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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형 Mar 08. 2019

'봄' - 「봄, 금방 왔다가 떠나갈 당신에게」

봄을 맞이한 회사원은 그만 초조해졌다

  회사원과 계절을 일대일로 대응시켜보자. 뭐가 가장 안 어울릴까? 내 생각엔 봄이다. 열정으로 가득한 여름, 낭만이 가득한 가을, 호빵의 김이 모락모락 따뜻한 겨울도 안 어울리기는 매한가지이지만, 단연 으뜸은 봄이다. 겨우내 얼었던 산천초목이 뿌드드한 몸을 일으키고 기지개를 펴는 봄. 회사원과는 정 반대의 심상이다. 우리에게 생명이 약동하나요? 병아리처럼 노랗고 새싹처럼 여린 연두색의 색감이 가당키나 합니까? 일주일 내내 이어지는 야근으로 피부가 버석거리는데요.

  

  새 학기의 기대감,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 두려움이 조금 섞인 호기심 어린 상상을 하던 봄도 이미 먼 이야기다. 난 내 나이에서 열 살을 빼도 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 처음도 아닌데 매번 절망한다. 우리는 봄이 와도 그닥인 회사원이다. 회사원은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 봄에는 미세먼지까지 더해졌다. 저 멀리 대륙에서 너풀너풀 날아온 중금속 안개가 요즘 대한민국의 봄의 정취다. 아아, 흐뭇해라.




  봄, 금방 왔다가 떠나갈 당신에게

  

  날이 풀렸다. 미세먼지가 가셨다는 이야기다. 하늘은 비로소 봄의 파란빛을 되찾고 있었다. 관성처럼 미세먼지 마스크를 쓰고 나왔지만 살짝 들이마신 공기가 상쾌했다. 무려 6일 만이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이미 꽤 가벼워졌다. 두꺼운 모직 코트와 정강이를 가득 덮는 오리털 롱 패딩은 사라지고 가벼운 트렌치코트와 면 재킷이 길 위로 올라왔다. 아저씨들은 등산용 바람막이를 입고 어정어정 팔자걸음을 걸었고 유모차를 끄는 아이 엄마들은 모처럼의 화창한 날씨에 들떠서 선글라스를 쓱 걸쳤다. 조금 이르게 분홍색 원피스로 멋을 낸 여자는 아직 겨울의 그림자가 남은 찬 바람에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그녀 얼굴에 후회의 빛은 보이지 않았다.

  


  먼지에 대한 우울과 근심을 벗어던진 홀가분한 표정들을 보며 길을 걸었다. 모처럼 거치는 것 없이 봄 햇살을 바로 받은 가로수들이 말간 우윳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앙상한 가지만 남아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나무는 따뜻한 햇살 아래 찌뿌둥한 몸을 쭉 폈다. 나무 구석구석에서 봄의 예감이, 개화의 징조가 드러났다. 조만간 봄비가 내리면 온몸으로 비를 빨아들이곤 활짝 피워낼 것이다. 수천, 수만 년을 반복해왔을 봄의 윤회가 출근길 가로수에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짧은 봄을 직감했다. 그들의 홀가분한 표정과 나의 가벼운 발걸음 위에 드리워진 초조함은 그래서였다. 안 그래도 짧은 봄은 이제 대륙에서 몰려올 황사로 더욱 단명할 운명이었다. 꽃은 피자마자 뿌연 하늘 밑에 지고 한강 잔디밭 위에 펼친 피크닉 돗자리엔 금세 먼지가 누렇게 내려앉을 것임을 우린 이미 예감했다. 무거운 외투를 벗어던지기가 무섭게 한 겹의 짧은 소매 티로 갈아입어야 할 것임을, 꽃 피는 동산을 미처 다 즐기기도 전에 태양 내리쬐는 바다가 손짓하리란 것을,

  

  봄의 절명에 대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을 것임을.

  


  그러니 우리는 더욱 부지런히 애타는 마음으로 봄을 즐겨야 한다. 몇 년째 차트로 돌아오고 있는 봄의 캐럴이 들려올 때, 겨우내 얼은 땅이 녹아 따뜻한 흙 내음이 풍겨올 때에, 그녀의 볼이 싱그러움을 되찾고 그녀가 짓는 웃음이 봄꽃처럼 화사해질 때에.

  

  우리는 부디 짧은 봄을 놓치지 말고 마음껏 즐겨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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