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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Jul 17. 2023

나의 해고 일지
- 요가Ⅰ

나의 모습을 보게 되다

일을 하지 않으니 시간이 많아졌다. 바쁘게 돌아가던 내 시계는 남들보다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이대로 보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하면서 운동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터라,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몸도 많이 망가졌다는 게 한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운동을 다시 시작하긴 해야만 했다.


동네에는 여러 가지 스포츠센터들이 많았다. 헬스부터 복싱, 요가, 필라테스, 점핑 다이어트, 태권도 등 다양한 스포츠센터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선택한 건 요가였다. 최근에 한 OTT 예능에서 이효리가 요가를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며, 친구들에게 아침 요가를 가르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데뷔 때부터 최고의 가수였고 데뷔 때부터 엄청난 매력을 지닌 여자 연예인이었지만, 결혼 후 요가를 하며 그녀의 내면은 더 단단하고 안정되어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이효리가 한편으론 부러웠다. 어떻게 그녀는 저런 단단한 내면을 지닐 수 있었을까? 도대체 요가는 어떤 힘을 지녔기에 그 내면을 만들어 주었을까? 나는 그런 내면이 누구보다 필요했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동네 요가 수업을 가르치는 곳을 찾아 등록했다.


사실 요가를 선택한 이유에는 나의 경험적인 요소도 한몫했다. 평소 하루를 마칠 때면, 유튜브에 있는 요가 영상을 보며 몸을 풀어주고 잠에 들곤 했다. 스트레칭에 가까운 요가 영상들을 몇 번 따라 하다 보니, 다른 스포츠 와는 다르게 요가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근력은 없지만 남들보다는 유연성은 있다고 자부하던 나였기에, 요가 수업을 듣는 게 어렵지 않을 거란 생각도 있었다. 어찌 보면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는 거에 아직까진 두려움이 많기도 했다.


요가 수업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빈야사, 아쉬탕가, 하타, 필라테스, 힐링, 아로마세러피 등 도대체 이것들이 무엇을 가르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어떤 수업인지 알려면 무조건 참석하는 수밖엔 없었다. 평소에 끈기가 없던 나였기에 우선 1개월만 등록했고, 나는 1개월 동안 나한테 맞는 요가 수업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하지만 요가를 막상 결제하고 나서 출석해야 하는 날짜가 다가오자 어쩐지 귀찮음이 몰려왔다. 요가 센터까지는 고작 걸어서 5분 남짓이었지만, 5분 남짓한 시간을 걸어갈 의욕 따윈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냥 누워만 있고 싶었고, '내일 가지 뭐'하는 생각으로 하루 이틀 정도는 미루고 말았다. 그러다 목요일쯤 되었을 때, 주 2회 수업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옷을 갈아입고 요가 센터로 향했다.


요가 센터로 들어서니 예닐곱 명의 여성 회원들이 매트에 누워 있었다. 센터 한쪽에서는 차분한 무드의 요가 명상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센터 입구에 켜 놓은 인센스 스틱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로운 향이 가득했다. 모든 요소들이 전체적으로 차분하면서도 안정된 공기를 만들어 센터 안을 감싸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센터 안을 들어갈 때 마음이 안정되면서 편하다고 느껴졌다.


첫 수업은 아쉬탕가였다. 아쉬탕가는 요가 플로우 중에서도 파워풀하고 난이도가 높은 요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무 정보도 없이 들어간 나는 첫 수업에서 빠른 흐름으로 진행되는 자세와 강한 버티기 자세가 60분 동안 스피디하게 진행되면서 첫날부터 너무나 힘이 들었다. 요가 선생님은 자세도 쉽게 쉽게 잘하는데(그래서 선생님을 하는 건가 보다), 나의 몸뚱이는 어쩐지 그를 따라가기엔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내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이대로 요가 수업을 해도 괜찮은 건지 의문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편해진 것만 같았다.


두 번째 수업은 힐링 요가였다. 아무래도 전날 난이도가 높은 요가를 해서인지 이번엔 좀 난이도가 낮춰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약속도 있고 해서 오전 수업으로 들어갔다. 오전 수업이긴 하지만 오히려 수업을 들어오는 사람들은 저녁 수업보다 더 많았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 건지 신기하기만 했다. 힐링 요가 수업은 매트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지난날 나의 해고와 관련된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요가 선생님의 호흡 지도 속에서, 내 머릿속에 저장된 수많은 순간들이 천장에 어른거리는 것처럼 보였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이 툭 떨어졌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울분과 슬픔이 가득했다. 남들이 볼까 얼른 눈물을 슥슥 훔쳤다. 


힐링 요가는 첫 수업과는 다르게 꽤 느린 호흡으로 진행되었다. 자세도 빠르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흘러가듯이 진행되었는데, 선생님의 지도에 맞춰 내 자세를 따라 해야 하다 보니 선생님을 보며 할 수밖에 없었다.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요가 센터 안에서 나는 선생님을 보며 동시에 내 자세를 볼 수밖에 없었는데, 오 마이 갓. 평소 집에서 따라 하던 대로 자세를 취한 나는 내 자세가 엉망진창임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말았다. 구부정한 등, 말린 어깨, 다 쫙 펴지지 못한 다리, 그리고 부끄러워서 옷으로 감춰왔던 내 몸의 굴곡까지. 요가 센터의 거울은 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춰 주고 있었다. 


나는 내 모습을 그때 처음 올곧이 바라보았다. 남들보다 잘하고 있다고, (혹은 잘한다고) 믿어 왔던 나였지만 아직은 형편없었고, 옷으로 감추며 애써 외면했던 내 몸은 나의 시선에서는 괜찮아서 괜찮다고 생각해왔지만 사실 누구보다 망가져 있었다. 요가 센터의 거울은 나의 작은 몸짓, 사소한 흔들림 하나도 그대로 비춰주면서 다시 나한테 보내주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나는 요가를 하며 내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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