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법칙

이렇게 10년 키웠어요 여덟 번째 이야기

by 박뚠뚠

아무리 노련한 아빠라도 아이와 막상 놀아주려면 막막할 때가 많다.

어떻게 하면 아이와 재밌게 놀아줄 수 있을까?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아이는 재밌어하는데 아빠가 힘들다면 그 놀이는 오래가지 못한다

마치 한쪽이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연인관계가 금방 깨지듯이.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이.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어떻게 하면 아빠가 재밌게 놀 수 있을까?

10여 년간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

아빠가 재밌으려면 다른 거 없다.

그저 딸아이가 재밌다는 리액션만 계속해줘도 힘이 난다.

절로 재밌어진다.

연예인들 앞에 동원 방청객이 앉아있는 이유와 같다고 보면 된다.

아이가 재밌으면 아빠도 재밌다는 거다.

결국 원점.


어떻게 아이를 재미있게 해 줄까 고민하다가

직업정신을 살려

놀이에 코미디의 요소를 가져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저명한 박사님이 학술적으로 정리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예능 PD로 살다 보니 사람을 웃기는 데는 일종의 법칙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법칙들을 적용해 놀아주었더니 실제로 아이가 좋아했다.

그 황금의 비책들을 이 자리에서 하나씩 소개해보고자 한다.


내 아이를 웃게 하는 세 가지 비결


우선 첫 번째는 예열과 반전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 . . . .

세 여자가 만나 수다를 떨고 있다.

첫 번째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남편은 나를 너무 아껴서 매일 손수 밥상을 차려줘.

두 번째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남편은 나를 너무 아껴서 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줘.

그러자 마지막 여자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남편은 나를 너무 아껴서.. 내 몸에 손끝 하나 안대!!

. . . . .


이 유머에서 첫 번째 두 번째 여자는 예열을 한 것이고

마지막 여자의 말은 반전을 준 것이다

앞 두 여자의 깔아주는 평범한 멘트가 없었다면

마지막 여자의 말이 지금보다 덜 웃겼을 것이다.

앞에 두 여자로 예열을 하고 나니 뒤 여자의 말이 더 웃긴 것이다.

(예열은 집중시켜 기대하게 하는 효과가 있기도 하고, 시선을 돌려 예상 밖 웃음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이 유머에는 반전 요소도 숨어있다.

'나를 너무 아끼다'와 '손끝 하나 안 댄다'는 언발란스가 주는 웃음인 것이다

'나를 너무 아낀다'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다음 말 역시 앞에 여자들과 비슷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거기서 예상을 깨는 말을 함으로써 웃음을 주는 원리이다.


두 번째는 반복과 슬랩스틱이다

놀다가 아이가 웃는 포인트가 있다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꼭 반복을 해줘야 한다.

그러면 무조건 웃을 것이다. 최소 그날 하루만큼은.

참고로 4~5세 아이들은 똥이나 방귀 얘기 말 만 들어도 빵 터진다.

그야말로 치트키이다.

아끼면 똥 된다.

무조건 쓸 수 있을 때 써야 한다.


그리고 슬랩스틱.

또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 . . . .

어느 대학 조용한 강의실.

근엄한 표정의 노교수가 문을 열고 저버 저벅 걸어온다

학생들은 긴장하고 수업 준비를 한다.

그런데 그 교수가 들어오다가 스텝이 꼬이면서 넘어졌다고 치자.

웃지 않고 배기겠는가?

슬랩스틱의 위대함이다.

단순하지만 어려운 코미디.

정확하게 계산이 되어야만 웃긴 코미디.

그래서 교수가 넘어지는 포인트도 중요하다.

어디서 어떻게 넘어질 것인가?

이왕 넘어지는 거 곱게 넘어지지 말고 비틀 대다가 넘어지면 더 웃길 것이다

게다가 한번 넘어졌다가 일어나려고 책상을 짚었는데 그게 기우뚱하면서 또 넘어지면 두배로 웃길 것이다.

. . . . .


다시 우리 가족 이야기.

반복과 슬랩스틱이 겹쳐진 경우였는데.. 하루는 조그마한 인형을 갖고 놀다가

내가 인형을 잘못 세우는 바람에 그 인형이 바닥에 픽 쓰러진 적이 있었다.

아이의 눈엔 그 실수가 우스웠나 보다.

별것도 아닌 일에 엄청 웃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슬랩스틱의 힘이다.

별것도 아닌데 동작 하나로 웃긴 상황.

그래서 실수인 척 한번 더 쓰러뜨려봤다

그러니 아이가 또 웃었다

옳다구나 싶었다.

그 뒤로 수시로

"아이고 배고파" 하면서 쓰러지고

"어머머 미끄럽다" 하면서 쓰러지고

"나 좀 잡아줘 안 잡아주면 어떡해" 하면서 쓰러지고 등등

말도 안 되는 핑계들을 다 갖다 붙여서 인형을 넘어뜨렸더니 확률 100%로 웃음을 보였다.


이런 반복이 지속되면 캐릭터가 되는 것이다

(캐릭터 빌드업 얘기는 다음 편에서 자세히 계속해보겠다)

그다음부터는 그 사람(놀이에선 인형)이 나오기만 해도 기대가 되는 심리이다.

'지난 방송에서는 김준현이 라면 먹으면서 되게 웃겼는데 오늘도 치킨 먹는 걸로 웃겨주겠지?'

시청자들의 이런 심리와 비슷하다.

아이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지난번에 넘어지는 거 되게 재밌었는데 오늘은 어떻게 넘어질까? 재밌겠다.'


마지막으로 꾸준함과 체력이다.

백약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쓰지를 못한다면.

아무리 이론적으로 무장되어 있다고 해도 아이들은 최소 2~3시간은 놀아줘야 만족을 한다.

적어도 우리 딸은 그랬다.

한 시간 정도 놀고 그만 놀자 하면 입이 삐죽 나왔다.

그럴 거면 차라리 시작을 안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꾸준히 놀기 위해선?

당연히 체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아빠들 평소에 얼마나 힘든가?

특히 집에 있는 게 도대체 왜 때문에 회사 있을 때 보다 더 피곤하단 말인가!!

나도 안다.

그래서 난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는 커피를 주말이면 두 잔씩 마시곤 했다.

슬프다고? 어쩔 수 없다.

우리 아이가 나와 놀면서 웃는 얼굴, 그 예쁜 모습을 볼 수 있는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보통 2~3학년, 길게 봐야 5~6학년까지 일 것이다.

그때 되면 아빠가 놀아달라고 사정사정을 해도 본체만체할 것이다.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 최선을 다해 놀아줘야 한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혹시 아는가?

스무 살 넘어 아빠랑 소주 한잔 하러 팔짱을 끼고 걸어가면서 이렇게 말해줄지.



어릴 때 아빠랑 인형 놀이하는 거 진짜 재밌었는데..
아빠도 기억나?


세상 모든 아빠들..

진심으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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