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아빠들이라면 대부분 120% 공감하겠지만, 아이랑 놀아준다는 건 진짜 보통일이 아니다. 논다는 표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중노동에 가깝다. 다만 부모가 자식하고 놀아주는 데 귀찮다거나 힘들다는 내색을 하기가 죄스러워 표현을 잘 못할 뿐이다.
'미녀와 함께 있으면 1시간이 1분처럼 느껴지지만 뜨거운 난로 위에서는 1분이 1시간보다 길게 느껴진다'는 위대한 아인슈타인 박사님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그저 두 시간만 놀아 주면 되는데 왜 그리 시간은 안 가는지! 도대체 허리며 다리며 왜 온몸이 안 쑤시는 데가 없는지! 미안하게 어쩌자고 자꾸 하품은 나오는지! 우리 어릴 때는 혼자서도 참 잘 놀았던 거 같은데 우리 애는 왜 자꾸 놀아달라고 하는지! 신기하게도 놀이만 끝나면 왜 정신이 맑아지는지!!
하지만 아빠가 되어서 ‘나 때는 말이야’라면서 아이 탓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법. 지금부터 아빠들의 로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회심의 카드를 공개하고자 한다. 허리 쭉 펴고 편안하게 누워서 할 수 있는 놀이, 온몸은 그저 가만히 있고 입만 나불대면 되는 놀이, 어쩐지 교육에도 도움 될 것만 같아 죄책감도 덜 수 있는 놀이. 바로 끝말잇기 되시겠다. '겨우 그거?'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아빠들에게 익숙한 상황을 한번 상상해보자. 어느 일요일 오후 점심도 배불리 먹었겠다..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 때문에 몸은 노곤 노곤하고 눈꺼풀은 천근만근인데 애는 자꾸 놀아달라고 칭얼댈 때.. 그럴 땐 이렇게 외쳐보는 거다.
우리 끝말잇기 놀이할까?
당연히 무척 밝은 표정으로 정말 재미있을 것 같지 않냐는 듯 기대되는 얼굴은 필수다. 그런 다음 아이와 함께 침대에 가서 편한 자세로 나란히 눕는다. 엄마가 함께 참여해도 좋다. 그리고 간단하게 끝말잇기 규칙을 설명해준 후 시작하면 되는 거다. 이게 사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우리 애 같은 경우는 5~6살부터 즐겨했는데 그때마다 되게 재밌어했다.
아빠도 아이도 즐거운 끝말잇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체크 포인트! 승부욕에 불타서 아이를 이겨먹으려고 하면 절대 안 된다는 거다. 특히 우리 딸은 지기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아빠가 눈치 없이 어려운 단어를 얘기하는 바람에 말문이 막히면서 울며불며 끝나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러니 적당한 난이도를 유지하면서 단어를 이어나가는 게 중요하다. 엄마 - 마차 - 차도 - 도로 - 로기(타요 친구 다들 아시죠?) - 기분 - 분수 - 수박 - 박수... 뭐 이런 식이다. 여기서 몇몇 특정 단어들을 조심해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사랑, 그릇, 기쁨 이런 것들과 같이 한방에 게임이 끝나는 단어를 얘기했다가는 이내 울그락 불그락 아이의 표정이 변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한반복으로 끝말잇기를 계속 이어갈 순 없을터. 적당한 단어가 나왔다 싶으면 "어? 뭐가 있지? 왜 생각이 안나지?" 하면서 잠시 안절부절못하다가 "아 생각 안 난다! 아빠가 졌어!" 하며 깔끔하게 백기를 들어야 한다. 정리하자면 적정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오래도록 끌고 나가다가 깔끔하게 끝내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놀이를 통해 아이의 어휘 실력을 향상하는 게 목적이기도 하니까. 물론 아주 조금 아빠 몸이 편하다는 건 덤이고.
그리고 우리 집 같은 경우는 조금 어려운 단어가 나올 때마다 꼭 "이 단어 뜻 알아?" 하고 물어본 다음에 안다고 하면 아이에게 단어에 대해 설명을 해보라고 했고 모른다고 하면 뜻을 가르쳐 줬다. 해당하는 예시를 들어가면서 말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우유라고 하고 내가 유기농이라고 했다고 치면.
“유기농이 무슨 뜻인지 알아? 우리 예전에 주말농장 할 때 상추 같은 거 키워봤잖아. 근데 그런 상추 같은 채소들이 벌레 같은 게 너무 많아 잘 자라지 않을 수 있어서 벌레 못 오게 약을 뿌려. 그걸 해충제라고 해. 우리 집에도 모기 잡는 스프레이 칙칙 뿌리는 거 있잖아? 그거랑 비슷한 거야. 근데 그걸 너무 많이 뿌리면 나중에 사람이 그 채소를 먹을 때도 몸에 안 좋은 해충제를 함께 먹게 되는 셈이야. 그런 의미에서 해충제를 안 뿌린 채소를 먹으면 좋겠지? 해충제 같은 약을 안 뿌리고 키우는 걸 유기농으로 키웠다고 해 알겠지?"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당연히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이의 어휘력에 맞추어 단어의 난이도를 높여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순간순간 예전보다 훌쩍 단어 실력이 올라간 걸 느낄 수 있을 거다.
끝말잇기와 함께 자라나는 아이
나중에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영어단어로 끝말잇기를 할 수도 있다 milk - korea - apple.. 이렇게 말이다. 그리고 유사한 놀이 형태로 특정 글자로 시작되거나 끝나는 말놀이도 재미있다. 어릴 때 “리리리자로 끝나는 말은..” 이란 노래 다들 불러봤을 거다. 오리 - 개구리 - 개나리 - 꾀꼬리 - 유리 항아리.. 이런 식인 거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또 한 번 놀이를 업그레이드해보자면 ‘여름 하면 생각나는 것 말해보기’, ‘빨간색과 어울리는 것 말해보기’ 등도 소소하게 재미있으면서 한두 시간은 거뜬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놀이이다. 온 가족이 침대에 편안하게 나란히 누워 끝말잇기 같은 놀이를 재미나게 하는 모습. 생각 만해도 평화롭고 흐뭇하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주의사항.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누운 자세로 게임에 임하다 보면 깜빡 잠이 들어버릴 수도 있다. 그랬다간 아이가 이렇게 외칠지도 모른다. “아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 해! 얼른 말해!!” 그러니 눈에 힘 팍 주고 참아보시라. 누가 아는가? 혹시 그날 운이 억세게 좋다면 끝말잇기 하다 말고 애가 먼저 스르르 잠들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