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덕질하며 시간을 보내던 때가 있었다. 몇 년 사이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지난 4월 21일 선종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저하염없이 눈물을 흘렀다
2013년 로마 여행 중, 바티칸에서 만난 수녀님 덕분에 수요일 일반 알현에 참석할 수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교황님을 뵐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교황님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바티칸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교황님에 대한 기사와 어록을 읽고 또 읽었다. 그의 노쇠한 모습을 뵐 때면, 마치 내 부모님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쓰였다. 종종 나는 짧게나마 그분의 평안을 위한 화살기도를 바치곤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의 소명』 앞에서 묵상하신다는 기사를 보았다. ‘카라바조’라는 화가부터 생소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카라바조 마을 출신의 미켈란젤로? 내가 알고 있던 르네상스의 미켈란젤로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의 인생은 타협을 몰랐고, 성질은 불 같았다. 크고 작은 싸움에 휘말렸고, 공놀이 중 사소한 말다툼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이후 죽기 전까지 도피하며, 머무는 곳마다 작품을 남겼다. 지금 같으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인성과, 그에 비해 지나치게 탁월했던 재능은 그를 쉽게 좋아할 수 없게 만들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그림을 바라보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성 마태오의 소명』을 바라볼수록 이 그림에 점점 빠져들어 갔다.
『성 마태오의 소명』은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 있다. 로마 여행 중, 친구와 하염없이 걷다가 잠시 쉴 겸 어딘지도 모르는 광장에서 멈춰 섰다. 분수와 새 무리, 다양한 여행객들, 아름다운 건물과 볼거리가 어우러진 그 공간에서의 짧은 휴식이 좋았다. '여기는 어딜까?' 하며 옆에 있던 관광객에게 물었더니, '나보나 광장'이라고 했다. '여기 좋네.' 하며 광장을 나서던 길에, 한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가 "들러볼까?" 하고 물었지만, 여행의 피로가 쌓였던 터라 그냥 숙소로 가자고 했다. 그렇게 스쳐 지나간 그 성당에,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성 마태오의 소명』이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로마를 떠났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성당에 들어갔더라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없었으니, 뭐 괜찮다.
빛의 거장 카라바조&바코르의 얼굴들
카라바조 전시를 서울에서 한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얼리버드 예매를 해 놓았지만,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전시장으로 향했다.
전시실 문을 열자, 어둠 속을 가르는 빛이 나를 감쌌다.
이거였다!
이거였어!
나는 늘 빛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풀밭 위의 식사’도, 램브란트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많은 그림들도, 결국 나를 붙든 것은 빛이었다. 그리고 오늘, 카라바조 앞에서 마침내 깨달았다. 내가 반응했던 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어둠 속을 뚫고 나오는 빛의 힘이었다는 것을.
드디어 마주했다. 『성 마태오의 소명』 떨렸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가장 밝은 부분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빛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움직였다. 그림의 오른쪽에서 빛이 들어와 탁자에 앉은 사람들을 비추었다. 빛과 어둠의 대비가 묘한 긴장감을 만들었다. 벽의 창문은 닫혀 있었고, 빛은 그 창을 통해 들어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 쏟아지는 빛은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의 머리 위로부터 어둠을 가르며 빛이 퍼졌다.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죄인인 ‘세리 마태오’를 부르셨다. 사도 베드로는 그 손짓을 그대로 따랐다. 예수님의 손에는 빛이 가득했다. 이 빛은 어둠을 가르는 구원의 빛이었다.
다른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에서 하느님의 창조의 손을 그렸다면, 『성 마태오의 소명』에서는 예수님의 구원의 손을 볼 수 있었다. 두 미켈란젤로는 각각 창조와 구원을 손짓으로 표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림 앞에서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자비를 베푸소서’를 되뇌면서, 자신이 마태오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교황님의 선종 소식을 듣고, 나는 다시 성 마태오의 소명을 찾아보았다. 구석진 어둠 속에서 부드럽게 손을 내미는 예수님의 모습이, 자꾸만 교황님과 겹쳐졌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죄인이라 고백했고, 권위보다는 사랑을, 명령보다는 경청을 택하셨다. 교황직의 화려한 의전 대신, 소박한 신발과 검소한 집을, 누구를 만나든 먼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셨다. 그런 교황님의 모습이, 어둠 속 마태오를 향해 손을 뻗는 예수님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보였다. 이제 교황님은 빛이 가득한 곳으로 가셨다. 나는 그분의 온화한 미소를 떠올리며, 그의 안식을 빈다
유시민 작가는 청춘의 독서에서 ‘어떤 독자도 같은 책을 두 번 읽을 수 없다’라고 했다. 나에게 여행이 그렇다. 같은 길을 걸어도, 같은 하늘을 봐도, 같은 마음으로 머물 수는 없다. 그 어디도 같은 두 번은 될 수 없다. 이렇게 나는 다시 떠날 이유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