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부의 기본 업무, "제작일지"
드라마 현장에 매일 많은 스태프들이 집합하면, 그들은 제일 먼저 종이 한 장을 받는다.
일명 '스케줄표'라고 하는 1장 (보통 1장이나, 간혹 2장이 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짜리 종이다.
이 스케줄표에는 오늘 출발 시간과 집합 시간,
그리고 촬영해야 하는 씬들의 순서와 장소는 물론, 씬들이 어떤 내용이고,
누가 출연해서 촬영을 하는지, 출연배우들의 콜타임*과 준비해야 할 미술/소품은 무엇인지 기록되어 있다.
(콜타임 [Call Time] : 촬영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간. 일명 'Standby Time')
그래서 현장에 있는 스태프들은 이 스케줄표를 통해 오늘 어떻게 촬영이 진행될 것인지 파악할 수 있고,
촬영을 위해 무엇을 미리 준비할 것인지, 혹시 다른 장소로 먼저 이동하게 될 경우에는 다음 장소는 어디인지 쉽게 알 수 있다.
** 어떤 스케줄표에는 주요 스태프들의 연락처도 적혀 있어서, 현장에서 진행적인 부분에 대해 궁금할 경우 해당 연락처로 직접 연락하기 편하게 하는 데도 있다.
드라마 현장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제작부는 스케줄표에 적힌 직접적인 준비물이 거의 없다.
촬영 진행은 드라마에선 전적으로 연출부가 맡아서 진행하므로,
출연자들 (보조출연, 단역, 무술 출연자 등)은 연출부에서 콜타임을 돌린다.
내일 몇 시까지 어디로 와서 분장, 헤어, 의상을 미리 스탠바이 해 준비하라고 미리 연락한다.
미술/소품의 경우는, 담당하는 미술 소품팀이 있어서 촬영 내용에 맞춰서 준비한다.
다만, 연출자의 의도에 맞춰 준비해야 하므로 미술, 소품팀은 연출부와 상의해 준비한다.
소품차들은 소품팀이나 연출부, 혹은 제작부에서 소품 차량 업체를 통해 시간과 장소를 알려준다.
그렇다면 제작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정답은 "위에서 진행되는 모든 것을 체크하는 마음가짐(?)과 열린 귀(?)"이다.
그렇다. 제작부는 현장에서 진행되는 모든 것을 체크하고 기록해야 한다.
처음 현장에 내던져질 때, 나에게는 부여받은 미션이 있었다.
스케줄표를 받아오라고 한 다음, 나에게 체크해야 할 것들을 몇 가지 콕콕 찍어주며
이것들의 시간을 빠짐없이 적으라고 한 것이다.
체크리스트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1. 한 씬이 촬영이 시작되는 시간 / 종료 시간
- 종료시간은 "컷, 다음 씬" 멘트 기준이라고 했다.
2. 보조출연자들이 끝나는 시간 (보통 시작시간은 스케줄표에 적혀 있어서 그렇다)
3. 렉카와 특수장비, 소품 차량들이 끝나는 시간
하나도 빠짐없이 꼼. 꼼. 하게 기록하라는 미션이었다.
이유는 몰랐지만, 일단 위에서 시키니 나는 시키는 대로 하기 위해 현장에서 온 감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현장 초보가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꼼꼼하게' 기록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뭐 좀 하려고 하면, 여기서 이걸 시키고, 다시 복귀해서 체크하려고 하면 저기서 저걸 시키고,
아니면 저 멀리서 촬영 내내 길을 막거나,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심부름을 나가서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는 등등 고난과 시련 투성이었다.
그러나 곧 시간이 지나자 나도 요령이란 게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촬영 현장 패턴이 조금 익숙해지니 눈과 귀가 뜨이면서 딴짓을 해도 들려오는 정보들이 많아졌고,
현장의 스태프들과 친해지고 익숙해지니 현장에 없다 하더라도 그들에게서 조금씩 정보(!)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 미션, 일단 클리어?!)
제작일지를 써 보자!
그렇게 적은 현장의 정보들은 하나의 문서와 서류로 정리한다.
보통 그것은 '제작일지'라고 하는데, 매일매일 업무 일지를 작성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회사마다, 총괄의 업무 방식에 따라 조금씩 용어는 다르다. 촬영 일지, 현장일지, 일촬일지 등등 다르지만 모두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거기엔 매일매일 촬영과 관련된 모든 정보가 기록된다.
스케줄표를 참고해서,
1. 드라마명 / 촬영회차
- A팀, B팀이 나뉜 경우에는 A팀 00회차, B팀 00회차 이렇게 기록된다.
2. 매일 스탭이 집합한 시간 / 모든 촬영이 종료된 시간
3. 촬영 장소, 촬영한 씬들
- 장소별로 이동한 경우 빠짐없이 적힌다. (+장소 촬영 사용료)
4. 출연배우, 출연배우가 촬영한 씬들, 출연배우의 출연료 내역
5. 차량들의 이동시간, 이동 장소
6. 촬영 장비들의 사용 시간 / 사용 금액
7. 그날의 특이사항 등
등등의 것들을 적는다.
즉, 매일 촬영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한눈에 파악하기 위해 일지를 적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위의 내용들은 스케줄표에 적혀있기 때문에 스케줄표를 참고해서, 현장에서 확인한 사항들을 체크해서 적는 게 보통인데, 가끔 현장에서 발생하는 변수들도 있어서 현장에서 항상 눈과 귀를 연 채 특이사항을 적기도 한다.
보통 제작일지는 현장의 가장 막내가 담당한다.
아무래도 가장 막내에게 제작부의 일이 무엇인지, 제작부가 어떤 것들을 담당하고 확인해야 하는지 알려주기 위한 기본적인 업무로서 담당하는 목적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처음에 업무를 위임받는 입장에서는 이유도 모른 채, 일단 '위에서 시키니까 한다'라는 생각이 강할 것이다. 또한 현장에서 모든 감각을 열고 기록을 해야 하다 보니, 나중에 정신적인 에너지도 많이 고갈되기도 한다. 그리고 사실 무엇보다 촬영을 하고 난 후 제작일지를 작성하다 보니, (위에서 봤듯이 내용이 엄청 많다!) 조금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좀 더 제작부로서 일을 넓게 보는 시야가 생기고 나서는, '제작일지'야 말로 제작부의 일중의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제작일지야 말로, 제작부의 가장 기본적이지만 중요한 기틀이요, 뒤에서 말하게 될 '정산'업무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현장의 자금의 흐름을 파악하고, 촬영의 플로우를 조율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날그날의 기록이 정말 소중하다.
지금 제작부를 시작하는, 혹은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제작일지'는 정말 중요하다! 는 것이다.
정말 x 100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