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은 나의 힘

by 이냐니뇨

내 장점은 뭐든 끝까지 해낸다는 거고, 내 단점은 뭐든 끝까지 해버린다는 거다. 하면 된다. 난 될 때까지 하니까.


집을 구하고 계약서 특약사항까지 넣어가며 집수리에 대한 허락을 받아낸 나는 이사 전에 집을 다 고쳐놓겠다는 무모한 결심을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비용적인 이슈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남의 집수리를 인테리어 사무실을 끼고 할 건 아니었으니까..) 도배도 내가, 바닥 장판이랑 데코타일 시공도 내가, 페인트칠도 당연히 내가. 그 순간 이 집은 공사장이 되었고, 나는 내 몸을 갈아 넣는 시공업자가 되었다.



바닥 시공부터 시작했다. 장판은 아주 무거웠고 데코타일은 더 무거웠다. 괜히 넓은 집을 구했나,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후회가 됐다. 집이 넓고 방이 많으니 할 일도 많았다. 그 커다란 장판을 어깨에 둘러메고 낑낑거리며 계단을 올라 유튜브에서 봤던 것처럼 바닥 사이즈에 맞춰 잘라 두고 바닥에 깔 준비를 했다. 하, 내가 이 집을 얕봤다.


대충 깔린 듯한 우중충한 장판 아래에는 TV에서나 봤던 것 같은 샛노란 옛날 장판이 깔려 있었다. 아마 이 집을 처음 지을 때 깔았을 것 같았다. 기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해보자, 싶어 노란 장판도 걷어냈는데 웬 초배지 같은 게 바닥에 깔려 있다. 그 덕에 종이에 습기가 배어 그 부분만 시커멓게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모른 척 덮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곰팡이 핀 안 방에 살 순 없지. 결국 이걸 다 긁어내고 바닥 시공을 시작해야 했다. 일이 늘었다.

** 초배지 : 벽지가 잘 붙으라고 벽 위에 1차로 바르는 한지 같은 것.


데코타일 시공은 또 다른 고난이었다. 장판 위에 덧붙이는 데코타일이 아니라 바닥에 바로 까는, 접착식 데코타일을 사다 깔았는데 그러다 보니 두꺼운 걸로 깔아야 했다. 들기도 힘든데 이걸 자르기는 더 힘들다. 분명 바닥이랑 벽은 직선만 있는 게 아니었나? 놀랍도록 삐뚤빼뚤했다(옛날에는 기술이 덜 발달해서 지금처럼 네모 반듯한 집을 짓지는 못했다고 한다.) 문틀은 또 왜 저렇게 생긴 건지. 그냥 다 네모 반듯하게 아무 장식도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작업용 칼을 들고 모양을 맞추느라 무릎은 멍들고, 손은 굳어갔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완벽하게 모양을 맞추긴 어려웠다. 심지어 바닥이 평평하지도 않더라. 은근한 곡선을 가진 바닥 덕분에 아무리 애써도 두껍고 딱딱한 데코타일은 들뜨는 곳이 생겼다. 애매하게 안 맞으면 결국 발바닥으로 꾹꾹 눌러 해결했다. 그렇게 완성된 바닥을 보면 지금은 몹시 멀쩡하지만, 사실 그 아래엔 내 무릎의 희생이 켜켜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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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는 그나마 수월한 듯했다. 아니다, 건방졌다. 이 말 취소, 퉤퉤. 앞에서 말했듯 구옥의 벽은 반듯하지 않다. 분명 수평을 맞춰 붙이기 시작했는데 삐뚤어져서 빈틈이 생긴다. 이럴 땐 풀이 마르기 전에 얼른 떼고 다시 붙인 뒤, 보강용 풀을 발라 마감을 해줘야 한다. 허리가 끊어지고 팔이 빠질 것 같지만 놓치면 벽지가 구겨지거나 찢어질까 봐 마음 놓고 기지개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한 장 한 장 발라 나갔다.


빌어먹을 중력 덕분에 그나마 천장에는 한 번에 붙지도 않는다. 도저히 혼자서는 안될 것 같아 친구가 도와주러 와서 천장 도배할 때 벽지 한쪽을 잡아줬는데, 우린 둘 다 키가 160cm가 채 되지 않는다. 내 척추를 있는 힘껏 늘려 겨우 닿은 천장에 도배를 하려니 이건 그냥 벌을 서는 기분이었다. 친구가 도와주러 와서 너무 고맙긴 했는데, 일을 하다 보니 말을 할 기운도 없었다. 하루 종일 있었는데 우리가 집에서 나눈 이야기는 고작 "왔어?", "배고프다. 이제 가자."



그리고 진짜 전투는 화장실이었다. 바닥에 붙은 오래된 미끄럼 방지 스티커를 떼려다 나는 진심으로 좌절했다. 이 녀석들은 떨어질 기미가 없었다. 게다가 전에 살던 사람들은 한 번 미끄러져서 다치기라도 한 걸까? 집착적으로 모든 바닥 타일에 붙여 놓은 스티커 덕에 이걸 떼는 데만 하루가 꼬박 걸렸다.


