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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Jun 27. 2023

나의 해고 일지
- 명상 클래스

나를 대하는 모습을 깨닫다

감독은 회의주의자였다. 염세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회의를 통해 다양한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회의를 열어 대본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 회의 시간이 되면 주로 감독이 리드했다. 그리고 의견을 구하면 조연출, 연출부, 제작부 등이 모여 각자의 생각을 던졌다. 


또 다른 조연출은 나이는 나보다 어렸지만 솔직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의견을 과감하게 던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조연출의 의견은 자주 받아들여졌고, 사람들도 조연출의 의견을 잘 따르기도 했다. 그런 조연출의 모습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일이 '존재 증명의 수단이자 목적'이라는 걸 깨닫고 나니, 그동안 왜 내가 부단히도 일에 매달렸는지 조금은 알 것만도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나의 일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흠결을 내려고 하거나, 혹은 내 일에 대해서 누군가 부정적인 피드백만 줘도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나는 이유도 어렴풋이 깨달았다. "일 = 나"라는 등식이 내 안에 자리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나라는 존재를 끊임없이 '존재하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는 내가 사랑하고, 나 자체인 이 일을 계속해서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이 일이 조금이라도 끊길까 두려웠고, 그 끊어진 일이 나를 더 이상 대변하지 못할까 무서웠다. 일이 끊어지려면 사람들의 평가와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남의 의견을 반대하기가 심히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행여 그 사람이 나를 안 좋게 볼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나를 간신히 잡아내고 있어야만이 나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내 안에서는, 나 자신보다 '일'의 비중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이 무렵 나는 SNS를 통해 무작위 하게 뜨는 광고를 공격적으로 탐색하고 있었다. 자기 계발이나 혹은 마음 치료 등 관련된 것이라면, 설령 내가 정 필요로 하는 정보가 아닐 지라도 닥치는 대로 일단 클릭하고 봤다. 또 그렇게 뜨는 광고들은 또 다른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며 내게 새로운 정보(광고)를 끊임없이 배달했다. 그러던 차, 인스타 스토리 광고를 통해 명상 원데이 클래스 광고가 뜬 걸 발견했다. 때마침 주제 역시도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변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고통스러웠던 나는 주저 없이 원데이 클래스 신청을 했다.


명상 클래스 당일. 클래스가 열리는 장소는 경리단길에서도 한참을 올라가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예전에 친구들과 자주 오던 경리단길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가 한 번 불고 가서 그런지 경리단길은 예전처럼 활기차지 않았다. 오히려 잠잠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골목 구석구석 퍼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골목과 동네 역시 변하고 있었다.


명상 클래스는 주택가 골목길 사이에 있는 어느 2층에 위치했다. 내가 도착하니 강사님만 수강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프라이빗한 공간이라 그런지 몰라도 공간 자체는 아담했고 아늑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2명의 수강생들이 더 왔다. 한 명은 나보다 어린 여성이었고, 한 명은 나보다 나이가 있는 여성이었다. 아마도 내가 나이로 치면 그 사이에 있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수강생들이 3명밖에 없어서 좋기도 했고, 한편으론 부담도 되긴 했다.


강사님은 평소 내가 보던 게 아닌 색다른 싱잉 볼을 꺼내며 명상 클래스를 지도해나갔다. 강사님은 안정된 톤의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강사님의 지도 아래 약 5분 간의 명상을 하고 나면, 그 후엔 수강생들끼리 자유롭게 명상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있는 여성분은 본인이 '완벽주의자'라고 했다. 완벽해야만 하는 자신의 성격을 최근에서야 깨달았고, 이를 자신의 자녀한테도 어느 순간 강요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런 부분을 내려놓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여성 분은 회사와의 관계가 힘들다고 했다. 명상을 꾸준히 하려고 하면서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긴 하지만, 상사가 자신의 성과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다며 그런 부분에서 자신의 일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나도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떠한 비난이나 비판 없이 그저 담담하게 들어주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주는 강사님의 태도에 사뭇 마음이 편안해졌다. 


명상 클래스에서도 마지막 명상을 하기 위해 다시 눈을 감으라고 했다. 최근에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물론, 나 자신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 왔는지 명상을 하며 되돌아보자고 했다. 싱잉 볼이 울리고 강사님은 명상을 이끌었다. 그러는 동안 내 머릿 속에는 최근 내가 일하면서 일상적으로 겪었던 상황들이 파노라마처럼 하나둘씩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회의를 할 때, 보고를 할 때, 다른 사람들과 통화를 할 때, 현장에 있을 때 등등 다양한 상황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면서 한 가지 공통된 패턴을 읽어낼 수 있었는데, 나는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를 막 대하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 의견이 묵살당해도, 혹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못나게 볼 때도 (실제로 못나게 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 우선 내가 느끼기엔-), 나는 그들 편에 서서 나를 같이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넌 그래도 괜찮잖아. (넌 이런 대접받고도 괜찮은 거잖아.)'

'그래도 난 괜찮아. (저들은 저래도 안 괜찮지만)'


나는 나를 소중하게 대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 패턴을 깨닫자 명상 도중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명상 이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이 패턴에 대해서 얘기하며 목이 잠기고 말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진 건, 아마도 그동안 나에 대한 미안함이 컸으리라. 왜 그렇게까지 나를 채찍질해가면서 데리고 왔는지 나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훗날 나는 내 자존감이 꽤 많이 떨어져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명상 클래스를 끝내고 수강생들끼리 간단한 커피 타임을 갖자고 했다. 일과가 끝나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한편으론 굳이 그렇게 틀에 맞춰 남을 밀어낼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커피 타임 속에서 우리는 아까 명상 클래스에서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조금 더 풀어놓았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보다 이렇게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자신의 속 얘기를 더 쉽게 할 때가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를 위로 해고 응원해주었다. 그들의 위로와 응원이 고마워, 그리고 그간 마음고생한 내가 가여워 나는 또 한 번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해고당한 지 3주가 지났는데 나는 내가 꽤 괜찮아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여태껏 (올해뿐만 아니라 그전부터) 일하면서 쌓여온 상처들이 이제야 겉 피부를 드러내고 그 상처의 속살이 드러내지는 듯했다. 나와의 관계부터 새로 맺을 필요가 있었다. 아니, 새로 시작하려면 외부에서 그 관계를 찾는 게 아니라 나와의 관계를 다시 찾아야만 했다.


다음 주에는 두 번째 상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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