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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Jun 12. 2023

나의 해고 일지
- 첫 번째 상담

어째서인지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

조연출은 나와는 5년 정도 알고 지낸 사이였다. 처음 만났던 때가 기억이 난다. 갑작스럽게 어떤 프로젝트에 중간 투입되었던 나는, 한창 돌아가는 촬영 스케줄 속에서 뭐가 뭔지 혼란스러워했고, 그 당시 조연출은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도와줬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때문에 그 조연출에게 좋은 감정(인간적으로)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조연출을 오랜만에 만나 다시 같은 프로젝트에서 일하게 되다니 기쁘기도 했고 반갑기도 했다. 그렇기에 5년 전 그때처럼, 여기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했다.


첫 촬영일, 지방에서 새벽부터 진행되는 일정이었기에 조연출, 연출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전 날 미리 내려가서 숙박을 했고, 나는 집결시간보다 1시간 정도 먼저 도착하는 일정에 맞췄다. 슛이 돌았고 여느 때처럼 모니터 뒤에 있었는데, 그 조연출은 '나를 제외한' 나머지 스태프들과만 살갑게 말을 걸며 얘기를 했다. 설마, 아니겠지. 기분 탓이려니 싶었고, 괜히 내가 예민하게 구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첫 촬영이니 여러 스태프들과 친분을 쌓아야 했으니 그런가 보다 했다.


시간이 지나며 그런 기분은 웬일인지 점점 정확하게 맞아 버리고 있었다. 조연출은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에게'만' 친절하지 않았다. 내가 프로젝트 관리하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조율하며 정해버리기도 일쑤였다. 나는 그럼에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연출은 나보다 이사와 더 오래된 사이였고,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 괜히 잘못된 행동으로 구설수에 오르내리기 싫었다.


... 후에 이사가 나한테 말한 단어로 말하자면, 그걸 '관계성'이라고 했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고 생각이 정리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귀국 후 며칠간 다시 알 수 없는 가슴의 답답함이 계속되었다. 내 안에서도 무언가 알 수 없는 우울감이 계속 자리 잡고 있는 듯했다. 친구들 혹은 지인들을 만나며 내가 당한 상황과 그에 따른 나의 생각과 추론을 얘기해보기도 했지만, 시원함은 그 순간이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방에 혼자 있을 때도 가슴 가운데의 답답함은 가시질 않았다. 


몸이 편하니 머리가 분주해지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프로젝트에 임했을 동안, 내가 처했던 강렬한 상황들이 떠오르며 '그때 그렇게 했던 것이 문제였나' 하며 과거를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니면 '그때 이렇게 했었어야 했나' 하며 후회가 밀려들어오기도 했다. 아무리 회사에 있는 사람들, 또는 회사 그 자체가 '나쁘다'라고 악의 축으로 정의 내려도, 결국 거기서 밀려난 건 (당시 나의 마음은 밀려났다고만 표현할 길이 없었다) 나였고, 객관적으로 보자면 진 사람은 나였기에 패배감과 무력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고등학생 때부터 꿈꿔왔고, 그래서 힘들지만 버텨가며 했던 일이었는데, 막상 한 단계 더 올라가려던 찰나에 이렇게 등 떠밀리듯 밀려나니 나의 길은 여기가 아닌가, 다른 일을 찾는 게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의 가지가 뻗어 나갔다. 


나의 상태가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아무것도 못한 채 그냥 인생을 살아갈 것만 같았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집 근처 심리상담센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정신건강의학과도 있긴 했지만, 마음은 왠지 '심리상담센터'에 더 기울고 있었다. 몇 군데 상담센터가 검색이 되었고, 나는 집에서 접근성이 좋은 곳 한 군데를 찾아냈다. 연락을 하니 바로 다음날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다음날 상담 센터를 찾았다. 해고된 지 약 3주 만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아담한 체구의 따듯한 인상을 가진, 나보다 나이가 있는 여자분이셨다. 허름한 건물 안에 있는 상담센터라 약간 주춤했는데, 실내는 그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의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상담 선생님의 주도 아래 나는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얼마 전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던 것, 6개월 정도 회사를 다니면서 힘들었던 것, 대표와 이사의 성격이 불같아서 나오기 직전에도 심장이 벌렁거렸던 것 등의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엮이면서 한 번에 쏟아졌다. 해고 후 3주 동안 머리와 마음이 정리된 줄 알았는데, 얘기를 점점 진행하면서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아무래도 상담 선생님이 나의 이야기에 대한 어떠한 지적이나 반박, 동의 없이 그저 공감만 해주는 것만으로도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나는 힘든 감정을 애써 눌러오고 있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갑작스러운 해고라는 것은 '거절감'을 경험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내가 있고 싶은데 억지로 밀어냈으니 밀려난 것에 대한 거절감이 지금 ㅇㅇ씨를 가장 힘들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상담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니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있는 감정의 주된 파이를 '거절감'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절감. 회사 다니면서 누군가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고, 거절당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결국 내가 처한 감정은 '거절감' 그 자체였단 이 상황이 순간 아이러니하다고 느껴졌다.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가족관계도를 그려보자고 했다. 나를 중심으로, 엄마와 아빠, 그 위의 할머니, 할아버지, 형제 관계까지 한 번 그려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조부모님은 어떤 분이었는지, 부모님은 어떤 분이었는지 하나하나 차근차근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생애주기를 정리하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물었다. 초등학생 때 나는 어땠고, 청소년기엔 어땠고, 20대에 들어서서는 어땠고 등등, 처음 보는 타인에게 이렇게까지 나의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란 생각은 이상하게도 들지 않았다. 살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나와 가족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ㅇㅇ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하던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갑자기 질문을 했다. 그러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서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약간을 고민하던 나는 어머니에 대한 답을 던졌다. ".. 챙겨줘야 할 사람이요." 상담 선생님은 어떤 리액션 없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60분 간의 상담 시간이 짧게 지나갔다. 체감상으로는 한 20~30분 된 것 같았는데, 어느새 1시간이 다 되고 말았다. 


"ㅇㅇ씨는 부모님이 좋아하진 않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하고 싶어 했고, 그것을 이룬 분이에요. 그것만으로도 대단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음 상담까지 자신을 좀 돌보고, 욕도 하고, 화도 내고, 자기 자신을 챙기며 그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60분 동안 눈물 콧물 다 쏟으며 나가려던 나에게, 마지막으로 상담 선생님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 해고라는 계기는  나중에 ㅇㅇ씨에게 아마 어떤 메시지를 줄 거예요. 아,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때 그 일이 나의 그런 의미였구나 하고 말이예요."

"네. 저도 그렇고 싶어요."

"좋아요. 그동안 회사에서 일했던 ㅇㅇ씨에게 스스로 한 마디 해줘 보세요."

"... 참 고생 많았다."



나는 그렇게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그날따라 10월의 가을 햇빛은 나를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 상담 선생님의 의견은 기억에 의한 것으로 다소 정확하지 않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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