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제가 사는 곳에도 내렸습니다. 물론 비에 금방 젖어버렸지만요. 그래도 얕은 지붕 위에 하얗게 내린 흔적이 남아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소담스럽게 아릅답습니다.
그런데 이번 눈과 비는 그리 반갑지가 않았어요. 이틀 전 지붕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거든요. ㅜ ㅜ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모르고 있다가, 욕실 구석에서 물방울이 똑똑똑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서야 구석 안쪽 벽과 그 밑의 바닥에 물이 흐르고 있는 걸 알았습니다. 급한 마음에 수건들을 잔뜩 가져다 바닥에 놓고 물이 떨어지는 곳마다 이것저것 플라스틱통을 가져다 두었죠. 이 가난한 마음이라니.
지붕수리 전문가를 소개받아 연락을 했더니 다행히 몇 시간 안에 집에 와 주었습니다. 수염과 구레나룻이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보여 신기한 마음에 그 구레나룻에서 시선을 떼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구레나룻을 가진 사람은 영화에서밖에 본 적이 없었거든요. 척척척 긴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가더니 몇 분 정도 있다가 내려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시원한 물줄기 소리가 집 외벽 옆 파이프라인에서도 들려오더군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자신감 넘치게 해내는 모습이 경외롭기까지 했습니다. 문제점과 해결점을 설명해 주는데 그 어떤 교수님의 설명보다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재밌었습니다.
그렇게 그 지붕수리 전문가는 제게 편안한 마음을 돌려주었지만, 그 몇 분의 가치로 420유로, 한화로 대략 50만 원 정도를 청구해 왔습니다. 꽤 큰 금액이지만, 응급처치 비용이니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겠죠.
그래도 저에게는 남는 일이었던 게, 그 전문가분이 다녀간 후로 지붕은 더 이상 물이 세지 않게 되었고, 그분에게 영감을 받아 노동자에 관한 시도 하나 적었고, 제가 새로 적어가고 있는 에세이북에도 노동자에 관한 에세이를 하나 적어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닥터 스트레인지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난 25년간 지붕수리 전문가로 일해 온 자영업자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은 노동자의 위상과 가치가 꽤 높습니다. 공부를 오래 한 이와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와 수입이 거의 비슷하거나 더 높을 때도 있죠. 노동자를 존중해 주고 대우해 주는 이 사회가 늘 대단해 보이고 그래서 가끔은 부럽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