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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Jul 31. 2023

나의 해고 일지
- 세 번째 상담

나 자신의 매니저가 되어 주기로 하다

두 번째 상담 이후 2주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일을 다니며 하지 못했던 문화생활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길고 긴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친구들은 나의 상황을 이해해주기도 하고, 혹은 그냥 넘어가 주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여 주었다. 어느 쪽이 되었든 간에 해고 이후 심리적으로 움츠러들었던 나에게는 그런 반응들이 안정감을 주었기에, 나는 그 시간이 편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러던 차 그 사이에 일이 하나 생겼다. 아버지가 쉬는 날 단둘이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툭 던진 아버지의 말에 내가 큰 상처를 받고 만 것이다. 해고 사실을 짐짓 알리지 않고, 단지 회사를 그만두었다고만 얘기했기에 정확한 상황을 몰랐을 아버지셨지만, (어쩌면 내심 짐작하고는 계셨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나 자신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듯이 들려서 그만 크게 싸우고 만 것이다. 


감정이 상해 혼자 방에 들어가서는 감정을 삭이고 있는데, 왜 이렇게까지 내가 이렇게 화가 났을까 하는 궁극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부대끼며 산 지 하루 이틀이 아니건만, 나는 이토록 아버지의 말에 화가 나고 속이 상했던 것일까. 아니, 나는 왜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톺아보게 된 건, 지난 명상 클래스에서 만났던 한 아주머니가 들려준 딸과의 일화를 듣고 나서였던 것 같다. 그 아주머니의 딸은 고등학생이지만 프랑스로 홀로 유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딸이 홀로 유학을 가는 것이 못내 걱정되었지만, 그마저도 딸의 유학을 반대하는 그녀의 생각조차도 자신의 욕심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잣대로 딸을 규정짓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느 날 딸에게 조심스럽게 프랑스 유학에 대해 물었는데, 딸은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가 하면 엄마의 걱정에 대해서도 자신이 생각한 대안(이면서 계획)을 야무지게 답변했다고 한다. 물론 그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의 홀로 유학이 걱정되긴 했지만, 확고한 딸의 의지에 딸을 그대로 보내주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전하는 아주머니의 말투에도,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딸의 모습을 상상하며 둘의 건강한 관계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러고선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나의 상황을 부모님에게 제대로 설명한 적이 별로 없었다. 왜냐면 '이해해 주지 않는 게 뻔하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이 어디서부터 깊게 뿌리 박혀 있는가 하고 살펴보니, 나의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청소년 시절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 혹은 나의 의견, 나의 생각에 대해 제대로 된 인정을 보내주시지 않으셨다. 그저 무슨 말을 하면 "안 돼", "그거 하지 마", "그거 말고 다른 거 해" 등 대부분 부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오곤 했다. 처음엔 설득해보려고 하기도 했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하긴 했지만 항상 거대한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았고, 번번이 나의 의견은 제대로 어필되지 않았다. 


그런 순간을 여러 번 겪고 나서는 나는 애초에 나의 의견을 피력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나는 그 뒤로 항상 저질러놓고 통보하기 일쑤였다. 여행을 간다거나, 혹은 이사를 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단기 어학연수를 갈 때도 일단 저질러 놓고, 그만두게 하기 어려운 시점, 즉 일이 닥쳐서 취소할 수 없을 시점에 늘 통보하는 식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이 반대할 것만 같았다. 아니, 반대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못난 마음은 남들에게 잘 의지하지도 기대지도 못하는 방어기제로 강하게 발동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순간이 내가 사회생활을 하는 결정적인 때에 불쑥불쑥 튀어나오게 되었던 것 같다. 이건 상담 시간에도 선생님이 한 번 이상 말해준 것과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내 안에 이 얽히고설킨 타래를 하나하나 풀어갈 필요가 있었다. 그건 나를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앞으로 만날, 혹은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면서 지낼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그때 부모님과의 관계를 내가 재정립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들러가 쓴 책 <미움받을 용기>에도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나. 내가 지금 불행한 건 내가 어렸을 때 받은 상처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내가 불행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불행한 거라고. 




세 번째 상담 시간이 다가왔다. 선생님은 2주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면서, 지난주 갑작스러운 일 때문에 상담을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2주 동안 있었던 것들을 이야기 함과 동시에, 나에게 있었던 깨달음의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면서 놀라워했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과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 선생님은 긍정의 답변을 보냈다.


"ㅇㅇ씨의 상사 분이 그렇게 호의적인 분은 아니셨잖아요. 그런데 그런 분과 지낼 때 특히 ㅇㅇ씨의 아버지와의 관계가 상사 분과 관계를 맺을 때 드러났던 거죠."


내가 회사 일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의 아버지에 대한 감정(태도)이 상사에게 투영되었다는 소리였다.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며 상사의 호통이나 그런 부분에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건, 어릴 때부터 맺어져 왔던 '거절'의 '불편감'이, 이해하지 못할 거라 단정했던 나의 '예단'이 나를 옭아맸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그런 추측도 순간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ㅇㅇ씨에게는 이제부터 ㅇㅇ씨 자신이 '매니저'가 되어 주어야 해요. 불합리한 상황에서 해야 할 말도 해 주고, ㅇㅇ 해야 할 일도 해 주고, 그렇게 자신을 돌보아 주어야 해요. 그게 이제부터 ㅇㅇ씨가 해야 할 일이에요."


나의 매니저. 내가 속상할 때, 힘들 때, 기쁠 때, 슬플 때, 화가 날 때, 즐거울 때, 행복할 때, 365일 24시간 나를 지켜주는 매니저가, 친구가 되어 주라는 상담 선생님의 말은 여느 때보다 나의 마음을 강하게 울려왔다. 그간 어쩌면 나는 스스로를 소중하게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상 클래스에서도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나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마음도 같이.


1시간 여의 상담은 나의 과거를 돌아보며 치유하는 시간이 아닌, 지난 나의 경험들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으로 바뀌어졌다. 그건 아마도 내가 지난 상담을 하며 보낸 시간 동안 나 스스로도 조금은 치유가 되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상담 마지막, 나는 최근 내가 가진 고민에 대해 털어놓았다.


"회사에서 업무적인 연락이 오는데, 이걸 언제까지 받아줘야 할까요?"

"연락이 자주 오나요?"

"그건 아니에요. 상사 분은 전에 한 번 왔고, 밑에 후배로부터 가끔 왔어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 사실.. 받고 싶지 않아요." (연락을 받으면 내가 회사로부터 받았던 괴로움이 생각나서 더 괴로워요)

"그러면 받아 주지 마세요. ㅇㅇ씨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시는 게 맞아요."


마지막 질문에 대한 선생님의 대답,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대답을 들으니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해졌다. 그리고 나는 다음 상담을 기약하며 상담실 문을 나섰다. 


여느 상담 때와는 다른, 이전보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이었다.

나는 내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금씩 감을 잡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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