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소피아

이름에 담긴 신의 지혜

by 브라보연진아

어릴 적 아버지의 방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그곳에는 다양한 책들이 많이 있었다. 그중 난 사진이 큼직하게 들어간 책들을 아주 좋아했다. 무심코 넘기던 책장에서 성소피아 성당의 사진을 보며, '이 성당은 비누거품 같이 생겼어'했던 기억이 있다.

두 제국과 두 종교의 시간이 얹힌 풍경. 처음 봤을 때, 돔이 정말 비눗방울처럼 보였었다.

아버지는 그리스 말로 '소피아'가 '지혜'라고 알려주셨다. 성당의 이름에 ‘지혜’라니, 처음엔 그게 참 특이했다. 그 이름을 들은 순간, 낯설면서도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소피아’는 헬라어로 ‘지혜’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신의 지혜’다. 성당의 이름부터가 철학적이고, 신학적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룩한 지혜’로 상징하는 비잔틴적인 언어. '아야 소피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신학 선언처럼 느껴졌다.




어릴 적, 엄마는 내 지갑 속에 성모자상 포토 카드를 넣어주시곤 했다. 뒷면엔 작은 기도문도 적혀 있었지만, 사실 나는 그걸 꺼내 읽은 적은 거의 없었다. 늘 지갑 속에 있었다. 나는 그 포토카드 속 그림이 아야 소피아 성당의 벽화일 거라고 혼자 착각하고 있었다. 엄마는 생각나실 때마다 다른 그림으로 바꿔주셨으니, 지나간 사진들 중 벽화의 사진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야 소피아에서 처음 그 벽화를 마주 했을 때, 지갑 속 그림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보고 실망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 오래도록 자리했던 이미지가 조용히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그 벽화 앞에서 나는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색은 바랬고, 벽면은 거칠었지만, 그 안엔 시간에 닳아버린 어떤 신성함이 느껴졌다. 황금빛 배경 위에 성모 마리아가 왕좌에 앉아, 어린 예수 그리스도를 무릎에 안고 있는 모습이다. 엄마는 성모자상을 특히 좋아하셨다. 성모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는 분이라며...... 복잡한 감정이 어떤 형태의 기도로 도출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벽화 앞에 선 내 마음은 평안했고 모자도 온화해 보였다. 무릎 위에 있는 아기예수님은 신보다는 한 아이로 보였다. 관람객들 많아 조용히 마주하긴 어려웠지만, 나는 오래도록 모자상을 바라봤다. 그리고 어느 순간, 조용히 돌아섰다.


황제 요안니스 2세 콤네노스와 황후 이레네, 성모자상. 그 무릎 위에서 예수는 신보다 한 아이처럼 보였다.


중앙의 그리스도와 황제, 황후가 나란히 앉아 있다. 신의 권위와 제국의 권력이 하나의 이미지로 새겨진 자리.


지금의 아야 소피아는 모스크다. 모스크로 바뀐 후에는 1층을 차단하고, 관광객은 바로 2층으로 연결되는 통로로만 입장할 수 있게 했다. 성당이으로 기억해온 공간은, 실제로는 철저히 모스크의 규칙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어긋남이 낯설었다.


성당 옆에 새롭게 마련된 아야 소피아 뮤지엄은 생각보다 훨씬 흥미롭고 유익한 공간이었다. 모스크가 되기 전, 건축 당시 성당으로서의 모습에 가까운 사진들을 볼 수 있었던 게 인상 깊었다. 한국어 오디오 안내가 있어 너무 좋았다. 무려 1500년에 달하는 아야 소피아의 역사를, 걸으며 영상을 따라가는 순환형 전시 구조였다. 아야소피아는 1층이 개방될 시점에 가 보면 좋을 듯하다.




아야 소피아에는 제국과 종교, 약탈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다.


537년, 비잔틴 제국 시대.

두 번의 화재로 무너졌던 자리에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새로운 성당을 세우려고 한다. 그는 제국의 권위와 황제들의 도움을 모아, 재앙의 흔적 위에 또다시 성당이 지어냈다. 우리나라의 석굴암보다도 237년이나 앞서 지어진 이 성당은, 당시에는 바닥과 천장에 금장식이 가득했다고 한다.


