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요리사

이렇게 10년 키웠어요 스무 번째 이야기

by 박뚠뚠

앞서도 밝혔듯이 개인적으로 요리하기를 즐겨한다. 기특하게도 설거지하는 것까지 즐기는 편이다. 변태적인 습성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회사일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피곤하고 짜증도 많이 난, 한마디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엔 요리를 하면서 그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요리라고 해봐야 거창한 것은 아니고 다음 날 딸아이가 먹을 반찬이나 국 같은 것을 만드는 건데, 집중해서 재료를 다듬고 자르고 지지고 볶고 끓이다 보면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머릿속이 깨끗하게 비워진다고나 할까? 물론 다 만든 요리를 맛보며 녹슬지 않은 나의 실력에 감탄하는 재미도 있다. 심지어 요리를 하느라 여기저기 어질러 놓은 접시와 조리기구들을 마지막에 깨끗이 설거지하면서 쾌감을 얻기도 한다. 변태 맞다.


이런 아빠 밑에서 자란 덕인지 언젠가부터 아이는 자기도 직접 요리를 하게 해달라고 조르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서 돈을 내고 체험할 수 있는 피자나 케이크 만들기 등의 원데이 클래스도 수강해봤지만 매번 그러기에는 한계가 있는 터. 아예 집에서 간단하게 요리 체험을 하게 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어렸을 때이니 불 앞에서 해야 하는 요리는 가급적 피할 수밖에 없어서 어떤 요리가 좋을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아이와 함께 만들기에 좋은 요리는?


지금부터 수년간의 고민과 수차례 실험 끝에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우리 아이의 요리 입문에 좋을 요리 리스트>들을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은 처음부터 완성단계까지 풀코스로 체험을 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이에겐 완성의 기쁨도 중요하지만 각 단계별로 자기가 무언가 기여했다는 만족감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 아이는 그랬다.


첫 번째 추천 요리는 ‘수제비’이다. 비 오는 날 또는 날이 쌀쌀한 날 끓여먹으면 속도 뜨뜻해지고 마음마저 푸근해지는 한국인의 소울 푸드 같은 것 아니겠는가. 사실 수제비 만들기라는 게 딱히 어렵지도 않다. 다시물만 잘 내면 - 심지어 다시팩도 시중에 많이 나온 상태- 그냥 밀가루 반죽해서 툭툭 끊어 넣는 게 다 일정도로 쉽고 간단한 요리이다.


그런데 아이와 수제비 만들기에 있어서의 무엇보다 큰 장점은 밀가루 반죽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클레이(찰흙)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아빠가 할 일은 커다란 그릇에 물과 밀가루를 비율에 맞게 넣는 것뿐이다. 그러고 나서 아이에게 주걱 같은 것을 주고 휘휘 저어주게 한 다음 조금씩 치대기 시작하면 점차 반죽의 형태가 갖추어진다.


이때부터 아이들이 재밌어하는 단계다. 아이들은 그냥 밀가루를 주무를 뿐인데도 한참을 흥미를 갖고 논다. 사실 밀가루 반죽을 한다는 의미보다는 장난을 치는 것에 가깝긴 한데 아무런들 어떠랴 아이가 재밌어하는데. 밀가루로 토끼도 만들었다가 공룡도 만들었다가 하다 보면 20~30분은 훌쩍 지나간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사항. 그깟 밀가루 사방으로 튀겨 옷과 바닥이 지저분해졌다고 짜증 내거나 당황하지 말자. 나중에 치우면 그만인걸 뭐.


이쯤에서 멈춰도 좋고 아이가 초등학생 이상이라면 반죽을 떼어 넣기까지 진도를 나가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끓는 물 앞이니 조심 또 조심시켜야 하고. 물에 반죽을 뚝뚝 끊어 넣는 행위 역시 아이가 꽤 흥미를 느낀다. 여기서 또 주의할 점. 옆에서 그렇게 두껍게 넣으면 잘 익지 않아서 먹질 못한다는 둥 어쩌고 잔소리는 하지 말자. 이건 어디까지나 요리이기 전에 놀이이니까. 그리고 안 익은 것 좀 있음 어떤가? 만능 위장을 갖고 있어서 뭐든 먹어도 탈이 안나는 아빠들이 버티고 있지 않던가. 수제비가 다 끓고 나면 자기가 만든 음식이라 맛이 좀 떨어질지라도 아이가 만족스럽게 먹는다는 장점도 있다. 수제비 만들기 응용 종목으로는 만두 만들기, 송편 만들기 등이 있다. 어디선가 듣기론 아이들이 이런 놀이를 자주 하다 보면 손에 있는 소근육이 발달해서 어쩌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두 번째는 조금 더 간단한 요리이다. 핑거푸드 같은 걸로 흔히 접할 수 있는 바로 '카나페' 만들기이다. 카나페라고 하면 괜히 이름부터 뭔가 거창할 거 같은데 사실 과자(주로 참크래커) 위에 햄이며 치즈를 크기에 맞게 올려놓으면 끝인 아주 간단한 요리이다.


