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문의 장점은 토론하는 힘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요즘 어린이 신문에는 아이들의 의견을 묻는 찬반 토론 형식의 콘텐츠가 정기적으로 실린다.
역시 예를 들자면...
"중국에서는 학생들한테 학교에 스마트폰을 아예 갖고 오지 못하게 하려고 한대. 이것에 대해서 찬성, 반대하는 의견들이 있는데 찬성하는 쪽은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게 하려면 또 시력이 나빠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선 학교에 스마트폰을 가져오지 못하게 하는 게 맞다는 의견이고, 반대하는 쪽은 아무리 아이들이라지만 스마트폰을 아예 못 갖고 오게 하는 건 자유를 뺏는 것이다, 또 무조건 못쓰게 할 게 아니라 잘 쓰는 방법을 교육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의견이 나뉜대. 어떻게 생각해?"
내가 물어보면 한참을 생각하다 이렇게 대답한다.
"음.. 스마트폰이 나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못 갖고 오게 하는 건 너무 한 거 같아. 그래서 내 생각엔 학교에 갖고는 올 수 있게 하는데 수업 시간에는 절대로 못 보게 해야 할 거 같아."
"(그래 네가 솔로몬이다!) 아 그렇게 생각했구나. 맞아 그렇게 할 수도 있어 그런 걸 절충안이라고 해. 양쪽 입장을 다 생각한 거니까 아빠는 좋은 생각인 거 같아."
이렇게 특정 결론을 유도하지 않고 최대한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주려고 한다. 요즘같이 학교에 자주 못 가는 코로나 시대에 이런 식으로라도 토론의 맛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물론 토론은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양쪽의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이와 신문 읽기에서 중요한 건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것. 내가 아무리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도 아이에게 똑같이 주입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좀 더 자라서 본인의 생각으로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싶다.
신문을 읽다 보면 이야기의 주제가 무궁무진하게 확장되기도 한다. 어느 날은 미국과 중국에 대해 얘기하다가 어느새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 나아가 6.25 전쟁, 남북 관계, 통일 문제까지 이야기가 뻗어나갈 때도 있었다. 최근에는 영국 왕실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에 관한 얘기도 했다. 물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무엇보다 중요한 공감 능력
얼마 전 있었던 일 하나. 저녁을 먹고 소파에 같이 앉아 며칠 밀린 신문을 한꺼번에 읽고 있었다. 여러 기사 중'인공근육'에 관한 기사를 읽던 중이었다. 우선 기사를 이런 식으로 요약해 주었다.
"과학자들이 특별한 섬유를 만들었는데 그 섬유로 만든 옷을 입으면 사람이 힘이 세진다는 거야. 평소에 10Kg 무게를 들 수 있다면 그 옷을 입으면 400Kg까지 들 수 있게 된대."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식으로도 설명을 했다.
"우리 마트에서 쌀 사 오잖아. 그게 10Kg이거든? 보통 땐 아빠가 하나밖에 못 들고 오는데 그 옷을 입으면 한 번에 40포대까지 들 수 있는 거야. (이쯤에선 진짜 40포대쯤 든다는 듯 실감 나게 액션을 해줘야 한다) 힘 안 들고 엄청 편하겠지?"
딴에는 한발 더 나가보고자 부연 설명을 했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나 무거운 물건을 들 일이 많은 분들한테는 참 좋은 기술인 거 같아 이런 옷 얼른 나와서 사람들이 입고 다녔으면 좋겠다. 앞으로 이런 옷이 발명되면 정말 편하겠지?"
그런데 그때 딸아이가 뜻밖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럼 택배 아저씨들이 무거운 생수통 같은 거 배달할 때 입을 수 있겠네"
아이 눈엔 평소에 택배 아저씨들이 무거운 박스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나 보다.
"맞아. 택배 아저씨들이 입으면 힘들지 않고 정말 편하게 일하실 수 있어 좋겠다 그치?"
이렇게 마무리하고 다음 기사로 넘어가려는 순간 훅 들어오는 딸아이의 기습 공격.
"근데 그럼 택배 아저씨들한테 안 좋은 거 아냐?"
"(응??) 왜 그렇게 생각해?"
"한 아저씨가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들 수 있으면 다른 택배 아저씨들은 할 일이 없어지잖아. 그럼 그 아저씨들은 일자리를 잃어서 안 좋은 거 아냐?"
와... 충격이었다. 적당히 신기술이 나왔다고 대충 때우려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 기술의 발달이 꼭 인간의 행복으로 이어진 건 아니었지. 순간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일자리 공유 문제서부터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유망 직종까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장 놀랍고 기특한 건 이런 사소한 일에도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아이가 바로 내 아이라는 것! 이 사실이 가장 뿌듯했다.
앞으로 살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다름 아닌 공감이라고 한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입장에 자기 자신을 대입해 타인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는 것이다. 구글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혁신은 공감과 같은 감정 지능이 풍부한 직원들에게서 나온다고 한다. 꼭 구글에 취직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평소 아이에게
다른 어떤 능력보다 공감 능력을 키워주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조금이나마 그 결실을 맛본 것 같아 기분이 한껏 좋았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건 비단 아이 교육뿐 아니라 내가 평소에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어떤 사물을 볼 때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힘, 이른바 역발상이다. 딸아이는 따로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세상을 다양한 시각과 방향으로 보는 훈련이 되어 있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물론 그것 때문에 그 후 신이 나서 목청 높여 이것저것 30분 넘게 떠들다가 기진맥진 하긴 했지만.. 매일신문을 함께 읽을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긴 저녁이었다.
아빠와 딸의 좋은 습관
이렇게 아빠와의 신문 읽기가 지속되다 보니 언젠가부터 퇴근하고 집에 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나면 딸이 먼저 신문을 들고 와서 같이 신문을 읽자고 한다. 아빠와 딸의 좋은 습관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리고 가끔 일부 재미있을 것 같은 기사는 아이가 먼저 훑어보고 오는 경우도 생겼다. 혼자서 스스로 읽기 시작한 것이다.
신문을 꾸준히 읽은 덕분에 어휘력이 늘어나고 과학이나 역사 등 상식도 풍부해지는 거 같다. 보너스로는 어른인 나도 몰랐던 일을 어린이 신문을 통해 함께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지만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딸아이와의 신문 읽기를 계속할 생각이다. 아내가 찬성할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신문 읽기가 계속된다면 따로 논술학원이나 글쓰기 학원을 굳이 다니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딸이 다른 아이들보다 수월하게 일기를 쓴다거나 글짓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저게 다 내가 잘 가르쳤기 때문일 거야 하는 괜한 자부심도 생기곤 한다.
아! 마지막으로 중요한 사실 한 가지! 어린이 신문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배달되고 요금은 월 7,000원이다. 하루에 약 350원으로 이렇게 다양한 효과를 볼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지금 바로 신청하세요! 국내 1등 어린이 신문 구독 문의는 158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