헤라와 칼을 들고 허리 굽혀 긁어내다 보니, 이게 집 고치기인지 근력 운동인지 헷갈렸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스티커는 끈질기게 버텼다. 결국 몇 시간을 씨름해 얻어낸 건 지독한 근육통과 비공개 전투에서의 씁쓸한 승리감뿐이었다. 집수리를 시작하고 파스를 달고 살았다.



훗, 여기서 멈출 내가 아니지. 화장실 벽타일과 욕조에 직접 페인트칠까지 했다. 욕조를 그냥 두기엔 낡아서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고 군데군데 벗겨진 곳도 있어서 녹이 슬고 있었기 때문에 기능적으로도 문제가 됐다. 이건 뭐, 물러설 곳이 없어서 일단 후기가 좋은 터비 페인트를 사다 발랐다. 이젠 셀프 집수리에 이골이 나서 이 정도는 수월했다. 새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한 듯 반짝이는 욕조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욕조가 새것처럼 빛나는 걸 보고 있으니 기쁨도 잠시. 욕조와 대비되어 화장실의 다른 곳이 낡은 게 더 눈에 띄었다. 어느새 나는 타일 페인트를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페인트가 오는 그 순간까지 '벽타일은 깨끗한 것 같은데 그냥 둘까?' 생각하며 갈등했지만, 내 손은 이미 페인트붓을 들고 있었다.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기왕 하는 거 조금만 더 하자는 마음이 계속해서 나를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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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이사 전날 저녁까지도 일을 했다.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모든 과정을 끝내고 나니, 손가락은 욱신거렸고 무릎은 계단만 올라가도 비명을 질렀다. 그때의 나는 정말이지 인테리어 업자라도 되는 양, 오늘의 작업이 끝나면 남은 일과 남은 시간을 계산했다. 다음 스케줄이 머릿속에 정리되면 유튜브를 보며 어떻게 작업해야 하는지 공부를 했다. 모든 게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가 없었다.


이때 작업복으로 주야장천 입었던 트레이닝복은 먼지에, 페인트에 이미 처음의 모습을 잃은 지 오래였다(버리기 전에 기념사진 하나 찍어둘걸.) 와, 얼마나 힘들었던 지 이사를 준비하는 두 달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살도 눈에 띄게 빠져서 두 볼이 퀭해졌다.


다른 의미로 이 집도 처음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중간에 다녀 가신 주인 할머니도 여자 혼자 산다고 예쁘게도 해놨다며 좋아하셨다(좋으시겠지). 너덜너덜한 몰골로 깨끗해진 집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나를 갈아 넣어 만든 집이구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난 진짜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겠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 순간 낭만은 없었다. 오직 집념만 있었다. 그리고 그 집념은 나로 하여금 도배를 하게 했고, 데코타일을 벽 모양에 맞춰 자르는 법도 마스터하게 했고, 끈적이는 스티커 제도, 욕조 페인트칠까지 다 해내게 만들었다. 나중에 어디 가서 굶어 죽진 않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의 나는 어디 가서 일당 받고 도배랑 장판 보조 아르바이트쯤은 당장에라도 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사할 때쯤은 너무 힘들었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고, 몸은 온통 고장 난 기계처럼 삐걱거렸다. 그때는 매일이 시간에 쫓겨서 집수리를 완수하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살다 보니 알겠더라. 어떤 작업은 꼭 입주 전에 다 해낼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걸. 천천히 살아가면서 하나씩 해도 괜찮았을 일들도 있었다. 입주 전에 하면 당연히 편한 건 명확하지만, 그렇다고 살면서 못할 일도 아니었는데.


내가 진짜로 이 일로 커리어를 쌓을 것도 아니고, 살지 못할 만큼 어디가 망가진 것도 아니었다. 예쁘고 좋은 집에서 기분 좋게 살아보려고 시작한 일이었을 뿐. 그럼 좀 더 즐기면서 하면 좋았을 것을. 너무 소중한 경험들인데 지금 돌아보니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다. 사진도 제대로 남기질 못했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탓. 페인트칠 좀 늦게 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나는 뭐가 그렇게 조급했을까?



이제는 다짐한다. 앞으로는 집처럼, 인생도 조금 더 유연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고쳐가면서 살아가야지. 조금 늦게 고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니까.


끝까지 버티는 집념도 물론 힘이 된다. 덕분에 나는 쾌적한 집에서 좀 더 빨리 짐을 정리하고 쉴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 고쳐서 마음에 쏙 들고 정도 담뿍 들었다. 그렇지만 때론 미뤄두는 여유도 힘이 된다. 그 무엇보다 나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함을 이제는 안다. 이번엔 집을 고쳤지만, 다음번엔 나를 좀 고쳐야겠다.


하면 된다. 근데 꼭 지금 하지 않아도 된다.



#뚝딱대는구옥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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