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게 제일 좋아

이렇게 10년 키웠어요 아홉 번째 이야기

by 박뚠뚠

주로 여자아이들의 특성이기도 하겠지만 우리 딸아이는 유난히 인형놀이를 좋아한다. 이른바 역할극인데 설정은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바뀌는 편이다. 주로 집을 배경으로 할 때가 가장 많았고 병원놀이, 마트 놀이, 미용실 놀이 등등 수시로 변경된다. 그즈음에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때가 많다. 물론 그런 식으로 배경을 바꿔줘야 아이가 덜 지루해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인형놀이(역할극)의 경험이 없는 아빠들은 어떻게 해야 잘 놀아줄 수 있을지 모를 때가 많다. 이유는? 안 해봤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어린 시절 과격한 성격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얌전히 앉아 인형을 갖고 논 경험은 드물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역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경험을 되짚어 보았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바로 '캐릭터'였다.


캐릭터 빌드업의 중요성


프로그램을 만들 때 회의하면서 많이 하게 되는 말 중에 하나는 "출연자 캐릭터가 잘 잡혀야 할 텐데.." 바로 이것이다. 이른바 캐릭터 빌드업이란 것인데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 것인지 복잡하게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지만 간단하게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친해지기이다.


캐릭터의 중요성에 관해 예전 선배한테 들었던 이야기. 큰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이 종영하고 나면 다들 후속작으로 편성되는 걸 꺼려한다고 한다. 시청자들은 인기 있었던 프로그램의 출연자들과 오랜 시간 정이 푹 들어있는 상태다. 가까운 친구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좋아했던 친구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어디서 처음 보는 것들이 나와서 설친다? 용서할 수 있을까? 이것들 때문에 내 친구가 다 사라진 건가? 이제 다시 못 만나는 건가? 내심 자꾸 삐딱한 생각이 들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쉽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얻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적응기간이 필요한데 이것을 바꿔 말하면 캐릭터가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나 시트콤 같은 경우는 이러한 적응이 더욱 힘들 것이다. 오죽하면 연기했던 배우들도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까.


비슷한 예를 다시 들자면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의 흉내를 기가 막히게 내는 친구가 있던 기억 다들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흉내가 같은 반 학생끼리는 너무 웃긴데 바로 옆 학교로 가서 하면 재미있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유는? 옆 학교 학생들은 우리 담임선생님의 캐릭터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캐릭터가 없는 상태에서 웃기기가 이렇게 힘든 것이다.


아이와의 놀이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보자. 아이와 어떻게 인형놀이를 해줄까 고민하다가 인형마다 캐릭터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근데 중요한 것은 이 캐릭터를 내 맘대로 무작정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프로그램 제작 때도 마찬가지다. 같은 인형들로 계속 놀다 보면 자연스레 캐릭터라는 게 생기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계속'이란 단어. 꾸준하고 놀다 보면 저절로 생기니 걱정 마시길. 이렇듯 자연스럽게 아이와 놀 때 특징들 이를테면 이 인형이 이런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 아이가 크게 웃었다거나 이런 것들을 기억해두었다가 캐릭터 빌드업에 활용하면 좋다. 얘는 장난 잘 치고 얘는 공부 잘하고 얘는 춤을 좋아하고 등등등 이렇게 캐릭터 적응기간을 거치면 별 것 아닌 행동이나 말을 해도 마치 우리 담임 선생님 흉내처럼 재밌어지는 것이다. 캐릭터가 각인되고 나면 재밌게 놀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개그맨은 사소한 손짓 하나만 해도 웃겨 보이지 않던가? 비슷한 이치이다.


그럼 이쯤에서 우리 집 인형들 캐릭터를 정리해보기로 하겠다. 참고로 이름은 모두 딸아이가 지은 것이다. 작명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캐릭터 소개>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우유, 둥이, 쌍이, 박도, 오은, 뽀로로 부영, 부부


우유 (여 3)

초등학교 벼룩시장을 통해 우리 집에 들어온 아이. 귀여운 외모로 딸아이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보니 버릇이 좀 없다. 스스로를 공주라고 부르길 즐긴다.

둥이 (남 3)

코믹 상황을 전담하고 있는 판다. 중국 쓰촨 성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만난 친구. 말끝마다 "헐!", "대박!"이란 말을 달고 산다. 대나무 먹기를 즐기며 장난이 심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또 다른 여자 판다 쌍이(3)와 이란성쌍둥이.

부부 (여 8)

딸아이가 갓난아기 시절부터 있었던 친구. 한마디로 춤생춤사. 특히 삼바 음악을 들으며 온몸을 흔들어대는 막춤을 좋아한다. 춤을 추다가 뜻하지 않게 주변에 피해를 주는 일이 종종 있다.

부영 (여 6)

일본 오키나와 여행 때 만나 데려온 친구. 얌전하고 꾸미길 좋아한다. 가끔 고향 일본을 그리워한다.

뽀로로 (남 9)

명실상부 전 세계적 인기 캐릭터. 우리 집에서도 슈스 취급을 받는다. 주변 인형들이 싸인을 해달 라거나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할 때도 많다. 현재 학원을 다니며 유튜브 공부에 열심이다.

박도 (남 7)

언제나 듬직한 친구. 주변을 잘 배려하며 친구들을 잘 돕는다. 특히 우유를 잘 업고 다녀서 우유는 나중에 박도 오빠랑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

오은 (여 5)

참치를 좋아하는 고양이. 유연성과 점프력이 좋았는데 최근 다리 부상을 당해 치료를 받으며 조신하게 지내고 있다.



이밖에도 많은 캐릭터들이 있지만 이 정도가 주조연급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나이는 우리 집에 온 날을 기준으로 매년 한 살씩 늘어나고 있다. 쓰다 보니.. 정말 긴 세월 동안 켜켜이 쌓아온 캐릭터들 같아서 괜히 울컥해진다.


관계설정의 중요성


어쨌거나 캐릭터만 잡히면 끝이냐고? 아니다 하나 더 남았다. 캐릭터 다음에 중요한 건 바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형 하나하나가 재밌을 수도 있지만 서로 '관계'를 만들어서 활용하면 재미가 배가된다. 우리 집의 경우를 보면 우유는 딸아이에게 찰싹 붙어있고 박도 오빠를 좋아한다. 그러나 장난을 많이 치는 둥이, 부부와는 싸울 때가 많다. 둥이와 부부는 둘 다 장난꾸러기이지만 죽이 잘 맞아서 작당모의를 하다가 함께 장난을 치다 사고를 치는 경우도 많다. 평소 딸의 말을 잘 듣고 뭐든 열심히 하는 쌍이는 둥이와 쌍둥이 사이라 어지간한 둥이의 장난은 못 본 척 넘어가는 편이다 등등.. 캐릭터와 이런 관계 설정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인형놀이는 더욱 재밌어지게 된다.


읽느라 고생들 많으셨다. 자 이제 노는 일만 남았다. 우리 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인형 뽀로로는 일찍이 이런 말을 남겼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이렇게 놀다 보면 아이도 그리고 아빠도 무척 재미있을 것이다. 못 믿겠다고? 믿고 한번 해보시라. 10년 인형놀이 달인의 경험담이니!



keyword
이전 08화웃음의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