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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형 Mar 07. 2019

제주, 안녕!

제주 여행, 셋째 날, 마무리

제주 여행, 셋째 날

  1. 다시 한번 제주의 아침이

  

  제주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나는 조금 일찍 일어나 왠지 옆에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잠이 든 그녀를 가만가만 토닥이며 창 밖이 밝아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파란빛이 지배하던 창 밖으로 점점 노란빛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야속하지만 아름다운 아침이 오는 광경을 지켜보며 앞으로 평생 우리의 첫 번째 제주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잠든 그녀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훌쩍 코를 들이켰다.


  

  2. 안녕하세요, 드라이버입니다

  

  2박 3일의 제주 여행 동안 얻은 가시적인 성과가 있다면 운전이었다. 렌터카를 찾을 때 시동키가 어딨는지도 헤맸던 생초보 운전자는 이제 제법 엑셀을 자신 있게 밟을 수 있는 새내기 드라이버가 되었다. 아직 붉은 벼슬을 치켜든 수탉이 되진 못했지만 병아리 티는 벗은 청년 닭이 된 것이다.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꼬꼬댁 거리며 운전대도 여유 있게 돌릴 줄 알게 된 청년 닭.

  

  초보 운전자로서 유턴에 고속 운전, 야간 운전에 평행주차까지 치러낸 나는 오늘 아침, 마지막 관문이었던 주유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주유소 앞에서 쭈뼛거리며 "3만 원이요."라고 외쳤던 이 날을 잊지 못하리. 지붕 위에 올라 아침을 깨우는 수탉이 되어서도 제주에서의 운전을 잊지 않겠다고 어디서나 안전운전, 방어 운전하겠노라 조용히 다짐했다.


 

  3. 숲의 향연, 사려니 숲길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을 먹고 나선 곳은 그녀가 여행 전 첫 손에 꼽았던 행선지, 사려니 숲길이었다. 사려니 숲길은 불길하기까지 한 선명한 푸른빛으로 녹음을 강렬하게 발산했다. 수령이 몇십 년, 어쩌면 몇 백 년은 되었을 삼나무들이 하늘에 닿을 듯 서 있었고 잔가지들은 땅을 굽어보듯 우거져 있었다. 

  

  주차장 입구에 걸린 지도를 찬찬히 들여다본 후 그녀의 손을 잡고 숲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무섭도록 짙은 숲의 공기와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숲의 호흡이 서늘하게 살갗으로 와 닿았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같이 숨 쉬고 있을 수억, 수십억 마리의 작은 생명체들도 함께 느껴졌다. 숨을 쉴 때마다 입으로 날아드는 날파리들이 아니더라도 이 안에 가득 찬 생명과 삶의 윤회가 걸음걸음마다 느껴졌다.

  

  우리는 조용히 숲의 호흡을 느끼면서 그리고 우글거리는 생명의 발산을 실감하면서 계속 함께 걸었다. 

  


  4. 제주에서의 마지막 바다

  

  용담이호 해변은 제주에서의 마지막 행선지였다. 사려니 숲길에서 북쪽으로 차를 돌리면 금방 닿을 수 있는 이 곳은 제주의 북쪽 바다였다. 이호테우, 함덕, 월정리 해변과는 또 다른 제주의 북쪽 바다는 저 너머 한반도의 모습을 희미하게 간직한 채 까만색으로 출렁거렸다. 이제 막 제주에 도착한 듯한 설레는 표정의 사람들과 곧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어딘지 쓸쓸한 표정의 사람들이 뒤섞여 바다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고 있었다.

  

  이로써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모두 네 곳의 바다를 보았다. 하나하나 다른 색깔의 바다와 차별적인 공기, 그리고 뚜렷이 구별되는 독특한 분위기들을 눈에 차곡차곡 담고 기억했다.


  

  5. 안녕, 제주!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사흘 전 제주에 내렸던 그곳에서 이제는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담담했다. 물론 다음 날부터 다시 서울과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오금이 저릴 만큼 싫었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무너질 만큼은 아니었다. 왜 일까? 답은 내 손에 있었다. 지금 내 오른손을 꼭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이. 제주는 이제 잠시 (잠시라고 하자) 안녕이지만, 내가 잡은 이 손과의 날들은 앞으로도 계속일 테니 아쉽지가 않았다. 그녀와 손을 맞잡는 동안 나는 언제라도 제주에서처럼 행복할 테니까.  

  

  비행기가 이륙했다. 제주도가 순식간에 작아지더니 구름 밑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난기류에 몇 번 휘청이는가 싶더니 금방 서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의 첫 번째 제주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생각보다 빠르게 두 번째 제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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