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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Mar 24. 2020

회사 가기 싫을 때, 슬며시 꺼내 보는 것

가슴에 품은 건 사직서만이 아니에요.

9 to 6. 직장인에겐 암호 같은 이 시간. 하루의 1/3을, 혹은 더욱 긴 시간을 공들여 보낼 회사의 시간은 언제나 지겨움과 견딜만함이 반복된다.


회사에 가기 싫은 이유는 참 많다. 일이 재미없어서, 동료가 짜증 나서, 아니면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서 등등. 저마다의 이유로 퇴사를 고민하고 계획을 세우지만 결국 사직서를 내지 못하는 이유도 성취감이 있어서, 동료들이 좋아서,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월급을 뿌리칠 수 없어서, 건강보험의 소중함 등의 사사로운 것들이 버티고 있다.


한때 서점가에서 유행했던 책의 주제는 '퇴사'이고 지금도 이 두 글자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현실과 로망을 적절히 섞어 놓은 듯한 퇴사 후 프리랜서의 생활. 하고 싶은 걸 시작해보겠다는 결심과 실천이 그대로 반영되는 단어들. 이 단어를 가슴에 품고 실천한 자는 용기 있는 자들. 여기서 말하는 용기란 퇴사 후의 삶을 거미줄처럼 촘촘히 계획 세워 놓은 사람들이며, 그리고 하나씩 이루는 성실한 사람들이 속하는 세계다. 나처럼 무턱대고 회사가 싫어 새로운 생활을 꿈꾸며 잠시 떠났던 사람은 다시 회사에 더 가까운 미래가 있다.


서른 다섯 정도가 되면 말로는 ‘회사 다니기 싫다’를 달고 다녀도 마음 한쪽엔 ‘어떻게든 좀 더 견뎌보겠다’는 의지가 있다. 생선을 낚기 위해 온갖 미끼를 끌어다 쓰는 베테랑 낚시꾼처럼 한 번씩 세게 다가오는 퇴사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나는 스스로에게 미끼를 던진다. 조금이라도 더 견뎌보려고 발악하는 마음이다.


내가 써본 몇몇 가지의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소비'다. 뭘 사든, 사는 것 자체로의 기쁨이 있고, 사기 전부터 느껴지는 설레는 기분이 좋다. 봄이 가까울수록 색감이 고운 옷부터 시작해 블링한 액세서리까지 장바구니에 담을 물건은 너무 많다. 특히 시계와 반지는 나의 최애 소비들로 이번 봄엔 은반지에 유독 끌려 손가락에 달달하게 끼고 맘껏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출근을 한다. 어차피 지겨운 엑셀이나 PPT 파일이나 만들겠지만 나만 아는 내 손가락의 블링블링함은 이 자체만으로 회사를 다니는 작은 기쁨이다. 지금도 이 초고를 쓰고 나면 팔찌 쇼핑을 할 생각에 기꺼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나란 인간..


하지만 이런 소비도 어쩌다 한 번 할 때 출근 의지력을 상승시킬 뿐 매우 잦으면 내게 남은 건 카드 빚이나 텅장이지 회사에 갈 구체적인 이유가 되진 못한다. 그래서 이쯤에서 다른 기분이 필요한데 역시 '사람'이다. 내 경우는 소설 속 인물에 반해 그의 소설 속 삶에서 내 현실을 빗대 의지하는 편으로 효과가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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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적 가출 이후 변변한 직업 하나 없이 성매매를 할 남자를 삐끼 하기 위해 SNS에 온갖 야한 사진과 문구를 업로드하는 사람이다. 이 생활을 벗어던지고 싶지만 거구의 몸으로 배운 것 없이 날생활을 해왔던 전적은 현실을 벗어날 그 어떤 기회도 닿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기형도 시인의 봇이 자꾸만 눈에 띈다.


"읽을 수 있는 글이지만 내가 속한 세계의 언어가 아니었다. 포르노를 처음 접하고 호기심으로 꽉 차 속절없이 빠져들던 때처럼 거기 적힌 글들을 홀린 듯이 읽어 내려갔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내용도 있고 알듯 말듯해서 몇 번씩 읽어야 하는 글도 있었다. 그런 문장이 왜 나를 건드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나에게도 그만한 권리는 있지 않은가'라는 문장을 봤을 때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고 내 안에서 들끓던 말이었다."

(소설,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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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성매매 삐끼 생활에서 유일하게 숨 쉴 만한 시간이라면 기형도 봇의 글을 찬찬히 읽는 때인 주인공 ‘나’는 문장을 하나둘씩 모아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같은 문장들을 반복해서 읽으며 기도문처럼 중얼거렸다. 그에게 글은 곧 현실로부터의 휴식이자 도피였고 간절히 피워낸 희망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회사가 지겹고 일하는 게 지칠 때면 이따금씩 이 소설의 주인공을 생각해 냈다. 마음에서 야릇하게 피워 오르는 퇴사의 단어를 덮고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할 때, 주인공이 가슴속에서 몰래 꺼내 시를 읽는 장면이 무척 절절했다. 가진 게 없어 시에 의지하는 그가 나 같아서였는지, 아니면 저렇게라도 삶의 한 단면을 기대하고 기꺼이 애정 하며 사는 모습이 애처로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구절을 읽고 나서 출근하는 내 마음 가짐은 약간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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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 내가 회사 생활 십오 년 하면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었거든요. 루바 공연 건 때문에 특진이 취소되고, 팀 옮겨지고, 강남에서 판교로 짐 싸서 올 때도 눈물이 안 났어요. 그런데 그 포인트를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너무 막막해서. 굴욕감에 침잠된 채로 밤을 지새웠고, 이미 나라는 사람은 없어져버린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되었다고. 그런데도 어김없이 날은 밝았고 여전히 자신이 세계 속에 존재하며 출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해야 했다.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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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의 심기를 건드려 월급 모두를 회사 포인트로 받은 ID 거북이 알은 우동마켓에서 월급으로 받은 포인트로 새 물건을 사서 다시 중고로 파는 직장인이다. 소설의 제목인 일의 슬픔이 왠지 모르게 유머러스하게도 보이는 이 거북이 알의 행동은 한동안 회사를 다니는 나의 원동력이었다. 나라면 더럽고 치사해서 앞뒤 안 재고 그만두었을 상황임에도 그녀는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면서 월급을 포인트에서 현금으로 바꾸는 행동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 뻐대는 자존심을 가까스로 누르고 물건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일은 영혼마저 박박 갉아먹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어쨌든 생활을 이어 나갔다는 점과 눈물 쏟고 자괴감에 빠진 밤은 있었어도 여전히 출근해야 하는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자기 방어’였다고 생각한다.


막막한 벽이 우리를 가로막을 때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랄까.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난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함이고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나의 노동을 바치는 것이므로. 자존심을 접고 생활을 지키는 일은 ‘일의 슬픔’이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보자면 옳은 일일 것이다.


한동안 나의 출근 메이트였던 사람들. 한 명은 현실에서 한 줄의 기대를, 다른 한 명은 현실에서 현실을 더욱 직시하게 하는 점에서 내가 함부로 회사를 그만둘 수 없는 처지임을 고백하게 만든다. 누구는 변하고 싶어서, 또 다른 누구는 지키고 싶어서 작은 기회와 현실을 뒤로 두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뭐 대단한 일을 시도해야만 용기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이어가려는 노력도 굉장히 대단한 일이지.


결국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쓰는 용기 있는 자들이 오늘도 나의 사표를 막았다. 자, 출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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