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면서 왜 이렇게 넓고 방이 여러 개인 집에 살아? 몰래 에어비앤비하는 거지?"
하.. 또 시작이다. 계약할 땐 푼수 같지만 따듯해 보였던 집주인 할머니는 이사 직전에 돌변했다. 아니 나 혼자 좀 넉넉한 공간에서 살아보겠다는데 그게 잘못이라도 된다는 거야? 그런데 사실 의도는 다르지만 혼자 사는 게 맞냐는 질문은 여러 번 들어와서 익숙하긴 했다.
(집주인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할 말이 많기 때문에 다음에 각 잡고 적어 보겠다.)
내 인생은 미니멀과는 거리가 멀고, 택배 상자와는 가까운 편이다. 미니멀라이프가 좋다는 건 익히 들어왔지만 그게 말처럼 쉽기만 하면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었겠지. 일단 미니멀라이프 생활법에 대한 책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그렇게 살고 싶은데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변명 같지만 취미 부자이기도 해서 일단 필요한 게 많다. 옷만 해도, 운동할 때 입는 옷도 있어야 하고 출근할 때 입는 옷도 있어야 하고 여행 갈 땐 또 편하고 화사한 옷이 있어야지. 겨울에는 보드를 타기도 하니까 보드복도 한 벌 있다(다행히 보드는 사지 않았다.) 그리고 난 재봉틀도 하니까 재봉틀이랑 원단도 있어야 하고 요리도 거의 매일 하니까 그릇도 종류별로 커트러리도 종류별로 있어야 하고.
이전 집에 살 때 미니멀이 좋다기에 책도 여러 권 읽었다. 그러다 감명을 받아 '1일 1 버리기' 운동도 시도했다. 그런데 하나를 버릴 땐 작은 걸 버리고 큰걸 살 땐 거침없이 질러버리곤 했다. 안 버리고 사는 것보단 낫다고 정신승리하면서 지냈더니 짐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옷도 적을수록 좋다는 거 안다. 자주 입는 옷은 많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런데 난 맨날 같은 옷을 을 입으면 지루한데 어쩌나? 1년에 한 번 입는 옷이라도 매년 입으면 필요한 옷인 거 아닌가? 어째 나는 비울 수록 삶이 불안해졌다. '행복한 게 최고지, 뭐. 난 그냥 이렇게 살아야지.'
하여튼 이번에 구옥으로 이사를 하려다 보니 걸리는 게 많았다. 구옥이 문제라기보단 엘리베이터도 없고 공동현관 계단이 좁은 게 문제였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은 원룸에서 원룸, 원룸에서 아파트로의 이사만 해봐서 그동안은 잘 몰랐던 부분이다. 사실 원룸 이사를 할 때도 용달 기사님께 잔소리를 여러 번 들었던 게 뒤늦게 떠올랐다. 이사 견적을 받기 위해 실사를 받던 날, "수납을 정말 잘하시네요."라는 아름다운 말로 내 옷방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시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금액의 견적서를 건네는 실장님을 보며 내 짐이 많긴 많다는 걸 또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그다음 주. 무게를 이기지 못한 행거가 무너졌다. 하, 곧 이삿짐 쌀 텐데 조금만 버텨 보지. 괜히 저렴한 걸 샀다는 생각과 안 그래도 집 청소하기 싫은 이사 준비 기간에 일이 늘어났다는 생각에 짜증이 몰려왔다. 이삿날까지 못 본 척하고 싶었는데 당장 내일 입고 출근할 옷이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옷을 다시 정리했다. 아마 조금은 울었던가. 이날 화가 나서 옷을 좀 많이 버렸던 것 같긴 한데, 이사 전 짐 정리를 위한 좋은 기회였다고 애써 위로하며.
예상했겠지만 그렇게 한번 옷방을 뒤집는 정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옷은 차고 넘치게 많았다. 방 2개짜리 아파트에서 방 3개짜리의 빌라로, 옵션이라곤 없는 집에서 역시 옵션이 없는 집으로의 이사라, 정말 모든 걸 다 옮겨야 했다. 가전이랑 가스레인지까지 모두 들고 가야 하니 기본 5~6T의 짐차가 오는 이사. 잔뜩 쌓인 이삿짐을 나르며 2월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는 기사님들을 보고 있자니 죄책감이 몰려왔다. 기사님들도 짐을 나르며 나에게 물으셨다. "혼자 사는 거 맞아요?"
어찌 됐건 이사는 무사히 마쳤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짐 정리도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짐 정리를 할 때만 해도 끊어질 것 같은 허리와 떨어질 것 같은 팔을 붙잡으며 이번엔 정말 짐을 줄이리라 다짐했었는데. 어느새 아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사실 언제 그런 다짐을 했냐는 듯 오늘 퇴근길에도 문 앞에 택배 상자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당장 출근할 때 입을 만한 마땅한 옷이 없고 지금은 시즌오프 세일 기간이라는데 별 수 있나?
어쩌면 언젠가는 비워낼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더 쌓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나도 뭐가 답인 지 잘 모르겠다. 에라, 그냥 생긴 대로 살아보련다. 지구에 미안하지 않을 정도만, 조금 숙고하는 쇼핑을 해가면서. 다음 이사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을 테니까 조금은 더 흔들려도 괜찮지 않을까?
#뚝딱대는구옥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