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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Jul 03. 2023

나의 해고 일지
- 두 번째 상담

나의 마음에는 분노가 있었다

일주일의 시간은 길게 느껴지기도, 반대로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상담 선생님을 하루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조금만 더 늦게 만났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내가 느낀 이야기를 하루라도 빨리 전해주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내 마음을 몰랐으면 하는, 그런 양가감정이 내 안에서 모락모락 피워져 올랐다. 지쳐 있었고, 그렇기에 얼른 이 상황을 벗어나고도 싶었다. 내 마음은 혼란 그 자체였다.


그 사이, 같이 일했던(나를 회사에 소개해줬던) 후배에게서 잘 지내느냐면서 연락이 왔다. 나도 후배에게 어떻게 지내느냐며 안부를 주고받던 중, 후배는 그간 자신이 들었던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뒷면모를 알려주며 후배는 나보고 회사를 나간 것이 잘 된 거라 위로했다. 후배의 연락을 들으니 약간의 안도감이 살짝 일렁이다 다시 가라앉았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변한 건 없다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아래로 끌어당긴 게 아닌가 싶었다. 후배와 나는 곧 얼굴 보자는 말을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두 번째 상담일. 처음 갔을 때는 건물의 입구를 한 번에 찾지 못해서 헤맸었는데, 두 번째 가니 이제는 조금은 익숙해진 것 같았다. 상담실을 향하는 걸음도 첫 번째보다는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상담 선생님은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따뜻하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첫 시간에는 경황이 없어서 물도 못 마셨는데, 나는 물도 챙겨서 상담실 안으로 들어갔다.


상담 선생님은 일주일 동안 잘 지냈는지,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봤다. 나는 습관적으로 "괜찮았다."라고 말했다. 왜냐면 그렇게 최악의 일주일을 보내지는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최악이 아니면 괜찮다는 일종의 낙관적인 사고관이 있다, 나한테는.) 그러면서 나는 명상 클래스에서 느꼈던 것을 상담 선생님한테 얘기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이 왈칵. 도대체 이 눈물은 언제까지 나올 건지 나 자신조차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눈물이 나오진 않겠지.


이번 시간엔 상담 선생님은 라벨링 작업을 해보자고 했다. 내가 겪었던 '해고'라는 것에 '해고'라는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을 붙여 보자는 거였다. 해고라는 이름도 계속 갖고 있으면 그게 영향을 줄 거라면서, 그것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다른 이름을 붙여서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강아지라던지, 초코라던지, 구름이라던지 등등 전혀 생뚱맞은 것들이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해고에 '가위'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고라는 친구(!)에게 좋은 이름을 붙여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그럼 이 '가위'라는 친구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적어보자고 했다. 조금 고민하다가 나는 A4 용지에다가 '가위'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나갔다. (그 안에는 상담 선생님의 힌트와 내가 후배의 말을 듣고서 느낀 내 마음도 일부 담겨 있었다.)


나도 너를 잘라야 하는 상황이 어쩔 수 없었어.
함께 가고 싶었는데 끝까지 가지 못해 너무 아쉬워.
나중에는 조금 더 좋은 곳에서 만나자.


내가 적은 글귀를 본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ㅇㅇ씨가 '해고'에 '가위'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네) 왜 가위를 붙여줬어요?"

"아무래도 무언가를 자르니까, 이것 밖에는 생각이 안 났어요."

"그렇군요. 그러면 생각해볼까요? 가위라는 물건은 꼭 사람을 자르는 데만 쓰일까요?"

"아니요.."

"무언가를 잇기 위해 쓰일 수도 있고, 새로 만들기 위해 쓰일 수도 있고요."

"그렇죠."

"그럼 가위라는 친구도 본인이 원해서 ㅇㅇ씨를 잘랐을까요?"

".. 아니요."

"그럼 좋습니다. 그럼 ㅇㅇ씨가 가위에게 해보고 싶은 말을 적어 볼까요?"

(그때는 이 말의 의미가 마음속에 제대로 와닿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후에 상담 선생님의 말씀의 의미를 조금은 알아챌 수 있었다.)


상담 선생님의 제안에 나는 다소 약간의 시간을 A4 용지만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적어야 할까.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들다는 원망? 아니면 나 사실 아무렇지도 않아~ (실제론 그렇지 않았지만) 하는 쿨병의 초연함? 그런 것도 아니면 도대체 너 왜 그런 거야! 하는 분노? 이도 저도 확실한 감정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나는 다시 볼펜을 들고 A4 용지에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도 갑자기 이렇게 되어 당황스러워.
하지만 너도 원한 상황은 아니었겠지.
거기에 좀 더 오래 있었으면 나는 더 고통받았을까.
이게 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메시지를 다 적었다고 하니, 상담 선생님은 그러면 썼던 것들을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보자고 했다. 약간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나는 메시지를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소리 내어 읽으니 사실 '가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라기보다는, 내가 느끼는 솔직한 심경에 가까웠다. 상담 선생님은 나의 낭독이 끝나자, 신중하게 나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건넸다.


"가위가 하는 말이랑, ㅇㅇ씨가 하는 말을 읽어보시니까 어때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잘 와닿지 않아요."

"그렇군요. 제가 볼 땐 아직도 ㅇㅇ씨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있는 것 같아요."


분노? 분노는 길길이 날뛰고 화를 내고 뭐 그런 게 아닌가? 딱 지금 생각나기로는 나는 그렇지는 않은 듯했다. 나는 상담 선생님의 말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상담 선생님은 아직 내 맘 속의 분노가 해결되지 못한 것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 시간에는 이 분노를 조금 더 잘 다루고 화해하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보자고 했다. 


어느새 약속된 1시간이 끝이 났다. 상담실을 빠져나오는 나는 내 안의 분노가 무엇인지 알아야만 했다. 그건 다음 상담 시간까지 나에게 주어진 숙제와도 같았다.


※ 상담 선생님의 말은 기억에 의한 것으로 다소 정확하지 않음을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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