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

그 도시는 어디 있는지도 몰랐지만, 늘 그 이름을 입에 달고 살았다

by 브라보연진아

드디어 떠나는 날이다. 공항은 언제나 설렌다.

들뜬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비행기는 구식 기종 같았다.

등받이는 흔들리고, 선반은 헐거웠다.

충전 포트는 없었고, 모니터 기본 언어가 중국어였다.

영화는 시시했고, 에어쇼는 아예 나오지 않았다.


한편으론 잘됐다 싶었다.

그동안 별고 벼르던 드라마나 봐야지 하며,

짜증 난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다운로드하여 온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토만: 제국의 부활 Rise of Empires: Ottoman》 시즌 1은 1453년,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며

오스만 제국의 새 시대를 여는 과정을 다룬

6부작 다큐 드라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세계사적으로 큰 사건이라 배웠다.

하지만 그건 글 속 이야기였다.

내가 사는 세계, 시간과는 너무 멀었다.

그래서 딱히 감흥도 없었다.

그런데 한 편의 드라마에 몰입하다 보니,

그동안 의미 없이 읽어 넘겼던 텍스트들이

갑자기 생생하게 다가오며, ‘아’ 하는 안타까운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때야 나는 처음으로 이 도시의 멸망을 안타깝게

바라보게 되었다.


드라마는 두 제국의 황제, 권력의 그림자에 놓인 신하들,

그들 간의 대립, 용병들, 첩자와 음모,

그리고 사랑까지 재미있는 구성이었다.

중간중간 역사학자들이 등장해 사건의 배경과 의미를 덧붙이며 몰입감을 더했다.

덕분에 긴 비행시간의 피로감도 잊을 만큼,

완전히 그 이야기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어린 메흐메트의 생모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기록은 침묵했다. 알려진 건, 그가 어린 시절을 어머니와 함께 궁정의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보냈다는 것뿐이었다.

시선이 닿지 않던 자리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외로움을 닮아가며 지냈다.


19살의 어린 나이에 술탄이 된 메흐메트 2세는 노련한 신하들과 정치적 압박에 마주하게 된다.

아직 어린 그를 의심하는 시선을 잠재우고,

자신의 권위를 증명하는 방법은 단 하나, 전쟁이었다.

그는 마침내 오스만 제국의 오랜 꿈이자,

운명이라고 여겨왔던 콘스탄티노플 정복을 선언한다.

신하들은 어린 황제의 도전을 비웃었고,

그의 시도를 무모하다고 여겼다.

메흐메트는 대포 같은 첨단 무기를 도입했지만,

실패로 끝이 났다.

이 일로 물러나 있던 아버지 무라드 2세에게 왕위를

다시 넘겨주게 된다.

이후 황제가 사망하면서, 메흐메트는 다시 제위에 올라

제국의 운명을 다시 쥐게 된다.

조용했던 보스포루스 해협 위로, 돌과 철이 쌓이기 시작한다. 메흐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의 숨통을 조이기 위해

루멜리 히사르 건설을 명령했고,

이 요새는 곧 전쟁의 서막이 되었다.

이에 맞서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제노바 출신의 용 병장과 함께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한다.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치열한 공방전 속에서 양측은

점차 피로와 공포에 잠식되어 간다.

콘스탄티누스는 교황이 약속한 지원 함대를 애타게 기다리고, 그 사이 오스만의 젊은 술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동서양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이 도시는

수 세기 동안 수많은 침략을 견디며

‘난공불락의 요새’로 불렸다.

콘스탄티노플은 북쪽의 골든 혼, 남쪽의 마르마라 해,

동쪽의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천연 요새와 같은 지형적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서쪽으로 유일하게 육지와 맞닿은 방향에는 해자와

삼중 구조의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세워져 외부의 침입을

수 세기 동안 막아낼 수 있었다.

마흐메트는 견고한 성벽이나 보스포루스 해협보다

골든 혼이 상대적으로 공략하기 쉬운 지점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곳은 굵은 쇠사슬이 걸려 있어,

외부의 배가 항만 안으로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골든 혼을 뚫을 수 없다면, 산으로 가자.” 메흐메트는 전례 없는 작전을 감행한다.

함대를 육지로 끌어올려 산을 넘어 골든 혼 안쪽으로 진입시키겠다는 것이다.

군사들은 통나무에 바퀴를 달아 진흙과 기름을 바른

경사로를 만들고, 수십 척의 대형 군함을 쇠사슬로

감긴 골든 혼을 우회해 육상에서 밀어 옮긴다.

밤새 비밀리에 작업이 진행되었다.

배를 산으로 끌고 간다는 발상 자체가,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그는 왕이었고, 그들에겐 군대가 있었다.

그의 말은 곧 실행이 되었고, 상상은 곧 전략이 되었다.


콘스탄티노플 지도


젊은 술탄의 천재성과 집념을 상징하는 결정적 장면이었다.

다음 날 아침, 골든 혼 안에서 오스만의 전함이 떠 있는

광경을 본 비잔틴은 충격에 빠진다.

이후의 장면이 참혹했다.

승자는 도시를 가져갔고, 패자는 피를 토해냈다.

무너진 건 눈앞의 성벽이었지만,

정말로 무너진 건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1453년 5월 29일 일요일 술탄 마흐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한다.

황제는 곧바로 아야 소피아 성당으로 간다.

그는 조용히 성당을 찬찬히 훑어본 후 말한다.


“나는 천국의 나라에 들어섰노라.” 그의 나이 21살 자신을 ‘카이세르-이룸’ 즉, 로마 황제라 칭했다. 하지만, 오스만은 그를 파티흐 정복자로만 기억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이 된다.

메흐메트는 우상처럼 여겼던 알렉산더를 그의 정치철학,

전쟁관, 문화를 융합해 “나는 그다음이다”라는

정체성을 만들었다고 한다.

정복 후에도 그는 콘스탄티노플을 군사적 승리로만

끝내지 않고, 종교와 문화를 아우르는 제국의

심장으로 다시 설계했다.

알렉산더는 세계를 정복하고 떠났고,

메흐메트는 세계의 중심을 정복해 470년을 이어온

‘제국’을 남겼다.

그리고 이 무너진 문명은, 유럽으로 흘러가

또 다른 부활의 불씨가 되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나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전쟁, 도시, 이름, 무너진 제국. 모든 게 머릿속에 뒤엉켰다.

그 여운은 꽤 오래갔다.

생각의 잔해들이 뭉치고, 무겁게 내려앉더니

결국 두통이 되었다.

두통과 함께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 도시를 걷고 또 걸었다.

머릿속에 남은 잔상은 사라지지 않았고,

눈앞의 풍경과 뒤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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