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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Jul 16. 2022

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제작 PD로 살아남기 ⑥ : 촬영장 내 신체적, 언어적 폭력에 대응하기

촬영 현장에 있다 보면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기 마련인데,

소위 '짬바'가 그득한 원로 스탭이나 배우부터 이제 막 드라마 쪽에 입문한 새내기들까지,

나이도, 지역도, 생김새도 모두 다른 남녀노소가 자신의 파트에 맞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다른 나라는 어떤 지 모르겠으나,

내가 막 드라마 쪽에 발을 막 디디기 시작할 때에는 우리나라 '드라마 판'만의 고유한 문화가 현장에 있었다.

한국의 특유의 '꼰대' 문화를 베이스로 한 이상한 서열 문화가 그것이었다.


현장에서는 자기만의 파트 (연출부, 소품팀, 분장미용팀 등)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것이 기본이지만,

어쩐지 나이가 조금 더 어리거나 어려 보이면(!) 여지없이 초면에 반말이 먼저 나가는 것

드라마 현장 나름의 국룰(!)이었다.

좋게 생각하면 일을 좀 더 편하게 하고자 하는 특유의 조직 문화였겠지만,

처음 맞닥뜨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리라.


나 같은 경우는 또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선배가 존댓말 써주는 것보다 반말해주는 게 더 친근감을 느끼는 경우라서,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부르며 친해지는 경우가 다수라서 여기만의 고유한 문화라고 생각했다.

또한 현장이 체력적으로 힘들다 보니 누구 하나 챙겨줄 여력이 없어서 그냥 빨리 얼른 현장에 익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생긴 문화 아닌 문화였으리라.


(하지만 내 이후에 들어오는 후배의 경우, (설사 다른 파트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초반의 어느 정도는 '~~ 씨'라고 부르며 조심스럽게 존칭 해주고는 한다. 이후 친해지면? 자연스럽게 친근하게 대하지만.)



이렇게 부르면 그나마 양반


반말보다 더 당황스러운 경우는, 바로 현장에서 욕지거리가 날아올 때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개XX' 라던지, 'X발'은 그냥 흔한 일상의 현장언어(!)에 불과했다.

그보다 더 심한 욕설과 고성이 오갈 때도 많다.

그런 경우는 그 사람의 인성 자체가 문제인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촬영 현장 속에서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강압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다 보니, 다들 예민한 성격 덕분에 약간의 문제가 생겨도 욕과 고성이 오간다.


특히 여자 스탭이 다수가 아니었던 시절, (라떼는 말이야) 이런 분위기는 더욱 심했다.

여자 스탭이 만만해서 인지, 혹은 강하게 키워서 얼른 주류 문화에 끼워주고 싶은 마음씨 덕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툭하면 여자 스탭 (특히 여자 제작 PD!) 에게 시비를 거는 남자 스태프들이 많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웃으면서 몇 번 넘어가 주니, 사람들은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점점 선을 넘을랑말랑 했고,

그러던 어느 날, 한 연출부형이 다른 스태프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서 괜한 시비조로 욕을 하는 것이 아닌가!


"현장이 재밌냐, X새야?"


평소 같았으면 당황하거나,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했겠지만,

어쩐지 그때만큼은 이상하리만치 당당한 기운이 내면에서부터 솟아올랐다.

그래서 나는 눈을 피하지 않고 눈을 마주치며 맞받아 쳤다.


"그래, X새야!"


자신의 말을 맞받아칠 거라고 생각도 못했던, 그리고 자신이 했던 그 말 그대로 되돌려 주자,

연출 부형은 오히려 머쓱해하며 당황해했다.

(그날 이후로 연출부형은 나한테 만만하게 대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요즘 같은 시대야 '미투' 운동이 한차례 불었고, 인식도 많이 바뀌었지만,

5~6년 전만 하더라도 그런 인식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얼마 없는 여자 스태프들에 대한 언어적, 신체적 희롱은 오래된 연차를 가진 감독들의 고유한 특권이라 인식될 정도였다.


특히 그 당시에는 여자 스태프들의 나이가 대체로 20대였기 때문에,

남자 어른들의 농담이나 신체적 터치에 어떻게 대처할지 몰랐고,

또 행여 자신이 그렇게 강한 어조로 대처하면 자신이나 혹은 자신의 팀에 불이익이 갈까 전전긍긍하던 시기였다.


나 역시 처음 현장에 갔을 때, 나이가 50대 정도 된 조명감독이 추근댔었던 적이 있었다.

괜히 옆에 와서 손도 억지로 잡고, 옆구리도 손가락으로 찌르는 등 노골적인 성추행이 만연했었다.

그 당시에는 오히려 그런 것들을 얘기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였었기에,

그냥 웃으면서 적당히 넘기는 등 나름의 노력을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대본 첫 장에 '촬영 현장 내 성교육 가이드'를 부착해 모든 스태프들이 인지하게 하는 한편,

제작사 차원에서도 성희롱 또는 성추행을 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을 하는 편이다.

특히 오래 일 하신 감독들의 경우, 아직도 옛날 분위기에 젖어서 자기도 모르게 농담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의도가 불순한 게 아니더라도, 요새는 그런 말도 위험하다고 얘기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는 예전처럼 남자 스탭과 여자 스탭 사이의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없으며,

서로서로 조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요즘은 드라마 대본 첫 장에 성희롱 가이드를 인쇄해 배포한다.


현장에 있는 모든 스탭, (배우들도 마찬가지!)에게 당부드린다.

제작 PD들의 일이 한 가지라도 줄어들 수 있도록,

걱정거리가 한 가지라도 줄어들 수 있도록,


제발,

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아, 그냥 넘지 말라고,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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