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나 짓고 살아야지

이렇게 10년 키웠어요 열아홉 번째 이야기

by 박뚠뚠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힘들 때마다 흔히들 내뱉는 말이 있다. “다 때려치우고 시골 가서 농사나 짓고 살아야지.” 이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지 내 나이 40이 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평소 귀농이나 농사 같은 것들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 도시에서만 나고 자란 서울 촌놈인지라 초록색 풋고추와 빨간 고추가 다른 품종의 고추인 줄 알았을 정도로 농작물이나 농사에는 일자무식이었다. 그러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 '농사'라는 걸 짓게 되었다. 어느 날 구청에서 진행하는 주말농장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신청 후 당첨이 되고 3만 원만 내면 1년 동안 조그마한 땅을 분양받아 경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했다. 집에만 있기는 답답하고 그렇다고 매 주말마다 어디 돌아다닐 곳을 찾는 것도 마땅치 않던 차였다. 농사를 통해서 딸아이에게 자연의 섭리, 생명의 소중함 뭐 그런 거창한 교육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노림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농사 뭐 그까이꺼 대충 씨 뿌리고 나서 가끔 물이나 주면 저절로 크는 거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강했었다.

그런데 문득 나보다 먼저 아이와 함께 주말 농장을 경험한 한 후배가 언젠가 한숨과 함께 내뱉었던 말이 떠올랐다. “아유~ 형 농사 그거 만만치 않아요.” 만만치 않다고? 뭐 그렇다고 부딪쳐보지도 않고 그만둘 수는 없는 거 아니겠는가?


절대 '그까이꺼'일 수 없는 농사


아직 찬기가 가시지 않아 쌀쌀했던 3월 어느 토요일.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김포공항 근처 서울의 가장 끄트머리 동네인 오곡동에 있는 주말농장을 처음으로 찾게 되었다. 사전 안내사항을 읽어 보니 그날 오면 씨도 뿌리고 간단하게 사전교육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도착해보니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우선 우리 땅에 가보았다. 각 구역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었는데 우리는 251번이었다. 인생 처음으로 가져보는 내 땅! '아 땅을 갖는다는 게 이런 기분인 건가, 나도 그럼 지주인 건가?'라는 쓸데없는 생각은 잠시만 했다 곧 접었고 이내 어떤 작물을 키워야 할까로 고민이 시작됐다. 우선 여기저기 귀동냥으로 듣기에 상추가 가장 빨리, 가장 잘, 그리고 가장 쉽게 키울 수 있다고 해서 첫 번째로 선택. 그리고 우리 가족이 평소 즐겨 먹는 감자와 당근을 선택했다. 주말 농장 한편에 모종과 씨를 파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의 추천이기도 했다.

우선 땅 고르기 작업을 해야 했다. 땅을 한 번씩 뒤엎어 골고루 섞어 준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비료도 사다가 뿌렸다. 호미나 삽, 물뿌리개 같은 도구는 농장 한편에 준비되어 있어서 자유롭게 빌려 쓸 수 있었다. 한쪽 구석에 상추(모종)를 심고 차례대로 감자와 당근 씨를 뿌렸다. 이렇게 해서 첫날 작업 마무리. '농사 뭐 별거 아니구먼.' 첫출발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다시 주말이 되어 농장을 찾아가 보니 손톱만큼 새싹이 올라와 있었다. 놀라웠다. 딸아이도 신기한 듯 한참을 바라보았다. 순조로운 진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도 딱히 힘든 일은 없었다. 차로 20~30분만 타고 나와도 이런 시골 느낌이 나는 곳이 있다니 뭔가 리프레쉬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무탈하게 농사가 쭉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4월이 지나고 5월쯤 접어들자 무참히 깨지기 시작했다. 우선 당연한 얘기지만 날씨가 너무 더웠다. 게다가 역시나 당연한 얘기지만 농사를 짓는 땅이다 보니 햇빛을 피할만한 그늘이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생각보다 농사란 게 참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잡초가 다양하고 많고 번식력이 좋은지 처음 알았다. 갈 때마다 뽑는데도 다음 주에 가면 어김없이 자라나 있었다. 뿌리째 뽑지 않고 귀찮다고 대충 중간을 끊어 놓으면 금방 다시 자라났다. 내 통장에 돈이 잡초처럼 잘 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또 농사에서 힘들었던 점. 자세가 안 나왔다. 굵고 짧은 하체를 지닌 덕에 평소 쪼그려 앉는 자세를 할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농사의 기본자세는 쪼그려 앉기였다. 쪼그리기 힘들어서 다리를 펴고 허리를 숙이면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불행 중 다행인 건 아내가 생각보다 농사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단 거였다. 어차피 도시에서 나고 자란 건 마찬가지였지만 기술이나 끈기면에서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래 뭐든 잘하는 사람이 해야지.' 언젠가부터 나는 아내가 뽑아놓은 잡초를 갖다 버린다거나 물을 길어온다거나 하는 등의 조수 역할을 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아니 정말 조수 역할이 만족스러웠다.

