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정성이 들어간 음식 좀 먹자고 투정했었는데, 엄마의 푸성귀 볶음은...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었어..." -이치코-
푸성귀 볶음을 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해도 엄마가 했던 그 부드러운 식감을 살릴 수가 없는 이치코가 드디어 엄마가 했던 푸성귀 볶음의 비법을 깨닫습니다. 엄마는 채소의 겉 줄기를 하나하나 벗기고 나서 볶았다는 것을...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중에서
오늘 질문에 글을 쓰기 위하여 종일 나의 엄마와 아빠(나이가 많이 들었어도 어머니, 아버지란 호칭은 안 나온다)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딱히 이거다 싶은 사랑 표현이 기억나지 않는 건 부모님의 사랑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 그런 것도 사랑 표현에 들어가는 거야?'라고 되물을 만큼 평균 이상의 일상을 제공해 주셔서, 대부분의 것들을 당연시하고 살았던 결과인 것 같다.
나의 아빠는 돌아가셨다. 나이 들어서도 '아빠'라고 부르는 딸이니까 부녀지간이 매우 달달했을 것 같지만, 아빠와 나는 매우 뜨악하고 어색한 사이였다. 어쩌면 그런 분위기가 싫어서 일찌감치 결혼으로 도망가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 속의 아빠는 언젠가부터 나를 보는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늘 마뜩치않게 바라보는 눈빛은 '기분 나쁘다'라는 감정을 느낄 수도 없을 만큼, 내 영혼으로 스며들었던 것 같다. 내가 나를 폄하하고, 스스로 주눅 들고 억압하던 젊은 날을 보낸 것이 아빠의 눈빛 때문이었다고 말해버리면 내가 너무 '치사한 년'이 되려나...
도망치듯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았다. 자식을 키우다 보니 문득문득 '어허, 요놈 봐라'싶은 부분이 발견됐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그 부분에 '기대'라는 것을 걸게 되는 것은 부모 된 자들의 '숙명'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 기대가 컸던 자식일수록 내 맘 같지 않은 '짓'을 하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괜히 눈동자를 한쪽으로 몰아 쳐다보게 되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뾰족한 말을 해 대는 것이 제어가 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자책감과 동시에 찾아오는 내 마음속 독백은, '네가 아까워서 그래... 난 네가 아까워, 그래서 너를 보면 화가 나...'
나의 아빠도 내가 아까왔을까?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늦은 입대를 한 아빠는 군부대 칠흑 같은 밤하늘 별을 보며 내 이름을 지었다는데, 그 별들만큼 많은 꿈을 꾸며 나를 만났을 텐데, 그런 내가 별똥별처럼 추락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화가 났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