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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Jun 25. 2022

아프지 말고, 참지도 말고

제작 PD로 살아남기 ⑤  : 촬영 현장의 구급대원

바닷가나 수영장에 가면 안전사고에 대비한 안전요원들이 항상 상주하고 있다.

갑자기 발생할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며, 사고가 발생할 경우 즉각적으로 대처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촬영 현장에도 안전사고에 대비한 요원들이 항상 상주한다. 

그 사람들은 바로 '제작 PD'들이다.




촬영 현장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내용을, 다양한 방법으로 촬영하는 장소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난다. 

그중에 하나는 스태프들 혹은 배우들의 부상이다.


차량이 달리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 도로 위에 올라타는 경우가 있는 가 하면,

등장인물이 죽는 장면을 찍기 위해 옥상에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가는 사극이 있는 가 하면,

골목길, 달동네, 폐허 등으로 가는 장르물 드라마들도 있다.


그런 장소에서 촬영하는 장면들은 당연히 '안전에 대한 위험'을 필수적으로 깔고 가기 마련이다.

자칫 잘못하면 인사사고가 날 수 있다 보니, 현장의 제작 PD들의 신경은 곤두서서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말 뒷발에 치일 수도 있고, 풀독이 오를 수도 있고.. 긴장을 늦출 수 없다..! ⓒ 마의


그렇다고 해서 제작 PD들이 전문가 수준의 응급처치 방법이나 혹은 치료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거나,

혹은 안전 요원들처럼 24시간 능동 감시 체제 (소위 '매의 눈')로 현장을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화재나 대형 사고가 나는 장면을 촬영할 때면, 

사설 구급차나 구급대를 불러서 현장에 배치해서 즉각적으로 조치할 수 있게끔 하기도 한다.

그런 류의 드라마는 (특히 영화) 오히려 안전에 대해 각별한 유의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사고가 날 가능성이 오히려 낮을 수도 있다. 


반면 너무 일상적인 류의 드라마를 찍을 경우가 자잘한 사고가 더 나기 십상이다.


바쁜 현장 속에서 조금만 방심하다 보면, 어딘가 찢기고, 어딘가 부딪히고, 

발목이나 손목을 접질리거나, 혹은 어딘가 다쳐서 피가 나기도 한다. 

그런 것도 아니라면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거나, 소화가 안된다거나, 멀미가 난다던가 하는 

내과적인 증상이 나타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제작 PD들이 출동하는 절호의 타이밍(!)이기도 하다.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일제히 제작부를 찾는 때이기도 하니까.


구급상자 예시. 현장에 이런 구급상자를 항상 비치해둔다.     ( ⓒ 이천시 보급 구급상자)


스태프들, 배우들이 증상이 발현되면 제작 PD들은 현장에 항상 구비하고 있는 구급상자를 꺼낸다.

그 안엔 다양한 약(먹는 약, 바르는 약 등)과 응급처치 물품들이 존재한다.

가끔 한여름에 촬영할 경우에는 모기기피제나 식염포도당 등도 사다 놓기도 한다.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건강을 항상 곁에서 책임지는 것도 제작 PD의 일이기 때문이다. 

(얼른 나아서 일해라?!) 





2018년 여름, 살인적인 무더위가 대한민국을 휩쓸고 갔다.

여태껏 겪어왔던 여름과는 차원이 다른, 밤이 되어도 바람 한 줄기 불지 않았고,

더운 공기에 푹 갇혀 버려, 그야말로 사람이 죽어갈지도 모르는 그런 폭염이었다.

살인적인 무더위 속 야외 촬영이 진행되자, 건장한 남자 스태프들도 하나둘 지쳐가기 시작했다.

건장한 남자 스태프들이 그런데, 여자 스태프들은 오죽했으랴. 


그러던 중 촬영팀 막내 여자 스탭 애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그대로 푹 주저앉았다.

소위 진짜로 '더위를' 제대로 먹은 것이다.

나는 현장에 있는 봉고 차량 기장님과 함께 인근 병원으로 여자 스탭을 데려다주었다.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으며 좀 쉬라는 의사의 말에 여자 스탭을 놓고 나는 다시 현장으로 복귀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이번에는 스크립터가 쓰러졌다.

저녁 시간에 모두들 식사하러 떠난 그 자리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기운 없이 축 쳐져만 있었다. 

또다시 나는 스크립터를 태우고 인근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는 동안 나 역시 그 곁에서 스태프의 상태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현장을 비울 수가 없었던 나는 퇴원할 시간에 맞춰서 다시 오겠노라 하며, 현장으로 향했다. 


차에서 기다리는 동안, 나 역시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그랬다. 나 역시 더위를 먹은 것이었다.

낮부터 조금 메슥거린다 싶더니, 스크립터를 데려다주고 나오니 본격적으로 증상이 시작된 것이다.

다른 스태프들을 챙기다 보니 내 증상은 나도 모르게 모른 채 해버렸나 보다.

나는 차에서 잠시 기대어 몸을 뉘인 채 에어컨을 틀고 잠시 쉬었다.

에어컨 바람을 쐬고 누워있으니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그나저나, 

내가 만약 현장에서 아프면 누가 나를 케어해주지.


찾을 사람도, 부를 사람도 없는,

외로운 청춘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는 어느 한 여름의 제작 PD였다. 


아프지 말고,

참지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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