주말농장의 소소한 행복


주말 농장이 힘들고 짜증 나기만 했던 건 당연히 아니다. 제일 기다려지는 순간은 그날의 농사를 마치고 나서 손을 씻고 옷과 신발에 묻은 흙이며 먼지들을 털어낸 후 한편에 마련된 평상에 앉아 집에서 싸온 음식을 먹을 때였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걸 거다. 농사 후 맛있게 먹으려고 유부초밥도 만들고 김밥도 싸고 곁들여 먹으려고 된장국을 끓여 보온병에 담아 가기도 하고 어느 날은 수박도 잘라가고 딸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싸가서 먹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걸 새참이라고 하는 거였다. 꿀맛이었다.

먹는 얘기가 좀 길어지는 것 같지만 이 얘기는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상추를 선택한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참으로 쉽게 그리고 빨리 자라주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상추 키워서 먹어보면 마트에서 상추 사 먹기 힘들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마트에 가면 '상추 겨우 저만큼 사려고 돈을 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직접 키운 상추를 먹느라 매주 주말마다 고기를 사다 맛있게 구워 먹었다. 소와 돼지를 넘나들며 삼겹살, 목살, 안심, 등심, 차돌박이 종류를 가리지 않고 구웠다. 이는 곧 가족의 화목과 평화로 이어졌다.

그리고 원래 의도했던 대로 주말마다 갈 곳이 있다는 사실은 적당한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비가 와도 가야 하고 어디 볼일이 있어 다른 곳을 가야 할 때도 잠깐이라도 농장에 들렀다가 가려고 했다. 이런 걸 통해서 책임감이란 걸 가르쳐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씨를 뿌리고 새싹이 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고 하는 과정을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도 아이에겐 소중한 경험이었을 거다. 농사를 짓는다고 해봐야 아이는 그저 미니 호미를 가지고 깔짝대는 수준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생명이라면 그 어느 것에게나 적용되는 세상의 이치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감자와 당근도 수확할 시기가 왔다. 감자는 생각보다 알이 굵게 잘 자라주었고 당근은 씨를 뿌릴 때 간격을 너무 촘촘하게 했던 탓인지 크기가 실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이 실컷 먹고도 남을 양이어서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주며 소소한 기쁨도 느낄 수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의 주말농장 체험은 그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한 해 동안 충분히 경험해서였을까? 가족 중 그 누구도 내년에 또 하자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도 당연히 평생 지을 농사는 충분히 지어보았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시간이 지난 기억은 아름답게 포장 되어 추억이 되는 법. 요즘은 가끔 이런 상상도 해본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은퇴를 하고 딸아이도 장성해 자기 살길을 찾아 나서고 나면 한적한 시골에 집을 짓고 조그맣게 농사도 지으며 살고 싶다고. 갓 딴 상추와 깻잎에 고기를 싸 먹고 쌈장에 풋고추를 푹 찍어먹으면 참 맛날 것이다. 물론 맥주도 시원하게 한잔 곁들여야 하고. 그런 아름다운 인생 후반전을 위해서 아내가 지금부터 건강관리를 잘해주었으면 한다. 농사를 지으려면 건강과 체력이 필수일 테니.


물론.. 농담이다. 괜히 우리 아내에게 전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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