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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Jan 27. 2018

묻지 마세요, 결혼의 즐거움을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아기는 언제 낳으려고?"

"결혼하니 뭐가 좋아?"

"결혼, 꼭 해야 할까?"


아직 주위에 미혼 친구들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좀 더 솔직한 고백은 "결혼 안 해도 괜찮지 않을까?"인 것 같습니다. 흔히 저희 세대를 N 포 세대라고 부르더라고요.


결혼, 아기, 집. 연애, 앞으로는 또 무엇까지 포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즐거움을 오롯이 '저'에게 찾아야 하는 시대인 것만 같습니다. 함께 하기엔 돈도 여유도 부족하니까요. 그래서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이 잘 되고 '혼밥' '혼술' 등 1인 가구가 급증하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사실 이런 것들을 보면 결혼, 그까짓 껏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 생각합니다. 결혼 안 해도 잘 살 놈들은 해도 잘 살고, 결혼해도 못 살 놈들은 안 해도 못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모든 건 '나'로부터 시작되는 질문입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결혼해서 자신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조금은 그려볼 수 있습니다.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면 결혼하고 나서도 배우자랑 밥도 잘 먹고, 배우자랑 잠도 잘 자고, 배우자가 없어도 잘 놀 수 있을지도요.



결혼은 달력을 한 장 씩 넘기는 것처럼 지금이고 내일인 날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친구들에게 "결혼하니까 좋아?"라는 질문을 들으면 꼭 이렇게 대답합니다.


"응 좋아, 그런데 다음 세상에선 결혼 안 하고 혼자 살 거야."

하하

이게 웬 말이냐고요?


사실 그렇더라고요. 결혼해서 참 좋은 점이 많은데 약간은 삐걱거리는 몇 가지의 단점이 결혼 생활 전체를 부정시키기도 한답니다. 남편이 요리도 잘 해주고, 집안일도 저보다 잘 하는데 왜 술 한 번 크게 마시면 그게 참 못땅한지. 다음 세상에는 그냥 혼자 편하게 살고 싶단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겁니다.

참 웃기지요?


삶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100가지 칭찬을 들어도 한 가지 비난을 들으면 그것만 그렇게 가슴 깊숙이 남는 것처럼, 결혼을 해서 참 좋은 일들이 많은데 그 소소하고 즐거운 배경 속에 한 가지 싫은 것이 눈에 띄면 "왜 결혼했을까"라는 말이 가슴에 남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이런 게 결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거창한 즐거움과 싫음이 뒤엉켜 살기보다는 거대한 그저 그런 것들이 소소한 즐거움에 동화되어 그럭저럭 살게 되는 그런 것 말입니다.


이는 아마 남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겠죠?

빠듯한 외벌이가 힘들어 확 그만두고 싶어도, 계란 프라이 하나만 두고서라도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아내의 존재 때문에 또 그럭저럭 힘을 내서 열심히 출근을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한 가지 힘든 일이 있어도 또 다른 한 가지 평범한 일로 그렇게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리는 결혼생활. 남들이 보기엔 참 팍팍할지 모른다 싶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없으니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같이 소파에 앉아 매월 생활비를 정리하기도 하고, 매주 집안 청소를 같이 하기도 하고, 유난히 힘겨웠던 날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맥주캔을 따는 어느 밤의 희미한 일상은 결혼생활이라는 거대한 삶을 지탱해 주는 견고한 것들입니다.

결국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비로소 우리의 삶이 완성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유독 결혼 생활 중 힘든 일이 있다면 주문처럼 외우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


모 프로그램에서 서장훈 씨가 즐겨 쓰던 유행어로 당시에는 몰랐으나 언제부턴가 답답하고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일이 있을 때, 이 말을 되뇌면 아무렇지 않게 어렵던 그 모든 것들이 먼지처럼 훌훌 날아가 버리더라고요


그래, 내가 이렇게 고민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될 거면 되고, 안 될 거면 뭘 해도 안 되겠지.

인생은 다 이런 거겠지.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일들 때문에 혼자 삭히지 말자며 가벼울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가볍게 만드는 주문 하나씩을 마음속에 품고 결혼 생활을 지켜나간다면 이 안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재밌을 수 있습니다.


결혼은 참으로 복잡하고 유기체적인 일들입니다. 하나씩 둘이 만나 여럿으로 늘어나고 그것들이 다시 축소와 변형을 일으키며 다양하고 촘촘한 장면들을 만들어 냅니다.


매일 좋을 수 없고 또 항상 싫을 수 없는 것이 결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나만 이런 게 아니라 모두의 결혼생활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거지요. 경제적 여유가 없어 결혼을 망설이거나 이 사람이 내 짝인지 확신이 없어 결혼이 무섭더라도 일단 새로운 가정이라는 출발선에 서서 '땅' 소리를 들으면 뛰어 나가야 합니다. 옆에서 들리는 박수 소리와 응원 소리를 배경 삼아 나란히, 그리고 또 각자의 몫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뿐입니다.



우엉찻물을 우리는 것은 결혼 생활의 배경 중 하나입니다. 



"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이른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나는 옷을 갈아입고 불을 지피고 찻물을 끓인 다음, 닭장으로 나가 닭들에게 모이와 물을 주고, 들어와 아침 식사를 차리고, 일꾼들을 식탁으로 불러모읍니다. 그때쯤 남자들이 우유를 짜고, 말들을 빗질하고 먹여서 일 시킬 준비를 마칩니다. 커피와 팬케이크가 준비되고 모두 아침 식사를 합니다. 그런 다음 대여섯 시간을 내리 밭에 나가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지요. 


집에서 든든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해질 무렵까지 다시 일을 합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하고 우유를 짭니다. 그러고 나면 어떤 집에서는 성경 한 장을 낭독하고 기도를 하고,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잠자리에 들지요.


규칙적인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



내가 주체인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일은 낯선 곳을 걷는 기분입니다. 평등한 듯, 불평등한 듯한 구조의 부부 관계를 평생 부수고 고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가치가 만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내고 창조해 가는 과정이 싫지는 않습니다. 월급을 모으고 쪼개며, 집안일을 서로 나누고, 고지서를 보며 불필요한 전깃불을 끄는 일상이 다져지는 이곳은 점점 견고 해지며 아늑해집니다.


결혼이라는 게 너무 별것 없는 것 아니냐고요?

규칙적인 일상의 반복일뿐입니다. 


정말 별 것 없는 것들로 꽉 채워지는 게 결혼이고 그것들만큼 소중한 것이 없는 게 또 결혼인 것 같습니다. 매일 털어도 또 쌓이는 화장대 위 먼지처럼 결혼도 쓸고 닦고를 반복하며 사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렇게 쓸고, 또 닦고 살다 보면 부부는 어느새 먼 길을 만들어 갈지도 모르고요.


그렇게 함께 있고 서로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묻어가는 것.

그저 오늘로서의 부부 역할에 충실하기로 합니다. 

내일이 오면 내일로서의 부부로 또 열심히 살면 되는 것이고요.


그러니 묻지 말아주세요, 결혼의 즐거움을.

우린 그냥 서로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가 주인공도 되었다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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