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딸의 노래방 데이트

이렇게 10년 키웠어요 열일곱 번째 이야기

by 박뚠뚠

고등학생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처음 노래방이란 곳엘 갔던 것은. 그 전엔 일본에서 전해져 온 하위문화쯤으로 여겨졌던 가라오케가 좀 더 대중적으로 자리 잡은 것이 노래방이었다. 최신 유행처럼 동네마다 메들리니 팡팡이니 하는 노래방이 한 두 곳씩 생기기 시작할 무렵, 그때는 노래방에 들어가면 먼저 돈을 동전으로 바꿔야 했다. 만원을 내면 500원짜리 20개를 주는 식이다. 물론 사장님 기분에 따라 서비스로 동전 한두 개를 더 얹어주기도 했다.


조악한 플라스틱 바구니에 동전을 그득 담고 방안으로 입장해 노래를 한곡 할 때마다 동전 하나씩을 넣는 식이었다. (그러고 보니 돌고 돌아 다시 코인 노래방이 생겼다고 봐야 하나?) 당연히 간주 점프라던가 1절만 부르고 끊는다던가 하는 경우는 없었다. 왜냐고? 돈이 아까우니까!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변진섭이나 심신 같은 가수들의 히트곡들을 목이 터져라 불렀었다. 고등학생이니 술 한 잔 입에도 안 대고 실론티 마셔가며 그렇게 신나게 놀았던 거다. 어떤 노래방에서는 손님이 부른 노래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주기도 했었는데 그게 신기해서 집에 와선 한참을 듣곤 하기도 했...

아재 스토리는 각설하고.


그 후로 난 노래방을 그리고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당연히 노래를 잘하지도 못하거니와 노래방 갈 시간과 노력으로 차라리 어디 가서 술 한잔을 더하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내가 노래 부르기도 싫은 데다가 남의 노래를 듣는 건 더더욱 고역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아마도 다들 그렇겠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면 본인의 취향쯤은 가볍게 무시할 정도가 되기 마련. 드디어 노래방에 내 발로 내 돈으로 그것도 기꺼이 갈 일이 생긴 것이다.


나중에 딸아이가 이 글을 보면 섭섭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딸은 객관적으로 음정이나 박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가창력 측면에서 봤을 때 노래 실력이 그렇게 썩 좋은 편은 아니다. 물론 내 귀엔 세상 어떤 소리보다도 아름답게 들리지만. 그래도 노래를 듣는 걸 꽤나 즐겨하는 편이어서 차를 타고 어디 좀 멀리라도 갈라치면 아빠한테 꼭 노래를 틀어달라고 해서 신나게 따라 부르는 편이었다. 어릴 때까지만 해도 동요 위주였는데 유치원에 들어가고 머리가 좀 굵어지면서 친구들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건지 슬슬 가요에 대한 니즈도 생기기 시작했다. 한때 전국 유치원생 베스트 애창가요였던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는 물론이고 지코의 '아무 노래' 그리고 사인을 받았던 인연으로 좋아하기 시작한 에이핑크 언니들의 노래까지. 처음엔 흥얼거리더니 나중엔 아빠에게 그 노래를 반복적으로 틀어달라고 해서 가사를 익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다 보니 이참에 아예 제대로 한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 백 년 만에 노래방이란 곳엘 가보는 거다!

당시 여기저기 코인 노래방이 우후죽순 생기며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문화 체험 차원에서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하루 제대로 날을 잡고 딸아이와 함께 집 근처 코인 노래방엘 가게 되었다.


딸 덕분에 코인 노래방에 가보다


코인 노래방이라 시간제는 안 되는 줄 알았는데 가능하다고 하기에 5,000원을 내고 30분을 예약했다. 드디어 입장. 생각보다 코인 노래방은 방 크기가 무척 좁았다. 아이도 뭔가 기대에 찬 표정. 심사숙고 끝에 첫 노래를 골랐다. 딸아이가 가요 중에 가장 좋아하는 에이핑크의 '노노노'를 부르기로 했다. 긴장된 표정에다가 두 손으로 마이크를 꼭 잡고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모습이 아빠의 눈엔 너무 귀엽기만 했다.

드디어 반주가 시작되고, 부단한 리슨 앤 리피트의 성과인지는 모르겠지만 화면에 나오는 가사를 생각보다 또박또박 잘 따라 부르는 게 아닌가. 음정과 박자도 그 정도면 나쁘지 않고. 이어지는 팡파르! "빰빠밤~ 와우! 어디서 좀 노셨군요!!" 높은 점수에 금세 보름달 마냥 환해지는 딸의 얼굴. 기세를 몰아 내친김에 아는 가요를 다 끄집어내어 불렀다. 아빠가 좋아하는 트와이스 노래도 몇 번 듣지 않았는데 곧잘 부르기도 했다. 재롱잔치 때 배워 알고 있던 '러브송'과 '오빠야'도 불러보고. 아는 가요 밑천이 다 떨어지자 이번엔 동요 메들리. 뽀로로부터 타요 그리고 크리스마스 캐럴까지! 소싯적 들었던 노래들을 싹 다 모아 신나게 불렀다.


노래방이 이렇게 재미있는 곳이었던가!


당연히 아빠인 나는 한곡도 부르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기는커녕 제대로 한 번 앉아보지도 못하고 - 공간이 워낙에 좁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벽에 바짝 붙어 서서 - 딸아이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사진으로 그리고 동영상으로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화려했던 30분(서비스를 좀 더 받은 거 같기도 하다)이 지나가고.. 노래방에서 나와 집에 가는데 딸아이에게 재밌었냐고 물어보니 대답은 “다음에 또 가고 싶어.” 그렇다면 대성공!

그 후 딸아이와 함께 한두 번 더 노래방을 갔었다. 최근엔 코로나 때문에 뜸해지긴 했지만. 아빠는 딸과의 노래방 데이트가 너무 좋았던 나머지 아예 블루투스 노래방 마이크를 사서 집이나 차에서 노래를 부르자고 꼬시는 중이다. 물론 아내와 딸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때때로 혼자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우리 딸이 나이 든 아버지를 데리고 노래방에 가줄 수도 있겠구나. 그때 노래방은 어떤 모습일까? 최신식 노래방 시설에 적응 못해 더듬더듬 노래하는 날 위해 이렇게 저렇게 설명도 해주겠지? 잘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 잘했다며 박수도 쳐주고 재밌었다며 나중에 또 오자고 말도 해주겠지? 아빠도 그랬으니 너도 꼭 한 번쯤은 노래방에 데리고 가줘야 해!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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