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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Jul 24. 2023

나의 해고 일지
- 나의 시간

나의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요가 수업과 명상 수업은 지난 나를 되돌아보는 데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그건 어쩌면 흐트러져 있는 커다란 잡동사니 바구니를 밑에서부터 헤집어서 하나하나 다시 꺼내보는 것 같은 과정처럼 느껴졌다. 나라는 사람이 하나하나 차곡차곡 담아온 '나'라는 바구니 속에는 제대로 무엇이 있는지, 혹은 무엇이 없는지 되돌아보기에도 바쁘게 지내왔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나의 바구니'를 차근차근 들여다보는 과정은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흥미롭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벌써 세 번째 상담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요가 수업을 통해 나는 나의 몸을 통해, 그 안에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나라는 사람은 과연 무엇을 가지고 있지? 해고를 당하면서 나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우울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나한테 뭐라도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더 우울하다고 생각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차에 상담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갑작스러운 가족의 병환으로 상담 스케줄을 다음 주로 급히 미뤄야 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아쉬움이 크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편안함도 느껴졌다. 상담 선생님을 만나서 무언가 잘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아주 사소하게나마 있었는지, 그 부담을 떨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쉽지만 다음 주에 보겠노라고 나는 답장을 보냈다.


갑자기 일주일의 시간이 붕 하고 뜨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잠시 동안 막막했다. 하지만 반대로 주어진 시간은 오롯이 내 것이니 이걸 잘 쉬면서 써먹어 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일을 해오면서 제대로 시간을 온전히 쉬어본 적이 없었다. 설령 일을 안 하고 있는 시간이나 기간에도 나는 무언가를 해왔다. 그게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게 아니라면, 어쩌다 가끔 시간이 나서 그 시간에 하고 싶은 취미나 활동을 하고 있어도 그 시간엔 늘 업무 연락에 시달렸다. 가령 운동을 하고 있노라면 잠깐 운동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전화, 문자, 카톡 등 쉴 새 없이 전화가 울려댔다. 그러고 나서 부랴부랴 회신을 주면, 왜 늦게 답했냐부터 온갖 핀잔이 들려오기 일쑤였다. 그게 업계의 생리고, 질서라고 정해져 오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온전히 내 시간 하나 누리지 못하는 현실 아닌 현실이 못내 아쉽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주어진 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영화를 볼까? 드라마를 볼까? 공연을 볼까? 공부를 할까? 책을 읽을까? 아니면 그냥 누워서 있을까? 등등 온갖 계획들이 머릿속을 떠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 와중에 뭘 해야 잘하는 거라고 여겨지는 건지 나는 따지고 있었다. "뭘 해야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거리로 쉬었다고 얘기를 할까? (혹은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둥둥 떠다녔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너 지금 이런 거 할 때야? 얼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지 않아? 다른 경쟁자들은 벌써 이만큼 앞서가고 있다고!" 등의 나를 채찍질하는 다양한 소리도 둥둥 떠다녔다. 


아차 싶었다.


나는 왜 오롯이 주어진 내 시간조차 이렇게 누리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주어진 시간을 즐기는 것도 왜 나는 죄악시 여기고 있다는 건가.

그마저도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즐기지 못하고 있을까.


나의 머릿속에서는 너무 많은 소리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세 번째 상담을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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