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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Jun 05. 2023

나의 해고 일지
- 해외여행

해외여행이 나에게 알려준 것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누구나 갖는 기대는 있다. 혹은 어떤 기회를 잡았을 때 예상하는 자기만의 희망 혹은 흐름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건 자기가 바라는 모습이거나 남들이 바라는 모습일 수도, 그렇지 않으면 그냥 막연히 '잘 되면 좋겠다'의 그 어느 선엔가 머무를 수도 있다. 그건 사람이 갖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닐까.


나 역시 그랬다. 새롭게 시작하는 회사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한다는 사실은 설레면서 동시에 책임감을 주었다. 그런 일을 앞두고 타이트한 긴장감이 주는 일상의 활력도 나름 좋았다. 마치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꼈고, 세상에 나온 이상 그래도 '1인분'은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1인분을 넘어, 2인분, 10인분의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리라, 나는 그런 기대를 했다.


그런 기대가 처음 삐그덕 대던 순간이 생각난다. 들어온 지 1주일 정도 되었을 때였다. 이사는 전날 나에게 다음날 오전에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했다. 회사 사무실이 아닌, 프로젝트 사무실로 출근하던 나는 11시가 넘어서까지 이사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러던 차, 이사에게 연락이 왔다. 자신이 회사 사무실에 있는데 왜 오지 않느냐는 거였다. 프로젝트 사무실로 출근하던 사실을 알 텐데, 나는 부랴부랴 회사 사무실로 건너갔다. (프로젝트 사무실과 회사 사무실은 바로 길 하나 사이를 두고 있다.)  이사는 회의실에서 내 계약서를 전달하며, 어제 자기가 보낸 연락이 당연히 회사에서 보는 것 아니겠냐면서 그간 내가 잘못한 부분을 읊었다. 첫 출근한 지 1주일도 안 되어서 잘못한 부분을 지적받는 게 옳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사의 스타일이려니 생각하며 죄송하다 답하며, 앞으론 크로스체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내 마음속엔 작은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으레 혼자 해외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그건, 그동안 고생한 나에 대한 보상이었으며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서 정신적 피로감을 느낀 나에 대한 온전한 휴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몸과 마음이 리프레시되면서 개운함을 많이 느꼈다. 가끔 어떤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한국의 일출 시간과 맞물려 해가 뜨는 장관을 보며 귀국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왠지 모를 희망찬 기운을 같이 받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창궐한 이래, 전 세계 국가들은 자신들의 집 대문을 닫아버렸고 해외여행은 막혀 버렸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지만, 끝나는 그때 다시 해외로 나가겠노라 기약하며 모두가 바짝 엎드려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2년 여 만에 하늘길은 다시 열렸다. 코로나가 사라지진 않았지만 하늘길이 열린 것만으로도 답답한 마음이 조금 열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해고 후, 나의 첫 공식 일정을 해외여행으로 잡았다. 그 기분을 또 느끼고 싶어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마음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어떻게 '혼자' 해외를 가느냐고, 무섭지 않으냐고 내게 물었다. 그럴 때면 나는 해외에서는 안전한 '관광지' 위주로 다니고, 밤늦은 시간엔 돌아다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했다. 뛰어나진 않지만 식당에서 메뉴 정도는 주문할 정도의 영어 실력과 길을 잘 찾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남들보다 유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무서움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혼자' 해외여행을 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두려움이 앞섰다. 공항에 내려서 숙소까지 어떻게 가지? 택시를 타게 되면 택시기사가 눈탱이 맞게 하면 어쩌지? 여행 일정은 어떻게 짜야하지? 식당 가서 음식은 어떻게 주문해야 하지? 등등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동안 '혼자' 어떻게 해외여행을 다녔던 건지, 지난날의 나 자신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어딘가 설렘도 같이 공존했다. 실로 '오랜만에' 해외여행이었다.


코로나로부터의 첫 복귀 해외 여행지는 '싱가포르'였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가다 보니, 여행의 감을 되찾기 위해서는 여행 난이도가 가장 낮은 곳이 좋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깔끔하고 세련된 도시의 모습을 보니 한국에서 고민하던 것과는 달리 그래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도시 곳곳은 깨끗했고, 음식들은 맛있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익숙한 브랜드들이 많다 보니 낯설다기보다는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후에 여행기는 나중에 보다 자세하게 풀 것이다.)


첫날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 가서 유명한 '슈퍼 트리 쇼'를 관람했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지만 이미 사람들은 목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밤 8시가 가까워오자 20층 높이의 거대한 슈퍼 트리들 사이에서 음악과 함께 불빛들이 이리저리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과 감성으로 보자면, 그건 불빛들의 점광 시간 차이에 따른 그저 계산된 잔상이었지만, 내 눈에는 나무들의 별빛들이 아름답게 춤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 나는 그 별빛들이 나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는 것처럼 들렸다. 


너 참 잘해왔다. 너 참 고생했다. 너 참 힘들었겠다. 라고.


단순히 그저 나무 위에 달린 불빛일 뿐인데, 그들은 열심히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고 느꼈다.) 나는 이 슈퍼트리 쇼를 보기 위해 힘들었던 거다. (논리가 이상하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싱가포르에 오기 위해, 이 위로를 듣기 위해 한국에서 온 거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주위가 어두웠고, 사람들은 슈퍼 트리 쇼에 집중했기에 나는 그저 슈퍼 트리 쇼에 감동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다음 날 나는 싱가포르의 상징인 '마리나 베이 샌즈 타워 전망대'에 올랐다. 발 밑으로 펼쳐진 싱가포르의 전경 속에서 다양한 높이의 마천루들이 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싱가포르의 전경을 배경으로 연신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나 역시 약간의 사진을 좀 찍다가 전망대에서 싱가포르를 그냥 감상해보기로 했다. 싱가포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전망대에 선 채, 수많은 마천루 빌딩들을 보며 나는 다짐했다.


나는 성공할 것이다. 

아니, 성공해야만 한다.


지금의 상황은 나를 좀 더 채찍질 하기 위한 기회다. 그렇게 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했다. 스티브 잡스도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 났지만, 나중에는 필요해서 다시 복귀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는 최고가 되었다. 나는 해고된 이 상황을 내가 성공하기 위한 재도약으로 삼기로 했다. 싱가포르는 나에게 그러라고 무언의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해외여행이 준 응원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 또 다짐했다. 낯선 땅에서 혼자 헤쳐나갔던 것처럼, 한국에서 이제 나도 헤쳐나가보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전에도 그랬듯이 마음이 조금은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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