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10년 키웠어요 다섯 번째 이야기
예전 어떤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너네들 엄마한테 화났다고 소리 지르고 못되게 행동하고 문 딱 닫고 들어가서 앉아있으면 무슨 생각 들어! 괴롭지? 너무 미안하지? 다른 게 지옥이 아니야 그 괴로운 마음이 바로 지옥인 거야"
딸아이가 일곱 살 무렵. 지극히 평범한 어느 토요일 아침이었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난 딸은 거실에 나와 아빠에게 왜 진작 자기를 깨우지 않았냐며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아빠와 조금이라도 더 일찍 놀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대수롭게 생각지 않았다. 그냥 다른 때보다 짜증이 좀 심하네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딸이 한쪽 팔을 반복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았다. 일정 패턴으로 팔을 계속 움직였고 이상함을 느낀 나는 딸아이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딸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뭔가 일이 일어났음을 느낀 나는 안방에 있던 아내를 다급하게 불렀다
"이리 좀 나와봐 애가 이상해!!"
그런데 팔을 흔들던 딸아이의 눈동자가 갑자기 뒤집어지더니 몸이 축 늘어졌다. 돌이켜보면 그런 발작 증상이 바로 '경기'라는 것이었다.
깜짝 놀랐다는 말로는 충분치가 않은 일생일대의 충격이었다. 그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예상 밖 상황이었다.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방정맞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응급조치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이 키우는 집 필독서라는 <삐뽀삐뽀 119>를 뒤질 겨를도 없었다.
겨우 119가 생각났다. 119에 급하게 전화를 걸고 상황을 설명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구급차가 도착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구급차에 딸과 함께 타자 구급대원 분께서는 근처 어떤 병원을 갈 건지 물어보셨다. 좀 더 가까운 병원이 있긴 하지만 순간 어쩐지 좀 더 큰 대형 병원으로 가야 할 거 같아서 그 병원으로 가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여기서 반성할 일이 있다. 그전까지 가끔 구급차 특히 사설 구급차들이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지나가면 나는 어디선가 뉴스에서 봤다며 구급대원들 밥 먹으러 가나보다 하는 농담을 하곤 했다. 심지어 연예인들이 바쁜 스케줄 때문에 가끔 구급차를 이용한다는 소식도 들은 터였다. 단언컨대 그 날 이후로 난 저런 얘기를 입 밖으로 절대 꺼내지 않는다. 아니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구급차 안에서의 불과 20분 남짓 시간. 앞차가 비켜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고 신호라도 걸리면 그 시간이 열 시간 백 시간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발작이 계속되진 않았고 구급차를 타고 가는 동안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와 간단한 엄마 아빠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상태는 되어 있었다.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에 접수를 했다. 사실 다들 알다시피 응급실은 그야말로 워낙 응급한 환자가 많기 때문에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는 없는 구조다. 몇 가지 검사를 해보자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보호자는 한 명만 같이 있을 수 있다기에 아내는 응급실 안에서 딸아이와 함께 있고 나는 바로 앞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제야 아침서부터 불과 한두 시간 동안 생겼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대체 왜 그랬던 걸까? 무슨 심각한 병일까? 수술을 해야 하는 건가? 후유증이 남는 걸까? 평생 발작을 계속하면 어떡하지?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앉아있는 응급실 앞 의자. 그곳이 나에겐 지옥이었다. 살면서 그렇게 괴로운 순간은 없었던 것 같다. 하물며 전날 슬라임 카페에 잠깐 다녀온 것 때문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정확한 인과관계는 밝히지 못했지만 그날 이후로 슬라임 근처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고 아이는 점점 안정을 찾는 것 같았다. 검사 때문에 금식 조치가 내려진 터라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배고프다며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나에겐 그 짜증이 오히려 다행으로 느껴졌다. '그래 기운이 있어야 짜증도 내는 거지! 얼마든지 받아줄게 짜증 부리렴!' 결국 몇 가지 검사에도 직접적인 원인은 밝힐 수 없었고 나중에 정식 예약을 잡고 좀 더 자세한 검사를 해보자는 선에서 그날 병원에서의 시간은 마무리가 되었다.
어느새 저녁. 퇴원하려고 보니 아이가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 급하게 뛰어나오느라 그걸 챙길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딸아이를 꼭 안고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신발을 챙겼더라도 물론 내내 안아서 집에 왔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태어난 병원에 다니며 (출생 때부터 꾸준하게 다니는 병원이라 진료기록이 남아있어 고정적으로 가는 편이다) 정기적으로 뇌파 검사를 받고 MRI를 찍었다. 그렇게 약 1년의 시간이 지나고, 결국 정확한 원인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안심해도 될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밤에 일찍 자는 습관을 유지하고 이왕이면 혼낼 일 있으면 아침말고 밤에 혼내주라는 팁도 듣게 되었다. 딸에게는 아침이 취약시간인 모양이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병원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아픈 아이들을 보면서 그저 크게 아픈 곳 없이 자라 주는 것만으로도 효도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오늘도 다짐한다. 엄마 아빠 말 좀 안 듣고, 못된 말도 좀 하고, 공부하기 싫다고 땡깡도 좀 부리고 일어나기 싫다고 짜증도 좀 내고, 놀던 장난감 치우기 싫다고 게으름 피우고 그런 것들은 얼마든지 받아줄 테니 부디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