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유치원생의 마라톤 도전기

이렇게 10년 키웠어요 열여덟 번째 이야기

by 박뚠뚠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하루하루 사는 것에 바빠서 건강관리를 특별히 하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핑계다. 건강관리는 커녕 불규칙한 식사에 고기에 술에 스트레스에... 몸에 안 좋은 행동들만 골라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역시 핑계다.


당연히 운동으로 부를 만한 행위들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도 예전에는 일주일에 2~3회씩 동네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을 하는 척이라도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 마저도 그만두게 되고. 요즘엔 가끔 밤에 동네 한 바퀴 산책하는 정도? 워낙에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고 해 본 적도 없는 데다가 특히나 땀이 많은 편이라 격렬한 운동은 아무래도 피하게 된다.


자, 이제 이 정도 밑밥 깔았으니 나와 마라톤이 얼마나 상관없는 것인지 충분히 설명됐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그런 내가 몇 해 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당연히 딸 때문이다. 물론 10km 단축마라톤이었지만, 러닝머신 위에서도 절대 시속 7~8km를 넘기지 않을 정도로 뛰는 걸 안 좋아했던 내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줄이야.


평소 마라톤에 대해선 1도 관심 없었지만 몇 해 전부터 달리기 열풍이 불면서 마라톤 대회가 그야말로 핫하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었다. 사람들이 모여 같이 몸도 풀고 가수가 와서 노래도 하고 그리고 어쩜 운동하자고 모인 자리에 다들 그렇게 꾸미고들 오는지! 마치 축제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는 거다. 한마디로 '트렌드'라고 했다. 그래? 그렇다면 그 좋은 경험을 우리 딸을 안 시켜볼 수 없지 않겠는가? 좋다 한번 가보는 거다!


동아마라톤대회에 참가하다


마침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동아마라톤대회가 열리는 시기였다. 당연히 42.195km 풀코스는 아니고 10km 코스가 있었다. 들어보니 10km 정도는 시간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어지간한 사람은 완주가 가능하다고 했다. 근데 문제는 딸의 나이가 겨우 7살이라는 거. 유치원생도 10km 마라톤이 가능할까? 정 안되면 둘러업고라도 뛰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딸내미의 다양한 경험을 위해서라면 10km 아니라 100km는 못 뛸쏘냐! 사전에 코스를 살펴보니 올림픽 공원에서부터 잠실운동장까지로 잡혀 있었다. 마침 처가가 근처여서 자주 다니던 곳이라 대충 거리를 가늠해보니 그 정도는 해볼 만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까짓 거 한번 해보는 거지 뭐!

드디어 마라톤 대회 당일. 아침 일찍 일어나 대회장인 올림픽공원에 도착해보니 아침 댓바람부터 다들 어디서 이렇게들 왔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형형색색 옷을 입고 나와 몸을 풀고 있었다. 동호회에서 단체로 나온 사람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사람,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 등등 각양각색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다들 표정이 밝고 활기차 보였다. 이 틈에 껴있다는 것 만으로 벌써 에너지가 샘솟고 조금은 건강해진 느낌?


맨 앞 사회자의 구령에 따라 다 같이 스트레칭을 한 후 드디어 그룹별로 10km 마라톤 출발!!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게 웬일. 생각보다 딸아이가 너무 잘 뛰는 게 아닌가. 약 2km 지점까지 비록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한 번도 안 쉬고 뛰는 것이었다. 대견했다. 하지만 절대 무리할 필요는 없는 법. 어차피 기록 경신하고 우승하기 위해 나온 건 아니니까. 페이스대로 뛰다가 걷고 싶으면 걷고 쉬고 싶으면 쉬고 했다, 유사시 중간에 빠져나와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도 있었다.

걷다 뛰다 쉬다 하다 보니 어느새 중간지점인 5km를 지나가고 있었다. "어라? 이거 잘하면 정말 완주도 할 수도 있겠는데?"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아내는 나에게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애인데 무리하게 하다가 자칫 병이라도 나면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평소에는 애가 조금이라도 아플 일이라면 펄쩍 뛰며 안 된다고 나서는 나인데도 이상하게 그날은 조금 무리가 가더라도 완주를 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괜한 승부욕인지는 몰라도 노력해서 끝까지 이뤄내는 성공의 경험을 주고 싶었달까? 중간중간 자원봉사자들이 건네는 음료수도 마시며 많이 힘들면 아예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한동안 쉬기도 하면서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는 터덜터덜 걸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만 뛰고 싶다고 칭얼대는 아이를 격려하며, 그만 뛰게 하자고 설득하는 아내를 말려가며 오다 보니 드디어 멀리 잠실 운동장이 보이기 시작. 그런데 문제는 달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교통통제를 마냥 계속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맨 꼴찌 격인 우리가 지나가면 뒤이어 따라오는 경찰차가 일반차들에게 도로를 열어주는 모양새였다. 아 부담스러워라! 민폐다 싶어 그만두고도 싶었지만 뒤에 경찰차가 마치 우리를 호위해주는 것처럼 따라와 주고 "힘내라 꼬마", "대단하다!!" 라며 손뼉 쳐주고 응원하는 분들도 있다 보니 '그래 조금만 조금만 더 가보자'는 생각으로 독려를 하였다.


고진감래의 귀한 경험

그렇게 한발 한발 나아갔고 결국 마지막 결승점 테이프가 보이니 환한 미소를 보이면서 마지막 힘을 내어 달리기 시작하는 우리 딸. 드디어.. 드디어.. '설마 완주하겠어?'라는 생각을 뒤엎고 우리 가족은 1시간 53분 4초의 기록으로 결승테이프를 통과하게 되었다, 이런 게 성취감일까 싶었다. 물론 딸아이 본인이 가장 크게 느꼈을 것이다. 힘들어도 지쳐도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달콤한 마무리가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실. 일찍이 SES도 말하지 않았던가 틀림없이 끝이 있다고..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쉴 수 있다고.. 인생이 뭐 그런 거다.


결승점을 통과하고 주최 측에서 주는 바나나며 빵 같은 간식을 맛있게 먹고 완주 기념 메달을 받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당연히 끝난 다음엔 신천에 가서 고기를 먹으며 가족끼리 첫 마라톤 자축 뒤풀이도 했다. 정작 그다음 날 딸아이는 쌩쌩하게 돌아다닌 반면 늙고 약해빠진 아빠는 삭신이 쑤셔 며칠 동안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는 슬픈 전설이..


인생은 마라톤이란 말을 많이 쓴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딸아이가 남들보다 빨리 갈 필요는 없으니 원하는 만큼 즐기면서 인생이란 마라톤에 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연히 중간에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다른 길로 갈아타도 된다. 쉬어가도 되고 물을 마셔도 되고 이상하다 싶으면 조금 뒤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나아가도 된다. 하지만 이것만은 꼭 기억해줬으면 한다.


네가 가는 모든 길에 아빠가 있을게.
밀어주기도 하고 당겨주기도 하고 아니면 멀리서 응원하기도 하면서
늘 지켜볼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한 발씩 앞으로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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