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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May 15. 2023

나의 해고 일지 -
승진했는데요, 해고당했습니다

하루아침에 해고당했다

"ㅇㅇㅇ를 오래전부터 교체해달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내가 그동안 뭉개고 있었어. 근데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아. 주변에서 듣는 평판도 그렇고, 계약해놓은 것도 문제고,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되는 모양이야. 그래서 지금 하는 일에서 빠져 줘야 할 것 같아."


어느 날 저녁 회사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고 있던 나에게, 내 윗 상사인 제작이사는 그렇게 통보했다. 다음 주 까지 일하고 정리해달라는 말과 함께. 


추석을 며칠 앞둔 9월의 어느 날 저녁이었다.

나는 하루아침에 해고당했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것도 잠시, 봄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며 사람들의 마음속엔 곧 봄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마저 조금씩 올라오고 있던, 3월이었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동종업계에서 일하던 후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급하게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더욱이 그 프로젝트는 전에 내가 하던 직급보다 한 단계 위였고, 커리어적으로도 필요하던 차 때마침 마침맞게 기회가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후배는 그 프로젝트가 얼마나 좋은지, 그 프로젝트가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 얽혀 있는지에 대해 전화로 이것저것 얘기해줬다. 바로 직전 다니던 회사에서 인간관계에 신물이 나 있었던 나로서는, 후배가 그렇게 직접 이야기해주니 더욱더 프로젝트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나는 후배에게 그 프로젝트에 들어가고 싶다는 의사를 넌지시 밝혔다. 그러자 후배는 자기가 담당이 아니라고, 자기 위에 관리하시는 이사님께 내 연락처를 넘기겠다고 했다. 안 그래도 다음 일을 찾고 있던 차였기에 후배의 전화 한 통이 너무나 고마웠다. 


며칠 후, 나는 후배로부터 전달받은 이사와 회사 건물 1층 카페에서 미팅을 가졌다. 후배에게 전달받은 이사의 이름만 보고 어떤 분일까 생각하며 나는 카페에서 기다렸다. 아마도 이름만 보면 건장한 체격이 있는 40대 남자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찰나, 누군가 나를 반갑게 알은체 했다. 키도 작고 마른 체형의 머리가 희끗한 50대 남자였다. 이사는 내 맞은편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사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경력에 대해 질문했고, 나 역시 그에 대해 거리낌 없이 얘기했다. 여느 프로젝트 계약 미팅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미팅 내내 이사는 지금 제작 중인 다른 프로젝트에 있는 외부 계약 인원이 계속 말썽을 일으킨다며, 외부인을 들이는 게 괜찮은 건지에 대해 염려하고, 묻고, 또 걱정했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해 계속 걱정하지 말라며 (왜냐하면 나는 그 프로젝트에 들어가고 싶은 열망이 컸으므로) 이사를 안심시키고, 또 안심시켰다. 1시간 정도 미팅하는 동안 이사와의 얘기는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미팅 말미가 되자 이사는 내게 다시금 괜찮을지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럼요." 나는 확신에 찬 대답을 했다. 그러자 이사는 알겠다며, 나에게 잘해보자며 악수를 청했다. 그러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업무적으로 부족한 부분도 가르쳐주겠노라 약속했다. 페이적인 부분도 내가 생각한 마지노선에 걸쳤기에 어느 정도 흡족하다고 생각했다. 미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출근일은 언제부터 하면 좋겠냐는 이사의 질문에 나는 다다음주부터 하겠다고 했다. (*미팅은 주 후반에 이뤄졌기에, 일주일 정도 더 쉬고 일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3월 초,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내 인생에도 따듯한 봄날이 올 것이라 기대했다.  


그렇게 나는 한 단계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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