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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보연진아 Jun 18. 2024

말을 걸기 1미터 전

―해롤드 하비의 <물놀이하는 소년들>


이상하죠. 볼이 빨간 아이가 한사코 나를 바라봅니다. 내 얼굴 화장이 잘 못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서 곁눈질로 살며시 이 아이를 살펴봅니다. 아이의 시선이 왠지 싫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나도 아이에게 관심이 가네요. 내가 아이를 관찰하고 있는 것을 아이는 몰랐으면 합니다.

다리를 모으고 다소곳이 앉아 있네요. 제가 어릴 적에 잘하던 자세입니다. 볼이 빨간 것도 저와 너무 닮았습니다. 다리를 모으고 팔짱을 끼고 있는 자세가 우울한 자세라는 이야기를 듣고부터는 하지 않으려고 했었어요. 아이의 외모와 자세가 내 마음을 끌어당기나 봅니다.

아직 아이는 제 시선을 느끼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나는 조금 더 조심하려고 합니다. 혹시나 아이가 눈치채면 고개를 돌릴까 봐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을 보는 척 아이를 봅니다. 아이 뒤편에 아이들이 앉아 있네요. 대부분의 아이가 물을 바라보고 있어요. 아직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도 있고요. 나른한 여름 햇볕에 물결이 유난히도 반짝입니다. 물속으로 뛰어들려고 준비하고 있는 아이도 있어요. 준비운동은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네요. 아이들 모두 개인 물건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아이를 보고 있는 인물이 나뿐이 아닙니다. 물가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한 아이도 볼이 빨간 아이를 바라보고 있어요. 나는 잠시 두 아이를 번갈아가며 살펴봤어요. 둘은 어떤 관계일까요?

나를 보는 소년은 물놀이를 즐겼을까요? 얼핏 보아선 옷을 입은 채로 물속에 들어갔던 모양입니다. 볕에 옷과 몸을 말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물에서 나와 추운 것은 아니겠지요? 근심이 있는 얼굴 같기도 하고요. 누구를 기다리는 건 아니겠지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소년들이 앉아 있는 곳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계단이 미끄러워 보이네요.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줄은 몰랐어요. 뒤쪽에 조그만 배도 보이네요. 물놀이하기에 적당한 장소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물에서 수영을 하며 놀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볼 빨간 아이는 물에서 놀고 있는 친구들이 아닌 나를 왜 바라보는 걸까요? 무슨 할 말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따돌림을 당한 걸까요? 말 못 할 걱정거리라도 생긴 걸까요? 궁금증이 물결처럼 출렁입니다. 이제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 보려 합니다.     

___________

*해롤드 하비의 <물놀이하는 소년들> 한 아이의 빨간 볼에 시선에 먼저 갔다. 불그레한 볼이 나에게 안쓰러움과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대각선을 기준으로 아래쪽에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이 있고, 위쪽에는 물결이 눈부실 정도로 반짝인다. 볼이 빨간 아이의 표정에서 묻어나는 묘한 우울감이 물에서 반사되어 내게 전이되는 것만 같았다. 찬란한 여름 햇빛과 상대적으로 대비되는 아이의 우울감이 그림에 빠져들게 한다. 여름빛이 아이를 감싸 안고 있지만, 아이는 왠지 추워 보인다. 그늘진 얼굴에 따뜻한 말을 건네 보고 싶어졌다.   

  

-해롤드 하비, <물놀이하는 소년들>, 1932, 캔버스에 유채, 50.8×45.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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