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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뚠뚠 Sep 06. 2021

딸과의 설레는 인사동 데이트

이렇게 10년 키웠어요 마흔네 번째 이야기

연애시절 당시 확실한 데이트의 원칙이 있었다. 지금의 아내 그러니까 당시 여자 친구께서 하명해주신 말씀에 따른 원칙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나는 매번 극장에서 영화 보고 밥 먹고 하는 식의 평범한 패턴의 데이트는 원치 않노라! "였다. 어느 데이트 하나라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말고 최선을 다해 임하라는 명이었는데 그 말씀을 충실히 받잡고자 그때부터 매번 새로운 데이트 코스 개발에 열중을 했다.     


그렇게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다 보니 나름의 요령이 생겼는데 그건 바로 ‘지역별 공략법’이었다. 말은 거창하지만 뭐 딱히 어려울 건 없다. 하루에 한 지역을 정해서 그 지역 안에서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를 다 해결하는 식인데, 이를테면 오늘의 지역을 경기도 포천으로 정했다고 치면 산정호수에 갔다가 이동갈비를 먹고 허브아일랜드 식물원으로 마무리하는 뭐 그런 방법이었다.   

  

이렇게 데이트 계획 짜기에 열중하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하늘만큼 땅만큼 여자 친구를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내가 무언가 계획 짜는 것을 즐기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언젠가 MBTI 검사를 했더니 ENTJ유형으로 나왔는데 그 유형의 특징 중 하나가 늘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거라고 하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싶기도 하다. 그래서 3년여 연애시절 동안 이곳저곳 이것저것을 참 많이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통해 내가 이런 노하우를 쌓을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지도 편달해주신 아내 분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데이트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게 되었다. 물론 데이트가 아닌 가족 나들이에서도 나의 이런 계획적인 성격이 큰 도움이 되긴 했는데 어쩐지 나들이와 데이트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런데 실로 오랜만에 데이트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것도 세상 가장 소중한 딸과의 데이트였다.

     

아이가 7살 되던 어느 주말 아침, 그날도 역시나 오늘은 또 뭐하고 놀까 스마트폰을 붙잡고 검색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눈에 확 띄는 이름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놀이똥산>이었다. 이름부터 강렬한 <놀이똥산>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한 똥을 메인 콘셉트로 하는 체험형 전시관이었는데 블로그 등을 통해 검색해보니 평이 나쁘지 않았다. 똥과 방귀 같은 건 언제라도 아이들에게 호기심과 재미를 줄 수 있는 강력한 소재 아니던가? 아이에게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당연히 예스.     


난생처음 딸과의 설레는 데이트


그리고 그날따라 어쩐지 가사 일에 지쳐 쉬고 싶은 아내를 위해 그리고 난생처음 아빠와 딸의 데이트를 위해 단 둘이 인사동에 가기로 했다. 딸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아기 때는 둘이 동네 커피숍 가는 것도 버거웠는데 어느새 컸다고 아빠와 둘이 인사동엘 가게 되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사실 평소 개인적으로 인사동 자체에 대한 큰 메리트는 느끼지 못하는 편이었다. 인사동에 처음 가봤던 건 예전에 외국 사는 친척이 한국에 놀러 왔을 때였던 것 같다. 그 정도로 그냥 한국에 처음 와보는 외국인이나 가는 곳 정도라는 인식? 사람이 많아서 괜히 번잡스럽다는 느낌마저 있었다. 회사 근처라 가끔 그 근처로 식사를 하러 가기도 하는데 특별히 이렇다 저렇다 할 느낌이 있는 인상적인 곳은 아니었다는 거다. 그런데 같은 장소라도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았다. 딸과 함께 가는 인사동은 새로웠다. 말 그대로 ‘A whole new world’였다. 아내한테는 진심으로 미안하지만 예전 아내와 연애시절 갔을 때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곳이었다.     


우선 주 목적지인 <놀이똥산>부터 가보기로 했다. 그야말로 전체가 똥 세상이었다. 세상에나 마상에나 똥을 주제로 그렇게 별의별 물건들을 만들어놓다니! 단순 모형만 있는 게 아니라 똥이란 것에 대한 정보부터 똥이 나오기까지 과정 및 소화기관에 대한 설명 등 여러 가지 교육적인 정보들도 많이 있었다. 게다가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잘 구성되어 있었다. 특이한 사진이 나올법한 스팟도 많았는데 덕분에 화장실이나 맨홀 속에 빠진 것 같은 코믹한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놀이똥산> 체험을 마치고 나오니 이제 배가 슬슬 고파질 차례. 어디 들어가서 뭘 맛있는 걸 먹을까 머리를 굴려보았다. ‘인사동에 왔으니 한정식을 먹어야 하나? 아니면 항아리 수제비가 유명한 식당으로 가야 하나’ 등의 생각을 하며 아이에게 뭐가 먹고 싶냐 물어보았더니 뜻밖의 대답,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어디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먹는 것도 아닌 길에 서서 먹는 포장마차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했다. 마침 옆에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떡 하니 있었다. '그래 원래 데이트할 때는 길거리 음식 같은걸 사 먹는 게 또 낭만이기도 하지.' 이게 진정한 데이트라는 생각에 역시나 괜히 혼자 감동을 받았다. 아이와 함께 길에 서서 어묵 국물에 떡볶이를 먹다니.. 정말 근사한 데이트로 느껴졌다. 제법 매운 떡볶이를 후후 불어가면서 잘 먹는 딸이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 먹고 나서는 인사동을 돌며 여러 가지 장신구들이나 골동품 같은 것을 구경했다. 당시만 해도 외국인들이 많고 길에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때라 그런 풍경들도 아이에겐 신선한 흥미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철두철미한 계획 따위는 없었음에도  딸과의 인사동 데이트는 그렇게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은 딸과의 데이트


다시 함께 인사동을 찾지는 않았지만 그 후론 딸아이의 손을 잡고 가끔 집 근처 맥도날드도 가고 만화도 보러 가고 또 극장을 가기도 하고... 이러한 부녀만의 데이트가 소소하게 이어지는 중이다. 물론 이런 데이트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을 거라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벌써부터 그런 전조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요즘 유행하는 스티커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서 아빠랑 가자고 했더니 살짝 미안해하면서 아빠랑 말고 친구들이랑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얼마 뒤 친구와 둘이 사진을 찍고 와서는 너무나 신이 나 자랑하는 모습을 보니 주책맞게 따라가지 않은 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지않은 장래에 아빠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고 멋진 남자 친구를 만나 데이트하는 것에 설레는 시기도 올 것이다. 언제까지 품 안에 자식일 수는 없는 일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끝으로 지금은 누군지도 모를 내 딸의 미래 남자 친구(들?)에게 이런 엄중한 경고를 날리는 바이다.


내가 이렇게 데이트 눈높이를 높여놨으니...
네 이놈! 만만하게 보고 달려들었다간 큰 코 다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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