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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뚠뚠 Aug 11. 2021

나는 나쁜 아빠입니다

이렇게 10년 키웠어요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크게 화를 내며 혼내는 경우가 어쩔 수 없이 생기게 된다. 나에게도 몇 번 그런 기억이 있다.      


첫 번째 기억은 아이가 두 살쯤 됐을 때, 지금 생각하면 그 조그마한 아이가 뭘 아나 싶긴 하지만, 시간이 늦어 얼른 자야 해서 그전에 목욕을 하러 욕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아이가 그날따라 유독 안 들어간다며 한사코 거부하는 거였다. 근데 그 거부와 울음이 평소답지 않게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 아빠인 나도 슬슬 짜증이 차오를 무렵... 목욕하러 가자고 내가 손을 잡아끄는데 아이가 내 손을 탁! 쳐내는 것이다. 그때 내 딴에는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2살 아이에게 선이 어디 있다고. 너무 화가 나서 나도 아이의 손등을 어른이 맞아도 아플 정도로 세게 때렸다. “누가 아빠 손을 때리래!” 뭐 이런 말을 하면서 그랬던 것 같다. 순간 너무 놀란 아이는 울지도 못하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그 뒤는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손등을 때리고 아이가 놀라 우는 장면만은 동영상을 촬영해놓은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두 번째는 4~5살 무렵이었는데, 아내는 다른 볼 일이 있어 아이와 함께 둘이 부모님 댁을 찾아갔었다. 그날따라 이유 없이 아니 이유를 알 수 없이 아이가 짜증을 엄청나게 부렸다. 보통의 경우가 그렇듯이 딸아이도 무슨 일이든 오냐오냐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덕분에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 손녀 앞에서 할머니는 안절부절 모드로 무작정 비위를 맞추며 달래기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앞에 있던 물건을 집더니 할머니 앞쪽 바닥으로 팍 던지는 거였다. 와... 다른 건 몰라도 어른한테 싸가지없게 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또 폭발을 해버렸다. 이때는 때리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방으로 끌고 가 완전 샤우팅으로 한참을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놀라서 이제 그만하라고 말리셨을 정도로. 사건이 일단락되고 나는 화가 가라앉지 않아 한참을 씩씩거리고 있는데 아이는 할머니가 몇 번 달래주니 금세 무슨 일이 있었냐는 표정으로 해맑게 웃으면서 돌아다녔다. 내가 저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도대체 왜 그렇게 고함을 친 건가 싶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사건


몇 년이 지나고 최근 새로운 사건이 또 생겼다. 딸아이가 점차 학년이 올라가면서 부쩍 공부할 양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대부분의 집에서 비슷한 대화가 오갈 것으로 예상은 되지만 내가 아내에게 아직 초등학생밖에 안됐는데 공부 너무 많이 시키는 거 아니냐 또는 학원을 너무 많이 보내는 거 아니냐고 물으면 아내는 곧장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딴 집에 비하면 시키는 것도 아니야!”     


육아에 있어 다른 면에서는 적극 참여한다고 자신하지만 공부 쪽에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급적 관여하지 않으려는 편이다. 굿 캅, 배드 캅 차원에서 아빠는 늘 놀아주고 달래주고 편을 들어주는 등 좋고 즐거운 쪽으로 이미지를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아내의 생각이었고 나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래서인지 즐거움의 영역과는 거리가 먼 공부에 있어서는 가급적 개입을 안 하려고 했는데 요즘 들어 아내와 아이가 공부할 일이 많아지면서 잦은 트러블이 생기는 거다.     


패턴은 보통 이렇다. 처음에는 얌전히 공부하다가 아이가 문제를 틀리면 아내는 잘 기억해두었다가 다음부터 틀리지 말라고 얘기를 한다. 약간은 엄한 말투로. 유독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성격인 딸아이는 자기는 진짜 안 틀리려고 열심히 했는데 억울하다면서 슬슬 짜증 발동 시작. 그러면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그때부터 발을 동동 구르면서 왜 엄마 말만 맞느냐며 자기 말은 왜 맨날 틀렸다고 하냐며 생떼를 부리며 소리 지르고 우기기를 반복. 그러다 결국 울음이 왕 터지고... 이 패턴이 자꾸 반복되다 보니 아내와 아이 모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나는 뭐 얼마나 대단하게 공부를 시키려고 벌써 애한테 그러느냐, 그러다가 애가 공부 자체에 대해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고 아내에게 질책 아닌 질책을 하게 되고. 아내는 나의 그 말 때문에 또 기분이 상해 부부 사이에서도 잦은 말다툼이 있을 정도였다. 아무리 굿 캅이지만 나도 그런 상황을 늘 웃으면서 넘길 수는 없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일어나고야 만 것이다.    

 

난 퇴근해서 거실에 앉아있었고 방에서 아내와 아이가 공부를 하다가 역시나 비슷한 패턴으로 싸움이 일어나게 되었다. 근데 나도 그동안 쌓여있던 게 있어서 그런지 유독 그날은 그 상황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폭발. 울고불고하던 아이를 거실로 불러내서 왜 그러느냐며 다그치는데 평소 좋게만 대하던 아빠가 별안간 소리를 지르니 아이는 겁을 먹어 그런지 더 세게 울기 시작. 급기야 속상함의 표시로 발로 바닥을 쿵쿵 찍는 거였다.     


