후의 삶이 가능했으니까. 병원에서는 나의 하루 일과를 짜서 종이에 프린트 해 내 침대 옆에 붙여놓았다. 


아침 식사, 휴식, 물리치료, 휴식, 점심식사, 작업치료, 휴식, 저녁식사, 취침. 


고작 움직이고 걷기 위한 하루 하루를 살아가게 된 것이다.


엄마는 내가 힘들어하면 늘 ‘아래를 봐야 한다’고 했다. 내가 죽지 않은 것, 몸이 완전히 마비가 되지 않은 것, 경추 수술을 했음에도 숨 쉬는 데 문제가 없는 것이 ‘러키’라고 했다.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자꾸만 위를 바라보고 부러워하고 괴로워하지 말고, 아래를 보고 이만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넘겨야 한다고 했다. 나도 머리로는 알았다. 실제로 병원에는 나보다 더 예후가 좋지 않은 환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세상에는 참 많지만, 그렇다고 내가 힘들지 않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자꾸만 나보다 더 건강한, 더 ‘러키’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만약 내 수술이 잘 되었다면 내가 병원에 있는 대신 뭘 하고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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