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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May 22. 2023

나의 해고 일지
- 잘못된 만남

 잘못된 상황이 거듭 되었다

약속한 첫 출근일, 나는 알려준 대로 회사 사무실로 처음 출근했다. 사실 출근하기 전부터 약간의 부딪힘이 하나 있긴 했다. 미팅이 끝나고 집에 도착했을 무렵, 그러니까 미팅이 끝나고 2시간 정도 지났을 때 이사한테 전화가 왔다. 내가 부른 페이가 너무 세다는 의견이 있어서 조금 조정할 수 있겠냐고 말이다. 내가 생각한 마지노선보다 적은 금액이었기에 조금 샐쭉해졌다. 결국 다시 한번 나의 다짐을 전하며 협상금액을 지켜내긴 했지만, 어딘지 조금 찜찜한 기운이 들었다. 하지만 그 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나는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들만 생각하기로 했다.


 첫 회사 사무실에 도착해서 사무실 직원들과 일일이 인사하며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첫 승진해서 맡은 자리였기에 기대와 부담이 앞섰다. 하지만 무엇보다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제일 컸다. 이번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해서 다음 일까지 꼭 잘 해내리라. 어떤 일이 닥쳐도 여태 잘 해왔던 것처럼 잘 헤쳐 나가리라. 나는 그렇게 첫 출근날 굳게 다짐했다.




일은 예상대로였다. 처음 맡은 자리여서 그런지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었고, 잘 모르는 부분도 많았다. 예전에 상사가 하는 일들을 옆에서 많이 봤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옆에서 보는 것과 내가 직접 하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이렇게 신경 쓸 게 많았단 얘긴가. 일을 하면서 조금씩 버거움이 들기는 했지만, 그리고 하나하나 발품을 팔아가며 알아가는 과정이 조금씩 힘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가 무언가를 해 나가고 있다는 작은 성취감들과 배워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그런 것쯤은 크게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끔, 아주 이따금씩 이사와의 자리는 불편함을 주기는 했다. 그럴 때마다 첫 미팅 자리에서 건넸던 이사의 말이 때때로 마음에 계속 걸렸다. 자신은 굉장히 집요한 성격이라는 그 말.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미 직전에도 업계에서도 까다롭기로 소문난 상사를 만났던 터라, 이사의 그런 성격쯤은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고, 오판이었다. 이사의 집요한 성격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터지곤 했다. 한 번은 계약 관련해서 전달한 나의 말이 이사의 기분을 건드렸는지, 이사는 나에게 잠깐 얘기 좀 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아까 자기가 들은 말이 '무척 서운하다'면서,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집요하게' 묻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럴 의도는 아니었으며 이런 뜻으로 말씀드렸다고 정중히 대답했으나, 그 대답이 본인의 기대한 답이 아니었는지 나의 말이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 조목조목 상세하게 다시 나에게 얘기했다. 한참을 듣던 나의 입에선 결국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는 말이 나오고 나서야, 이사는 본인의 기분이 풀린 듯 나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건네며 자신의 정당함을 다시 한 번 전달했다.


이런 순간은 일을 하는 중간중간 몇 번 더 발생하곤 했다. 그쯤부터 나는 이사의 기분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고, 혹 이사의 심기를 건드릴까 말 한마디 더 신중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업무적인 조언을 구할 때도, 중간 상황을 보고할 때도, 이사가 언제 어떻게 갑자기 돌변할지 몰라 나는 늘 그의 기분을 살펴야만 했다. 그래도 본격적인 프로젝트가 착수하면 괜찮아지겠지 싶었다. 그때까지만 조금 더 참아보자 하며 나를 다독였다.


하지만 그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가고야 말았다. 이사는 갑자기 다른 프로젝트로 발령받게 되었다. 나의 직속 상사는 이사 위 바로 대표가 되었고,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대표 직할 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이사의 발령에 대표에게 인수인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대표에게 다시 처음부터 진행상황을 보고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사 선에서는 오케이가 됐던 몇몇 계약 건과 업무가 대표에게 가니 다시 처음부터 어레인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야 말았다. 


그런 와중에 현장을 같이 관리하던 나는 현장 관리에도 애를 먹었다. 여태껏 전혀 문제 되지 않았던 일들이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내부와 외부를 같이 관리하던 중에 일들은 계속 몰아쳤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괴로웠고, 출근하면 그저 하루가 무사히 끝나기 만을 바라고만 있었다. 나는 그저 사막 한가운데에 놓여 모래바람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상황까지 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리라,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는 지경까지 다다르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일이 너무 고된 채 퇴근한 어느 날, 일을 소개해 준 후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같은 프로젝트를 담당하지만 다른 파트여서 협업할 일이 많았기에 업무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과 고충을 서로 나누다가, 나는 문득 이런 말을 뱉어 버렸다. "여기에 내 편이 없어." 한편으론 이런 일을 소개해준 후배에게 나도 모르게 투정 아닌 투정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렇지만 그 말은 진심이기도 했다. 의지할 곳도, 도움을 받을 곳도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무척 지쳐 있었고, 겨우겨우 힘을 짜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나는 해고를 당했다. 

업무적 역량이 부족하고, 평판이 좋지 않고 등등의 주된 이유가 그거였다. 

하지만 나는 쉬이 납득할 수 없었다. 

억울함이 몰려왔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홀가분함도 들었다.


해고지만 동시에 해방이다.

벗어날 수 있다.

해고를 당할 때 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우리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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