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벅찬 재롱잔치의 추억

이렇게 10년 키웠어요 여섯 번째 이야기

by 박뚠뚠
벅차오르다
[동사] 큰 감격이나 기쁨으로 가슴이 몹시 뿌듯하여 오다.


아이를 키우는 매 순간순간이 감동이고 기쁨이겠지만 그중에서 특별히 마음이 울컥해지는, 소위 벅차오르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우선 첫 번째로 떠오르는 장면.

아이가 두 돌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 토요일 저녁이었고, 아내는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기 위해 외출을 하였다. 그때만 해도 혼자서 아이를 본다는 것이 두렵고 막막하기만 할 때. 친구랑 편안하게 놀다 오라며 호기롭게 아내를 보내고 나서 혼자서 겨우겨우 이유식 먹이고 목욕시키고 재울 준비까지 마쳤다. 불을 끄고 엄마를 찾느라 칭얼거리는 아이를 간신히 달래서 재우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새근새근 잠든 아이 옆에 누워 있는데 바로 코앞에서 아이가 숨을 쉴 때마다 그 달큰하고 따듯한 입김이 내 얼굴에 닿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괜스레 가슴이 벅차올랐었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 이 장면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내가 나중에 나이 들어 죽는 순간에 떠오르는 모습 중 하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그 장면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벅차오른다. 숨 쉬는 것만으로 나를 벅차오르게 하는 존재가 있다니!


아이를 키우면서 기억에 남는 벅차올랐던 순간 두 번째. 아마도 많은 부모들이 이 말에 공감들 할 것 같은데 바로 유치원 재롱잔치의 순간이다. 어느 개그맨의 옛날 유행어를 빌려 말하자면 "유치원 재롱잔치 그까이거 뭐 그냥 대충 애들 이상한 옷 입혀서 내보낸 다음에 어설프게 노래하고 춤추고 나면 박수 좀 쳐주면 되는 거지.."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게 뭐 대단하길래 벅차오르기 까지 하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는 거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이해한다. 나도 아이를 낳아 키우기 전에는 그랬으니까.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쯤. 누나의 아들, 즉 조카의 유치원 재롱잔치에 불려 간 적이 있다. 직업이 PD이니 와서 조카의 모습을 촬영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일종의 재능기부라고나 할까? 아무튼 직업정신 발휘해 당시 방송제작에 주로 쓰이던 6mm 카메라까지 들고 가 열심히 찍고 있었다. 한참 공연이 진행되고 난 후 조카가 혼자 무대에 나와서 자기 이름을 얘기하면서 부모님 사랑합니다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그런 말을 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조카가 유치원 대표로 뽑힌 것도 아니었고 모든 유치원생들이 돌아가며 한 번씩 나와서 말하는 순서였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누나와 매형 모두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언제 저렇게 컸냐며..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저게 저렇게 눈시울까지 붉혀가며 난리 칠 일인가?


시간이 흘러 나도 딸아이의 유치원 재롱잔치에 갈 때가 되었다. 관객석만 무려 300석이 넘는 집 근처 청소년회관에서 열리고 전문 MC까지 섭외된 동네 유치원 행사치고는 꽤 규모 있는 행사였다. 이번에야말로 아빠의 재능을 발휘해 재롱잔치 영상을 방송급 퀄리티로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시작 전부터 자리를 잡고 카메라를 세팅하고 앵글을 점검하고 방송 촬영을 방불케 하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이 조금 이상했다. 재롱잔치가 처음도 아닌데. 예전 조카의 재롱잔치 때와는 묘한 설렘과 흥분이 있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고 딸아이가 속해있는 조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참 많은 연예인들을 촬영해보았지만 그 어떤 슈퍼스타가 나온다 해도 이런 긴장과 집중은 없었던 것 같다. 딸아이의 등장서부터 팔로우해서 일거수일투족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그야말로 초집중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매일 집에서 보던 딸아이인데, 무대 위에서 그것도 카메라를 통해 본 딸아이의 모습은 조금 낯설었다. 음악에 맞춰 율동을 시작하는데 그 순간부터 이미 무장해제. 틀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보다는 아니 우리 딸이 언제 저렇게 컸지? 집에서는 맨날 애기 짓만 하는데 저렇게 큰 무대에서 어찌 저리 당당히 맡은 바 자기 역할을 해낼까? 연습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저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선생님은 또 얼마나 힘드셨을까?) 등등.


울컥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무사히 첫 순서가 끝나고.. 걱정과는 달리 무대 밑에 있는 엄마에게 손을 흔드는 여유까지 보이는 우리 딸. 그 뒤로 세상 그 어떤 공연보다 열광적인 환호가 터져 나오는 공연이 계속 진행되었다. 각 순서가 끝날 때마다 엄마 아빠 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열렬히 응원을 해줬다. BTS 부럽지 않았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그 후로도 대여섯 번의 등장이 더 있었다. 친구들과 율동도 하고 악기 연주도 하고 영어로 노래도 하고. 세상 그렇게 재미있는 버라이어티 쇼가 어디 있을까. 출연자 섭외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한 공연이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나는 무대. 친구들과의 합창이었는데 이런 가사가 들렸다.

아빠 사랑해요 내 작은 마음 모두 드릴게요
엄마 고마워요 이제는 내가 지켜줄게요

나중에 알고 보니 <행복의 날개>라는 노래였다. 물론 딸이 직접 쓴 가사는 아니지만 딸의 입을 통해 들으니 가사가 어찌나 뭉클하던지. 지금도 가끔 그 노래를 들으면 그때 생각이 나곤 한다.


그렇게 별 탈 없이 공연이 끝났다. 예전 TV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여줬던 일반인들 비디오에서처럼 공연하다 부딪쳐 친구랑 싸우는 아이도 없었고 갑자기 무대에서 오줌을 싼다거나 특별히 실수를 한다거나 그런 아이들은 없었다. 모두 완벽한 공연을 꾸며주었다. 앞으로도 아이를 키우면서 벅차오르는 순간들이 또 얼마나 많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날의 감격을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육아에 전념하리라 다짐해본다.


끝으로 아직 재롱잔치를 경험하지 못한 부모들을 위한 팁!

- 무조건 전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시라. 두고두고 볼 때마다 흐뭇해진다.

- 어지간하면 직장에서 휴가 아니 반차라도 내고 꼭 참석하시라. 두고두고 참석 안 한 걸 후회할 수 있다.

- 끝나면 고생했다고 꼭 안아주고 가족들끼리 맛있는 거 드시러 가시라. 원래 좋은 날엔 그러는 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자리를 빌려 재롱잔치 경품 추첨에서 아내의 번호를 뽑아주시어 우리 집에 쌀 1kg의 기쁨을 안겨주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 MC분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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