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궁전, 멈춘 시간
화려한 궁이 하얗게 다가왔다.
대리석 계단, 흰 기둥, 햇살을 머금은 창호까지—모든 것이 반짝였다.
정원은 푸르르고, 하늘은 청량했다.
천천히 걸었다.
돌바닥 위로 깔린 정적과 햇살, 오래된 기척 같은 것들이
발끝에 스치고 지나갔다.
이쪽은 궁전이라기보다 관람을
시작하는 ‘출발점’ 같았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1843년에 착공해 1856년에 완공되었다.
화려하고 웅장한 유럽식 궁전을 짓기 위해,
오스만 제국은 국가 재정의 대부분을 쏟아부었다.
필요한 자금은 외채와 금으로 충당했고,
그 결과는 재정 파탄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뒤,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독일 편으로 참전했다.
이미 재정이 무너진 상태에서 전쟁은 패전으로 끝났고,
패전은 곧 제국의 해체로 이어졌다.
화려한 궁전 뒤에 숨어 있던, 오스만 제국의 현실은, 비참했다.
패전국이 되면서, 연합국이 이스탄불을 점령하고,
세브르 조약을 통해 오스만의 땅을 나눠 갖기 시작했다.
내부에서는 무스타파 케말이 주도한 터키 민족운동이 일어나
결국 1922년, 술탄제 폐지되었다.
마지막 술탄 메흐메트 6세는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쫓기듯 망명길에 올랐다.
마지막 황제는 이 궁전에서 떠났고,
공화국의 창립자는 이 궁전에서 숨을 거뒀다.
무스타파 케말, 사람들은 그를 ‘아타튀르크’—터키의 아버지라 부른다.
그는 오스만 제국을 해체하고, 터키 공화국을 세웠다.
그의 사망 시간은 1938년 11월 10일, 오전 9시 5분.
그가 마지막으로 눈을 감은 침실의 시계는 지금도
9시 5분에 멈춰 있다.
나라를 잃고 떠돌았던 왕과 황제들,
그들을 둘러싼 궁궐의 정적과 유리창 너머의 햇살까지.
돌마바흐체는 덕수궁의 석조전과 너무도 비슷했다.
전통 궁궐 안에 갑자기 들어선 서양식 건물.
겉은 유럽풍 대리석과 기둥, 안은 낯선 샹들리에와 붉은 융단.
이질적인 화려함이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덕수궁을 처음 걸었을 때, 나는 석조전을 보고 놀라웠다.
‘이게 조선의 궁궐이 맞나?’ 싶었던 기억.
그 감정이 돌마바흐체에서도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두 궁전은 모두 근대를 받아들이려 애쓴 흔적이었고,
동시에 무너지는 나라가 남긴 마지막 허세처럼 보였다.
화려한 궁전을 둘러보고 나오니,
바로 눈앞에 바다가 펼쳐진다.
궁전의 계단은 바다 바로 아래까지 내려갔다.
경계가 없었다. 돌담도 없고, 담장도 없었다.
바다와 궁전이 바로 맞닿아 있었다.
햇빛과 만나 바다는 보석같이 빛났다. 눈이 부셨다
이 문은 그냥 바다였다.
바다를 마주 한 궁정의 정원에서 놀다
궁전 옆 미술관[국립 궁전 회화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 땅의 역사를 모르니, 세밀화는 더 어려웠다.
단지 그림이 낯선 게 아니라,
그 그림이 속한 세계가 낯설었다
유럽의 미술은 익숙하다.
교과서에도, 영화에도, 박물관 투어 영상에도 늘 등장하는 그림들.
우리는 배운 적 없다고 해도 어쩐지 아는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이곳의 그림은 달랐다.
인물의 눈동자가 정면을 바라보지 않고,
원근도 없고, 빛도 다르다.
무엇보다, ‘이 그림이 왜 여기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모르는 세계에 있다 보니, 유난히 피곤했다.
이방인으로 궁을 거닐었고, 이방인의 눈으로 그림을 보았다.
이해하려 애썼지만, 가까워지지 않았다.
세밀화는 정교했다. 정교하면 할수록 미로 속에 있는 듯했다.
낯선 제국, 낯선 언어, 낯선 시선.
그 안에 오래 머물수록 나는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육지에서 볼 땐 장중했고,
바다에서 볼 땐 그냥 찬란했다.
관람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피곤했다.
화려한 샹들리에는 눈에만 남았다.
햇살 좋은 벤치에 앉아 쉬다, 사진 찍다를 반복했다
그제야 비로소, 이곳에 내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시장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