유스티니아누스는 폐허 위에 성당을 올리고 이렇게 외쳤다. “솔로몬아, 내가 너를 능가했다.” 지금은 모스크로 바뀌어 바닥을 볼 수 없지만, 과거 아야 소피아의 바닥과 벽은 대리석과 황금으로 꾸며져 있었다. 대리석의 물결무늬는 바다의 파도를 닮았고, 이는 성경 속 솔로몬의 성전을 본뜬 것이었다.


아야 소피아의 구조적 아름다움은 사각형의 몸체 위에 반구형 돔이 얹힌 형식이다. 사각은 땅, 원은 하늘을 의미하며, 이 성당은 그 두 세계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건축적 기도와 같다.


가장 중심에는 거대한 중앙 돔이 있다. 지름 약 31미터, 높이 55미터. 이 거대한 돔은 기둥 위에 직접 얹히지 않고, 아치와 반구가 독특한 구조로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설계되었다. 하지만 이곳의 돔은 하나가 아니다. 중앙의 돔을 감싸듯, 사방에는 작은 돔들이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돔이 서로 기대며 무게를 나누고, 곡선과 곡선이 맞물려 하나의 우주적 리듬을 만든다. 아야 소피아의 돔은 모두 일곱 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일곱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수량이 아니라, 고대 우주의 완전성과 창조를 상징한다. ‘일곱 하늘’, ‘일곱 별’처럼 우주는 일곱의 조화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던 세계관이 건축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셈이다.


돔 아래에는 빛이 스며드는 창이 있어, 그 빛은 언제나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 빛 아래로, 마치 하늘이 이 공간을 감싸 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안에 들어선 사람은 성당의 기둥보다도, 벽화보다도, 먼저 그 빛의 무게에 압도된다.

아야 소피아는 단순히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하늘을 건축한 공간이었다.

빛과 어둠이 엇갈리는 공간은 여전히 인상 깊었다. 그 아래에서 기도하던 사람들, 그 위를 바라보던 나.


유스티니아누스는 스스로를 솔로몬보다 위대한 존재라 여겼고, 그 뒤로 성당은 무려 1,000년 넘게 동방 정교회의 중심으로 존재했다.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하면서 아야 소피아는 약탈당한다. 수많은 성유물과 예술품이 베네치아로 반출되었고, 그중 많은 유물이 지금도 산 마르코 대성당에 남아 있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면서, 아야 소피아는 모스크로 전환된다. 십자가는 제거되고, 미흐라브(=제대)와 미나렛(=첨탑)이 설치된다. 벽화와 모자이크는 석회로 덮였고, 그 후 500년 동안 이슬람 예배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이후 이 공간은 다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1935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케말 아타튀르크는 성당을 박물관으로 바꾼다. 세속주의 정책에 따라 종교의 흔적을 중립적인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자 했고, 그동안 가려졌던 모자이크는 부분적으로 복원되었다. 하지만 2020년, 에르도안 정부에 의해 다시 모스크로 전환된다. 1500년 동안 아야 소피아는 정복과 신앙, 권력과 침묵, 그리고 시간의 층을 겹겹이 쌓아 올린 공간으로 남아 있다.


아쉬운 점은, 이제는 1층 바닥에서 하늘을 떠받든 돔을 올려다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시선의 단절이 이 공간의 가장 큰 침묵처럼 느껴졌다. 기도의 자리는 여전히 신성하지만, 관람객의 시선은 이제 조심스럽게 옆길로 빠진다. 1500백 년의 시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그 시간 속의 중심에는 더 이상 나설 수 없다.


아잔 소리도, 모스크의 초록 카펫도, 그 안은 내가 찾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곳을 나설 때, 마음엔 아쉬움도, 되돌아보고 싶은 마음도 남지 않았다. 충분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리스도의 시선 아래 수많은 성인의 이름이 펼쳐진다.


keyword
이전 02화콘스탄티노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