그게 왜 그렇게 버릇없게 느껴졌던지. 나름 변명을 하자면 내 아이의 '싸가지'없는 행동은 참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 발을 모으게 한 다음에 내 발로 아이의 발을 꽉 눌러버렸다. 가만히 누르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발 하지 마! 하지 마!” 하면서 내 발로 아이의 발을 있는 힘껏 밟았다. 내 손바닥 크기도 안 되는 발을 무지막지한 발로 밟다니.. 하지만 불행 중 다행히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어 곧 감정을 추스르고 더 이상의 폭주는 하지 않았다. 조곤조곤 알아듣게 설명하였고 아이도 얼추 알아들은 것 같았다. 곧장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안아주었고 아이에게 엄마도 너 때문에 상처 받았을 수 있으니 가서 사과하자고 했다. 결국 세 식구의 찐한 포옹으로 마무리.    

 

그날 밤 왜 아이가 자꾸 짜증을 낼까에 대해서 아내와 얘기해보았다. 아이가 낮에는 엄마랑 공부를 잘하는데 이상하게 저녁만 되면 짜증을 부린다는 것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저녁만 되면’이 아니라 ‘아빠만 오면’인 것 같았다. 아빠는 주로 같이 노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빠만 오면 공부는 뒷전이고 자꾸 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고등학생인데 시험 전날 밤 손흥민 축구 경기를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나 할까? 책이 눈에 들어올 리 없잖은가. 아이한테 집중력만을 요구할 수는 없으니, 그렇다고 아빠가 매일 늦게 올 수도 없으니 아빠 오기 전에 무조건 공부는 끝내는 걸로 일단락 지었다. 이게 얼마나 지켜질지 모르지만.

    

아무튼 아이가 잠든 후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아까 했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무용하는 아이인데 그렇게 했다가 발을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쩌나부터 해서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까, 아빠라는 사람이 그것도 못 참고 아이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하다니...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아이가 또 공부 때문에 울고 소리치고 우기기를 반복해서 내가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의 팔을 확 잡아끌고 방으로 들어와서 혼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고 딴에는 훈육이라고 여겼기에 심하게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해서 곧바로 화내서 미안하다고 하고 아이를 무릎에 앉혔는데... 아이를 안아서 앉히려다 가슴에 손이 우연히 닿았는데 그 조그만 심장이 미친 듯이 팔딱팔딱 뛰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나 무서웠던 걸까. 아이의 심장이 뛰는 걸 내 손으로 직접 느끼니 죄책감은 배가되었다. 이 글을 읽는 아빠들 아이를 혼내는 도중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난다 싶으면 아이의 가슴에 손을 얹어보기를 권한다. 아이가 느끼는 공포감이 오롯이 전해져 이성을 찾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나름 수위 조절을 한다고 했는데 아이한테는 그 상황 자체가 공포였던 것이었다. 아... 또 밀려오는 죄책감과 후회. 난 진짜 나쁜 아빠라는 한심한 아빠라는 자책감. 겉으로만 맨날 좋은 아빠 코스프레하고 다니는데 나도 결국은 좋은 아빠인 척을 하고 싶은 거였구나. 더 가슴 아프고 미안한 건 아이가 그렇게 한 후에도 잠시 후 웃으며 아빠에게 폭 안겨서 침대로 갔다는 것이다.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결국 아이 행동의 문제는 100% 부모 탓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평생 상처가 될 수도 있는 훈육


어머니가 말씀해주신 훈육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해볼까 한다. 나와 7살 차이가 나는 큰누나가 5~6살 무렵. 그러니까 나는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 첫째 딸이 하도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려서 어두컴컴한 광(예전에는 집안 창고 같은 공간을 이렇게 불렀다)으로 끌고 가서 한참을 모질게 혼을 내셨다고 한다. 안 그래도 다른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이었는데 아이까지 그러니 더 화가 나셨다는 건데... 그런데 그전까지는 되게 활달하고 명랑한 아이였는데 아무래도 그때 이후로 성격이 내성적이 된 거 같다며 지금까지 마음에 걸린다는 말씀을 하셨다. 내성적인 성격이 절대적으로 나쁜 것도 아니고 실제로 그 사건이 누나의 성격에 영향을 미쳤는지 안 미쳤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40년이 넘도록 어머니의 마음엔 그 사건이 생채기로 남아있는 거였다. 그래 봐야 고작 서른도 안 된 애 엄마가 얼마나 고민하고 얼마나 후회했을까?   

   

‘자식을 키운다는 게 부모가 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 날이 갈수록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아진다. 육아의 대가 오은영 원장님께서는 ‘욱해서 훈육해도, 훈육하다 욱해도 폭력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머리로는 100% 이해한다. 근데 실제 아이를 키울 때 적용이 잘 안되어 괴롭기만 하다. 냉정과 이성을 찾으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그렇다고 아예 신경 끄고 무조건 아이 하자는 대로 해서 내 자식이 예의범절도 모르고 자신의 잘못도 모르는 안하무인 인간이 되게 할 수는 없잖은가. 이 양극단에서 ‘절충안’이란 게 있는 걸까? 이런 고민을 거듭하다 든 생각. 사랑의 매라는 말이 있지만 난 인격수양이 부족해 이 매는 오직 사랑해서 때리는 거라고 당당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그냥 내 감정을 참지 못해 폭발해서 손을 드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이든 뭐든 매는 아예 생각조차 안 하려고 한다.    

  

머지않아 또 어길 것 같아 불안하지만 역시나 오늘도 이런 다짐을 해본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아이를 사랑만으로 대하겠노라고.      

잘못을 했더라도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가르치겠노라고.  

몇십 년 동안 마음에 담아둘 행동은 절대 하지 않겠노라고.    

      

아빠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앞으로는 안 그럴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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