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의 맛

이렇게 10년 키웠어요 열세 번째 이야기

by 박뚠뚠

예전에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이해 안 가는 사람이 엄홍길 대장과 이봉주 선수라고. 왜냐고? 어차피 내려올걸 뭐 그렇게 힘들게 산을 올라가는 것이며, 어차피 돌아올 거 뭐 그렇게 힘들게 뛰어가냐는 것이었다.


나에겐 캠핑이 그랬다. 지금으로부터 7~8년 전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도 캠핑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한두 번 캠핑을 다녀온 사람들은 점점 욕심내어 장비를 늘려가기 시작했고 심지어 한 후배는 거금을 주고 캐러반을 장만하기도 하였다. (그 친구는 캐러반을 끌어야 한다며 차도 SUV로 바꾸었다.) 다들 캠핑을 다녀오면 너무나 힐링이 된다고 했다. 도대체 뭐가 재밌느냐고 물어보면 가서 별거 안 하고 숯불 피워놓고 음악 들으며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그게 불멍이라는 거였다.


친한 선배가 주말에 캠핑을 간다고 하길래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형 텐트 치는 거 힘들지 않아요?”

“힘들지. 한번 치고 나면 땀으로 샤워를 할 정도야.”

“근데 어차피 하루 만에 걷을 거 그렇게 힘들게 텐트 칠 이유가 있어요?”

이런 수준 낮은 질문에 형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게.. 근데 그 맛이 또 있어”

맛이라.. 아내의 맛도 아니고 캠핑의 맛이라..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맛이었다.


캠핑의 맛을 느끼다


얼마 후 뜻밖의 계기로 캠핑을 경험하게 되었다. 내가 아닌 바로 딸 때문에. 모든 아빠들이 공감하겠지만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무엇을 해야 하나 어디를 가야 하나가 가장 큰 고민이다. 그런데 캠핑을 가면 아이들이 별것을 안 해도 그렇게 재미있어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그리고 특성상 1박을 할 수밖에 없으니 캠핑을 한번 가면 주말 스케줄이 한방에 정리된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한번 가보자! 절대 놀아주기 귀찮아서가 아니다!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선사함으로써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으로 자라날수 있게 하는 전인교육 차원...


하지만 결정적으로 텐트가 없었다. 승마를 하려는데 말이 없는 격이고 수영장에 가려는데 수영복이 없는 셈이었다. 듣자 하니 텐트뿐만 아니라 캠핑용 의자, 테이블, 코펠, 버너, 랜턴, 화로대 등등... 하나하나 장만하자니 끝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사실. 이 모든 게 한 번에 갖춰져 있는 곳이 있다고 했다. 그냥 몸만 가서 자고 나오면 된다고 했다. 바로 글램핑이었다.


캠핑의 첫걸음 글램핑


그때까지만 해도 글램핑이 익숙한 단어가 아니었던지라 글램핑이라고 하면 무슨 특급호텔 같은 데서 운영하는 하룻밤에 30~40만 원 하는 고급 숙박의 형태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약간만 검색해보아도 저렴한 가격에 서울 인근에 시설 좋은 글램핑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선 경기도 포천에 있는 한 글램핑장을 목적지로 하고 아무 준비도 없이 그야말로 빈 몸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마침 5월 5일이기도 해 아빠가 벌인 어린이날 이벤트이기도 했다. 도착해보니 정말 아무것도 준비 안 해가도 될 정도로 모든 게 구비되어 있었다. 흔히 다녀서 익숙했던 리조트나 펜션의 시설을 그대로 대형 텐트로 옮겨놓은 느낌이었다. 우선 텐트 칠일이 없으니 한시름 덜었다.

그다음엔 드넓게 펼쳐진 잔디밭이 인상적이었다. 마침 차 안에 있던 비눗방울 장난감을 꺼내 한참을 갖고 놀았다. 배드민턴도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글램핑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터주대감 같은 포스의 강아지와 인사도 나눴다. 우리 딸아이가 방방(트램펄린보다는 방방이라 불러야 어쩐지 더 재밌는 거 같다)을 그렇게 오래 탈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어느새 배가 고파질 시간. 사장님께 숯불을 붙여달라 말씀드리고 근처 마트에서 사 온 두툼하게 썰린 목살을 철망 위에 올렸다. 캔맥주를 땄다. 노릇노릇 구운 고기 한 점에 시원한 맥주 한잔. 아내와 아이도 맛있게 저녁을 먹어주었다.


그렇게 밤이 되고 아내와 아이는 잠을 자러 들어가고. 혼자 불 앞에 앉아 옛날 노래를 들으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하늘엔 서울 집에서 볼 수 없는 별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아.. 이게 캠핑 선배님들이 얘기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앉아있기만 해도 좋은 그런 순간인 거구나.' 캠핑의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뒤로 캠핑을 향한 어떤 운명의 이끌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캠핑장비를 모두 갖추고 있는 친구를 따라 더부살이로 캠핑을 가보기도 하고, 또 얼마 후에는 후배 하나가 갖고 있던 텐트와 장비들이 필요 없게 되었다며 캠핑 장비 일체를 공짜로 넘겨주기도 했다. 그 덕분에 우리 가족은 날이 좋으면 여기저기 좋다고 소문난 캠핑장을 찾아다니며 캠핑의 맛을 만끽하게 되었다. 요즘은 비록 코로나 때문에 움츠려 들기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작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딸아이가 머리가 커져서 캠핑 가기를 싫어하게 된 것이다. 잠자리 불편하고 화장실 불편하고 씻기도 불편하고 심지어 벌레가 많아 싫다는 납득 100% 논리적 이유를 들이댔다.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아빠가 몇 날 며칠을 졸라 대야 연중행사로 한두 번 가줄까 하는 정도가 되었다. 당연히 아빠가 혼자 캠핑 가는 건 안된단다. 이유 없다. 자식이 왕이니까 시키는 대로 하는 거다.

이제 누군가가 캠핑을 가면 뭐가 그리 좋냐고 나에게 물어오기도 한다. 그럼 난 예전에 나의 땅바닥 눈높이에 맞춰서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해준다.


세상 모든 레포츠가 어차피 가서 술 먹고 고기 구워 먹으려고 하는 거 아니겠어? 텐트 치며 땀을 흘리고 나서 촤아~악 마시는 캔맥주 한잔! 이 맛 때문에 가는 거지. 그리고 캠핑 가서 고기를 구우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를걸?


벌써 군침이 돌지 않는가? 어서 코로나가 끝나고 맘껏 캠핑장을 다닐 수 있게 되길... 우리 아빠들, 캠핑장에서 만나면 시원한 캔맥주 한 잔 같이 하시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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