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교육법전의 세가지 명령은 무엇인가?
우리가 답하는 질문은 샬롯메이슨의 살아있는 교육 1 '9세 이하 어린이들의 훈련과 교육 가정교육'의 질문을 바탕으로 부부간의 생각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 작성되었다.
“너희는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마태복음 18:10)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늘 나라는 이런 어린이들의 것이다.” (마태복음 19:14)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 (마태복음 18:6)
샬롯 메이슨은 교육의 기본 원칙 세 가지를 위의 말씀에서 가져온다. 아이를 업신여기지 말라. 아이를 막지 말라. 아이를 넘어지게 하지 말라. 이 세가지가 함축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어로는 "Do not despise, hinder, nor offend children." 가 되겠다.
Do not despise. Despise 어원을 보면 라틴어로 "아래로" 그리고 "보다" 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면 despise는 곧 아이를 아래로 낮게 내려다 보는 행위를 말한다. 샬롯 메이슨은 그의 교육 철학에서 아이를 온전한 인격체로 강조한다. 그래서 예를 들면 내려다 보는 태도나 행위는 그녀의 교육 철학과 맞지 않다. 어른으로서 우리는 많은 경우 우리가 더 많이 알고 있고 우월한 존재임을 아이들에게 드러낸다. 아이들은 말과 행동이 불완전해 보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옳지 않다. 아이들은 온전한 인격체로 낮게 대우받기 보다는 그들의 사고, 행동, 그리고 말이 있는 그대로 존중 받아야 할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하는 행동이 어른이 볼 때 하찮더라도 그걸 이용해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깔보면 안된다.
아이들의 어리숙해 보이는 행동과 말에 대해서 어른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는 존중하는 태도이다. 존중한다는 건 인정하고 경청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걸 가지고 모자란다는 말이나 행동을 하기 보다는 잠잠히 웃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구나'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어른의 생각은 이미 굳어져 있어서 아이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어른의 논리와 상식으로는 이해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에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 된다. 우리 집 막내는 아직 한살 배기 애기이다. 먹을 때는 얼마나 장난을 치는지 주변이 온통 음식으로 난장판이 된다. 하지만 아이가 하는 행동이 모자란 행동이라고 다그치기 보다는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태도여야 한다. 우리 집 둘째는 엉뚱한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 솔직히 이해가 안되는 때가 더 많다. 그래도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건 '그렇구나'라고 대답해 주는 것이다. 자신의 세계에서 마음껏 말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인정하는 것이다.
Do not hinder. Hinder의 뜻은 누군가 뭔가를 하려고 할 때 막아서는 걸 말한다. 아이가 예수에게 나아가는 걸 막지 말라는 뜻은 아이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서 예수를 알려고 할 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도와주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어른으로서 아이가 하고자 하는 걸 막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아이가 조물주간 만든 세상을 경험하고자 할 때 어른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걸 가능하도록 문을 활짝 열어주는 거다. 그것이 자연을 탐험하는 것이든, 그림을 마음껏 그리는 거든, 혹은 밖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거든,,,아이가 누리고자 하는 걸 마음껏 하도록 지원하는 어른이 되자. 그러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세상에서 알아야 할 것들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것이다.
Do not offend. Offend는 화가 나도록 하는 행동을 말한다. 아이들은 화를 낼 때가 참 많다. 기분 상하면 화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못할 때도 화를 낸다. 그래서 화를 돋구지 말라는 의미를 모든 경우로 확대하기 보다는 어른이 아이에 대해서 모욕적인 말을 하거나 인격적인 대우를 하지 않으면서 화를 나게 하는 경우로 해석하는게 맞다고 본다. 특별히 어른들이 아이에 대해서 화를 날 때 우리는 쉽게 아이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의 인격을 멸시하는 그런 말 말이다. "이런 바보 같으니라구.", "내가 몇번이나 얘기해도 못알아 듣니." 뭐 이런 인격이 부족하다고 표현하는 말들은 아이도 이해하고 사람으로서 들어면 기분이 나쁜 말들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조심해야 할 것 중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건 "나의 혀"를 통제하는 거다. 내 안의 나쁜 기분과 상한 감정에서 모욕적인 말들이 쉽게 혀를 통해서 흘러 나온다. 그렇게 화풀이를 하지만 아이들은 그로 인해서 상처를 받는다. 성장하는 부모는 아이들에게 화를 돋구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도록 훈련한다. 그렇게 어른의 인격도 성숙하게 된다.
