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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Jul 10. 2023

나의 해고 일지
- 착한 아이 콤플렉스

내 안의 분노의 근원지를 찾다

두 번째 상담은 첫 번째 상담보다는 그래도 조금 마음이 안정된 것처럼 느껴졌다. 첫 번째 상담 때처럼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지는 않았고, 그보다는 한 절반 수준으로 눈물을 흘렸으니 나 나름대로는 꽤 마음이 진정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상담은 그래도 진전이 있다고 '보였다'.


마음이 안정이 되니 그래도 지난주보다는 나의 정신적 충전 활동에 좀 더 몰입할 수 있었다. 그동안 밀렸던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새로 개봉한 영화를 찾아보러 다녔고, 한창 공연 중인 뮤지컬도 예매했고, 책도 읽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서는 불안한 마음과 '네가 지금 이런 거 할 때야?' 하는 마음의 채찍 소리가 다시금 피어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다스리며 전보다는 안정된 활동을 이어나가려고 했다.


나에게 필요한 온라인 강의도 찾아서 들었다. 이직과 직업 스킬에 관한 강의도 돈 주고 끊어서 들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나의 직장생활에서 내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에 대한 마인드를 내가 잘못 갖고 있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특히 상사와의 관계가 나한텐 쉽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마인드셋을 다시 가져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꽤 놀라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10여 년이 넘게 해 온 시간 동안 나는 왜 이렇게 방어적으로 임했는지, 아쉬움과 후회가 잠깐 들었다. 


그렇게 나의 정신적 충전 활동에 집중하는 동안, 반대로 업계 사람을 만나는 일은 자제했다. 해고당했던 그 시점에 "조만간 얼굴 보자"라고 연락을 돌린 지인과 친구들은 반갑게 나의 제안을 환영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스마트폰 속에 저장된 연락처들 몇몇을 보면서, '연락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만 떠올리고 있었다. 실제로 먼저 연락한 경우는, 정말 친한 친구나 업계 비종사자인 지인이 보자고 하는 모임뿐이었다. 아직 내 마음이 업계 사람을 만나기에는 두려움 아닌 두려움이 앞섰다. 왠지 내가 초라하게 보일 것만 같은 무서움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TV에서 하는 상담 프로그램에도 꽂혀 있었다. 평소에 그런 심리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좋아했던 터라, 게스트들의 이야기를 보며 나의 이야기에도 적용하며 대입해 보는 걸 좋아했고 재미있어했다. 일하면서 제대로 챙겨 보지 못했던 터라, 봐야 할 회차가 꽤 쌓여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나중에 봐야지, 하고 미뤘겠지만, 미루지 않고 챙겨보자고 마음먹으면서 쭉쭉 집중해서 봤다. 


그러던 중, 한 연예인과 모녀의 사연이 다뤄진 회차를 봤다. 엄마와 자신의 사이가 편하지 않다는 그 연예인의 사연은 나와의 상황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기에 몰입도를 증가시켰다. 사연인 즉, 어릴 때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어머니가 고통받았고, 어린 시절 자신이 그런 어머니에게 "자신은 괜찮으니 도망가."라고 말했던 경험이 있다며, 연예인과 그녀의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그 연예인의 사연을 보자니 자연스레 잊고 있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꽤 호전적인 분이었다. 재미있고 유쾌하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 때문에 내면의 분노가 차 있었다. 아버지는 그 분노를 가끔 내가 잘못했을 때 (아버지의 입장에서 봤을 때다.) 가감 없이 훈육을 통해 터뜨리곤 했다. 어머니도 아버지의 분노를 피해 가기 어려웠다. 가끔 어머니도 나에게 아버지에게 받은 분노를 푼 적도 있었다. 그럴 때가 아니면 우리 집은 평화로웠고, 재미있던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어린 나 자신에게 반복적인 훈육의 순간은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고통이 반복적으로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였으므로, 나는 늘 아버지의 기분을 살펴야만 했고, 그건 언제나 '착한 아이'가 되어야만 하는 결과를 낳고야 말았다. 나는 인터넷에서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대해 찾아보았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가진 몇 가지 눈에 띄는 특성들이 있었고, 그건 내가 가지고 있는 성향과도 일맥상통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남들의 거절을 쉽게 거절하기 힘들었으며,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에 대한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나는 '착한 아이'였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대한 특징을 읽고 나니, 갑자기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 올라왔다. 나는 방 안에서 숨죽여 엉엉 울었다. 눈물을 멈추고 싶었지만 한 번 복받친 감정이라 그런지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나는 해고당한 이후 가장 많은 시간 동안, 가장 많은 눈물을 한꺼번에 흘리고야 말았다. 그때 나도 왜 그런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냥 그렇게 자라온, 그 당시 어려서 힘이 없어서 무서웠을 '어린 나 자신'에 대한 안쓰러운 연민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때 분노에 대해 저항할 수 없었던 무기력했던 나에 대한 위로이기도 했다.


눈물을 펑펑 쏟자 마음 한 구석이 조금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 가진 분노의 근원지를 알 것도 같았다. 그건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느꼈던,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던 나 자신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다. 그동안 분노는 타인을 향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내 자신에 분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가 나 자신을 향해 있자, 나에겐 우울감으로 찾아왔던 것이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침대에서 엉엉 울었다.

그건 그동안 내가 가진 분노 해소의 시작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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