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뭔들 May 29. 2023

나의 해고 일지
- 나는 왜 해고되었을까

내가 해고된 이유

해고 통보를 받고서 추석이 다가왔다. 대체 공휴일까지 있는 4일의 추석 연휴는 여름과 가을 사이에 있어서 그런지 날씨가 무척 좋았고, 코로나로 못 본 가족들과 만나서 바람 쐬러 가는 길은 즐거웠다. 하지만 가끔 가슴 한 구석에 갑갑함이 가득했다. 마치 동화 <눈의 여왕>에 나오는 눈의 여왕이 남매의 오빠에게 차가운 유리 조각 하나를 박아버린 것처럼, 내 가슴속에도 큰 유리 조각 하나가 크게 박혀있는 것만 같았다. 몸을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유리조각은 박혀 있는 내 몸뚱이 주변을 상처 내며 아프게 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나는 업무적으로 연관되어있던 사람들에게 한 명 한 명 인사하며 프로젝트를 그만두게 되었다고 전했다. 왜 갑자기 그만두냐는 사람도 있었고, 좋은 데로 이직하는 거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냥 사실대로 말했고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공식적인 출근 마지막 날, 나는 첫 출근했던 사무실에서 그대로 인사하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하던 일에서 갑작스럽게 빠지게 되는 일은 비단 나뿐만 겪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니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당하는 경우 역시 나만 겪는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들도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있으며, 이런 일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비일비재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나의 지금 상황이 나만 겪는 '불행한' 일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해고되었을까?' 하는 그런 근본적인 질문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일을 못한다는 얘기는 여태 6~7년 정도 일을 하면서 들어본 적 없다.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안 좋다는 얘기 역시 들어 본 적 없다. 물론 나와 업무 기준이 달라서 몇몇 동료들이 다른 곳에서 내 험담을 했다는 건 들어 본 적 있다. 하지만 그 동료들 역시 (내 마음속에서) 손절 아닌 손절을 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주변엔 그보다 더 좋은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업무적으로 정말 내가 역량이 부족해서였을까? 그렇다면 회사 차원에서도 중간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경고를 주든, 조언을 하든 그런 것이 회사 차원에서 필요했으나, 돌이켜보건대 그런 적은 없었다. 아니면 프로젝트에서 쓰는 돈이 많아서였을까? 경영지원팀과도 친했기에 물어보니, 돌아가는 세 프로젝트 중 가장 적은 예산으로 돌리고 있다고 했다. 낭비가 심했다면 주의 조치 역시 필요했다. 가이드를 주든 해서 맞추라고 하는 게 우선이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해고 통보받기 전 날 벌어진, 회사의 중대한 피해가 갈 수도 있을 법한 사건을 무마하고 책임지기 위한 꼬리 자르기가 필요해서였을까? 그래서라면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의 모함으로 인해 내가 이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을까? 생각해보니 몇몇의 얼굴이 떠오르기는 한다. 정말로 그들의 모함과 음모였다면? 나는 더욱더 억울한 상황이었다.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며 점점 길어졌다. 그러면서 처음 해고 통보를 받았던 홀가분함은 사라지고 억울함과 분노만 점점 커져갔다. 내가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반드시 성공해 보이리라. 업계 사람들 만나서 얼른 다시 일자리를 얻어서 보란 듯이 자리 잡고 일해 보이겠다. 나의 마음속엔 그런 다짐들과 나를 해고한 회사에 대한 원망만 커져 갔다. 


그 당시 나는 같이 살고 있는 부모님에게도 해고 사실을 털어놓지 않았다. 나 역시 해고 사실을 인정할 수 없을뿐더러, 부모님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냥, 회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나왔다고만, 그렇게 간단하게만 전했다.


해고된 지 1주일 동안 그동안 밀린 늦잠을 잤다. 그간 바쁜 생활 속에서 정신없이 일하다가 갑자기 무 잘리듯이 뚝 끊긴 이 휴식이 어색하긴 했지만 크게 싫진 않았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한 취미생활 등을 마음껏 해봐야지. 운동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그렇게 바쁘게 살아야지. 나는 이 시간을 그동안 하지 못한 'to do list'에 집중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딘가 쉽사리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머리로는 움직여야 한다고 계속해서 시그널을 주고 있었지만,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휴식이 필요했고, 재충전이 필요했다. 왜 이럴까. 아직 나에겐 휴식이 좀 더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집에만 가만히 있으니 자꾸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여행이라면 조금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간 코로나로 오랫동안 가지 못했던 해외여행을 다녀오자 마음먹었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여행사 사이트에 접속했다. 많은 여행지들이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금액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나는 금액적으로 괜찮고 일정적으로도 괜찮은 '싱가포르'로 가기로 결정했다. 

이전 03화 나의 해고 일지 - 잘못된 만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