복음서에서 나오는 아이 교육법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조심스러운 것 같다. 책에서 나온 내용에 의하면 '너희는 이 작은 이들 중 하나라도 기분 나쁘게 하거나(offend not) 업신여기거나(despise not) 방해하지 않도록(hinder not) 주의하라'는 문구가 나온다.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윤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이들 뿐 아니라 사람을 사귈 때 관계를 위해서 조심스럽게 말과 행동을 다룬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울 때는 어떠한가? 완전한 인격으로서 인정하지 못한 나머지 아이들의 심리를 잘 헤아리지 못하고 부모의 감정을 그대로 노출시키지 않은가. 저번 시간 썼던 글처럼 아이들은 공주/왕자고 부모는 농부이다. 그렇기에 내가 하고 싶은대로 말하고 싶은대로 한다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적절하지 못한 언행이다.
그렇다면 복음서에서 나온 교육법을 상세히 보기 전에 사전적 정의를 먼저 보고자 한다. 첫째로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다(offend not)에서 offend의 뜻을 보면 감정을 상하게 하다, 감각 따위를 손상시키다, 정의감 따위를 손상시키다, 죄를 짓게 하다, 과오를 범하다, 예의 따위를 위반하다 등이 있다. 구글 이미지에서 보면 어떤 느낌인지 좀 더 명확한데 짜증을 내는 표정이나 거부하는 제스처 들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offend라는 말이 죄를 짓게 하다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아이가 죄를 짓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인데 감정을 상하게 하는 행위가 죄를 범하게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조금 극단적인 예이지만 범죄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말한다. 성범죄와 살인 등 강력 범죄로 수감 중인 재소자 60% 정도가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경험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은 신체폭력이든 언어폭력이든 아이들을 분노하게 만든다. 가정교육에서 사랑은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사랑이 없는 훈육이나 무심코 던진 말과 행동이 아이들의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두번째로 '업신여기지 않는다(despise not)'에서 despise의 뜻을 보면 경멸하다, 모멸하다, 업신여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경멸은 혐오와 분오를 혼합한 감정으로 흔히 나타나는 감정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의 나약함이 이런 감정으로 나올 때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단순히 아이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부부 간의 갈등이나 다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나온 것일 수도 있고 아이에 대한 애정이 부족해서 나온 것일 수 도 있다. 내가 만약 업신 여김을 받는다면 존재가치에 대한 의미도 흔들릴 것 같다. 아직 세상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이 부모라는 세상에서 느끼는 아픔은 얼마나 클 것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세번째로 '방해하지 않는다(hinder not)'에서 hinder의 뜻을 찾아보면 방해하다, 가로막다, 훼방놓다라는 뜻이 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해야할 일과 하지말아야할 일은 가르치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역할이다. 하지만 여기서 부모가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부모 스스로 가진 규칙이나 관습에 위반이 되었을 때 아이의 행동에 심각한 제재를 가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나를 포함한 요즘 부모들은 아이의 행동에 너무 많은 훼방을 놓는다. 그것은 후에 어른아이와 같이 부모를 의존하는 아이로 만들게 할 가능성을 높인다. 아이들이 스스로 행동하고 배울 수 있는 여유를 줄 수 있는 여유로움이 필요하다.
전반적으로 복음서의 교육법을 봤을 때 아이를 키우는 것은 성인을 알아가고 사귀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아이를 어른보다 낮다는 생각으로 부모 스스로 우월감을 가지지 않아야 하고 아이를 좀 더 나은 존재로 인정하고 행동해야 할 책임이 있다. 아이들은 숭배하지 않는 범위에서 아이들을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