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했던 하루, 잊히지 않는 풍경
날씨는 겨울 같지 않았다.
비가 갠 뒤여서인지, 하늘은 맑았다.
파란빛의 농도는 우리 하늘과는 달랐다.
잠시였지만, 이 파란 하늘이 너무도 부러웠다.
파란 하늘 아래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블루모스크와
아야 소피아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하루를 아흐메트 광장에서 보냈고, 마지막 일정으로
톱카프 궁전에 들어섰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솔직히 좀 피곤했다.
궁은 매우 화려했다.
왕의 의복, 공적인 업무, 사적인 공간까지—모든 것이 잘 정리된 박물관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슬람 문화는 서구 문명의 세례 속에서 자란 내게는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거리감이 있었다.
그날 내게 인상적이었던 건,
오히려 궁전의 정원이었다.
멀리 바다가 내 다 보이는 언덕 위, 중간중간 의자가 놓여 있어
잠시 앉아 풍경을 바라보기 좋았다.
나무 그늘아래 작은 분수가 있었고, 그 너머로는
마르마라 해가 조용히 펼쳐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왕이 앉아 세상을 바라보았을
시선으로 풍경을 바라보았다.
톱카프 궁전의 정원을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창덕궁의 후원이 떠올랐다.
궁궐의 가장 안쪽,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
나무와 흙길. 정조대왕이 책을 읽었다는 정자,
배를 띄우고 노를 저었다는 연못.
안쪽 깊숙한 그 후원은 자연과 궁궐이 나란히
숨 쉬는 공간이었다.
유홍준 교수는 우리의 궁궐을 설명할 때
‘차경(借景)’이라는 말을 자주 꺼낸다.
차경이란, 경치를 소유하지 않고 빌려 쓰는 것.
담장 너머의 산세를 일부러 가두지 않고,
그저 바라보며 받아들이는 미학이다.
창덕궁의 후원이 자연을 안으로 끌어들였다면,
톱카프의 정원은 자연을 배경 삼아
제국의 바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둘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지만,
모두 궁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잠시 권력을 내려놓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톱카프 궁전은 내가 알고 있던 유럽의 궁전이나,
우리나라의 궁궐과도 구조가 달랐다.
입구를 지나면 제1궁, 그 너머로 또 문이 이어지고
제2궁, 제3궁, 마지막 제4궁까지.
궁전은 안으로, 안으로 향했다.
일렬 배열이라고 해야 하나.
무언가에 점점 다가간다기보다, 하나씩 통과해 가며
'허락'을 받는 느낌이었다.
입구는 돔이 아니라 뾰족한 지붕으로 시작된다.
오스만 제국은 유목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초기 궁전은 천막을 닮은 형태에서 출발했다.
톱카프의 구조는 매우 모듈형 텐트 느낌이 있고,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은밀하고 사적이다.
비잔틴과 이슬람의 오랜 전통은 건축을 돔으로
마감하는 데 익숙했고, 사람들은 그 안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위를 올려다보게 되었다.
신의 눈이 머무는 자리를 상상하며, 그 아래에서
작은 존재가 된다.
톱카프는 술탄의 공간, 권력의 상징이었다.
아야 소피아나 블루모스크는 모든 이가 드나들 수 있는
신의 공간이었지만, 톱카프는 오직 선택된
이들만이 들어설 수 있는 장소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대신, 문을 하나씩 지나며 점점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
그 공간은 신의 시선 아래 놓인 ‘모두의 장소’가 아니라,
권력의 시선 아래에서 철저히 통제된 ‘누군가의 세계’였다.
톱카프는 오스만 제국의 첫 번째 궁전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메흐메트 2세가 새 수도에 처음 세운 궁전이다.
그 뒤로 약 400년 동안, 술탄들의 통치와 일상이 이곳에서 이어졌다.
왕의 집이자 국가의 중심, 동시에 하나의 작은 도시였다.
돌아보면 그날 나는 이 궁에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오스만 제국의 궁궐 하면 ‘하렘’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정작 나는 톱카프 궁전 안에서 하렘을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휙 둘러봤는지도 모르겠고,
봤는데도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다.
막상 궁 안에서는 떠오르지 않던 그 단어가,
며칠 뒤 인터넷에서 한 그림을 보다 불쑥 떠올랐다.
햇살이 천장에서 비스듬히 들어오고,
그 빛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적막한 공간 위에
고요히 내려앉는다.
여인들은 말이 없다. 생기도 없다.
보는 이의 눈을 의식하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말하는 자세였다.
이곳은 누군가가 상상으로 만든 하렘이다.
그림 한가운데에 선 검은 옷의 여인은
무엇을 들고 있는 걸까?
이 여인은 악사인가? 목욕탕에 악사는 왜 있을까?
물담배를 권하는 건가?
짧디 짧은 상식을 끌어모아보지만,
나는 끝내 모르겠다.
장 레옹 제롬(Gérôme,_Jean-Léon)
19세기 프랑스 아카데미 화가로,
동양을 상상하고 소비하던 시선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림은 낯설었지만, 묘하게 톱카프에서 느낀 분위기를 느꼈다.
사진첩을 뒤지다 푸른빛 타일 사진을 발견했다.
따뜻한 공간에 차가운 타일, 말이 없는 공간, 그림과 사진, 기억이 어딘가에서 겹쳤다.
푸른빛이 고요하게 반복되는, 톱카프 궁전 하렘의 내부 벽면.
이즈닉 타일은 꽃과 곡선을 빼곡히 새겨 넣으며, 말없이 이 공간의 질서를 만들어낸다.
모세가 사용했다 전해지는 지팡이로, 약 기원전 13세기의 물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빛 아래 고요히 놓인 이 지팡이는,
왕의 칼보다 더 오래 살아남은 신의 상징물이었다.
나오는 길에, 예언자 모세의 지팡이를 보았다.
오래전 한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은 이런 허망한 이야기 믿어요?"
"1500년대쯤 지어내면 아무도 몰라요."
나는 크게 웃었지만, 그 아이의 표정은 날 살짝 멋쩍게 했다.
그래도 난 이 지팡이를 보는 게 좋다.
성경을 탈출기까지만 읽어서일까?
나오는 길, 나는 한 번 돌아봤다.
다 알 수도 없고, 다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저 석양 지는 정원과, 뾰족한 정문의 그림자만이 내 안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