카나페 만들기의 장점은 재료면에서 아이가 무궁무진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의 경우 과자 위에 햄이나 치즈 또는 참치를 먼저 올리고 그 위에 토마토나 딸기 같은 것을 얹기 마련인데 우리 딸은 아주 독창적으로 카나페를 만들었다. 크래커 위에 딸기잼을 바르고 귤이나 사과를 한 조각씩 올리는 건 아주 노멀 한 케이스다. 심지어 그런 경우 맛도 있다. 본격적인 응용 편으로 들어가자면 크래커 위에 초콜릿과 마이쭈를 올리기도 하고. 꿀을 잔뜩 바르고 자일리톨 캔디를 얹는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집에 먹다 남아서 굴러다니는 모든 식재료들이 올라간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번은 사이다에다가 밥알 몇 개를 집어넣고 탄산 식혜를 개발해내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다. 굳이 따라 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여기서 또 주의할 점. 아이가 자신만의 조합으로 새로운 카나페를 만들어 낼 때마다 옆에서 시식을 하는 아빠는 리액션을 확실히 해줘야 한다. 없는 말을 지어내라는 건 아니다. “에이 이게 무슨 맛이야! 음식 갖고 장난치는 거 아냐!” 이런 말 말고.. “와 이런 맛은 정말 처음이야 진짜 진짜 맛있어!”라며 마치 태어나서 세상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은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지손가락을 쌍으로 올리며 호들갑을 떨어주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다.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쿠키' 만들기이다. 마트 또는 인터넷으로 쿠키 믹스를 사면 준비 끝이다. 쿠키믹스에 녹인 버터와 계란을 넣고 반죽을 해주기만 하면 된다. 수제비 만들기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조몰락거리는 재미와 더불어 모양이 끝까지 유지되기 힘든 수제비와 달리 아이가 만든 모양이 거의 그대로 최종 결과물로 이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원, 삼각형, 사각형, 별, 하트 등 기본 모양서부터 지렁이, 꽈배기, 똥 등등 마음 가는 대로 손가는대로 만들면 그만이다. 아빠와 딸이 마주 앉아 누가누가 특이한 모양을 만드나 대결하는 재미도 있다. 반죽 안에 작은 초콜릿이며 건조된 과일 또는 견과류 같은 것을 넣으면 맛과 모양이 달라져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그리고 데코펜으로 쿠키 위에 글자를 쓰거나 모양을 그릴 수도 있다. 물론 오븐에 굽는 것은 아빠의 몫이다. 참고로 쿠키 만들기의 또 다른 장점은 주변에 선물로 나눠 주기에 적당하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서부터 직장동료들의 밸런타인데이 선물까지. 딸아이 덕분에 쿠키 선물하고 딸 잘 뒀다는 인사도 참 많이 들었다. '


이외에도 커다란 양푼에 밥과 원하는 반찬을 넣고 직접 비벼 먹어보게 하는 비빔밥도 좋고, 김에다가 밥만 얹어주고 자기가 원하는 재료를 얹어서 말게 하는 김밥도 요리놀이에 좋은 재료이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다면 계란 프라이 정도는 계란을 깨는 것서부터 시작해 직접 시켜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요리 놀이의 마지막 장점. 재밌게 요리를 하고 나서 먹는 기쁨 또한 크다는 점이다. 아이랑 알콩달콩 요리를 만든 후에 온 가족이 식탁에 앉아 그 요리를 먹으며 음식 평을 하고 칭찬을 주고받는 정겨운 모습. 생각만 해도 흐뭇하지 않은가? 오늘 당장 아이와 함께 요리를 시작해보시길! 그렇게 요리의 기쁨을 알게 된다면 어느새 스트레스받는 날마다 요리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어쩌다 한 번씩 아내에게 쓸모 있는 사람 대접을 받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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