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우리 가족은 시골의 작은 단독주택에 살았다. 단독주택은 맞는데 사실 그 공간은 "집"이라고 부르기에도 머쓱한 곳이었다. 생계를 위해 건축업에 뛰어든 아빠는 첫 포트폴리오를 위해 우리 집을 직접 지었다. 형편도 좋지 못했고 경력도 부족했던 아빠의 결과물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웃풍도 많았고 디자인도 독특했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억들이 많았다. 마당에서 돗자리를 깔고 고기를 구워 먹던 기억이나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기억, 난로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던 기억 같은 것들.
작은 마당이 딸린 구옥에 오니 그 시절 생각이 많이 났다. 아마 이 집을 고른 것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도 영향을 끼쳤을 터였다. 그때의 우리 집처럼 이 집도 벽돌로 지어졌고 마당이 있었으며, 창문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웃풍이 있었다. 비록 별을 볼 수 없는 서울의 하늘이지만 많은 것들이 닮아있었다.
이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놀러 왔다. 집을 보자마자 구옥을 이렇게 두면 안 된다면서, 벌레가 들어올 수 있으니까 천장과 벽 사이의 틈을 다 실리콘으로 메우라고 잔소리하던 엄마. "아니, 엄마. 이런 걸 어떻게 알아?" "다 알지. 예전에 저런 틈에서 벌레가 들어온 적이 있어서."
그렇다. 새벽배송은커녕 택배배송 시스템도 지금처럼 훌륭하지 않았던 시절. 시골의 단독주택에서 살았던 엄마는 당연하게도 나보다 이런 일에 잔뼈가 굵었다. 아빠는 추진력이 좋았으나 뒷심은 부족한 사람이었으므로 일단 집이 그럴듯하게 지어지자 그 이후의 관리는 나몰라라 했다. 고스란히 우리 가족 주거지의 유지보수를 모두 떠안았던 엄마. 엄마는 이미 다 겪어본 일이었던 거다.
싱크대 수전이 너무 낡아 호스 사이사이를 비집고 물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을 때 당황하던 나와는 달리 엄마는 침착했다. "원래 그게 오래되면 그래. 집 고치면서 싱크대 수전은 안 갈았었어?"
이 집의 배수 환경에 대해 불평할 때도, 언덕길과 계단을 오르며 짜증 낼 때도, 여름이 되니 득실거리는 모기를 보며 고개를 저을 때도 엄마는 그저 웃었다. 거긴 원래 그런 집이라고. 그 정도면 너무 좋아 보이던데 잘 지내보라고. 엄마는 매번 별 일 아니라고 했다. 나 혼자서도 다 할 수 있다고. 엄마,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신 겁니까?
그런 엄마의 말을 하나하나 듣고 있자니 수십 년 전의 엄마의 삶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여기는 새고 저기는 부서지는 집에서 엄마는 얼마나 고군분투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기에 도움도 되지 않았을 어린 우리를 보면서 얼마나 또 막막해졌을까?
요즘 엄마는 내가 집에 대해 투덜거리면 이야기를 하나씩 꺼낸다. 하루는 집에 큰 벌레가 나왔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옆집 아저씨가 잡아줬었다면서. 처음에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갔을 땐 추위를 많이 타는 엄마는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모른다면서. 그런데 웃풍까지 드는 집이라 몸은 괴롭고 비염인인 나 때문에 먼지는 빼야겠고 늦은 봄까지 내복을 입으면서 버텼다면서.
엄마는 감정표현에 서툰 사람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면 미안한 건지 머쓱한 건지 더욱 속마음을 숨기는 편이다. 그렇기에 더욱 잘 몰랐던 그 시절 엄마의 고충들. 이 집 덕분에 조금씩 알게 되었다. 요즘은 가끔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재미있어서 이미 해결한 문제도 통화하면서 슬쩍 투덜거리곤 한다. 그럼 엄마는 또 한 번 옛날이야기를 꺼내며 조잘댄다. 비로소 그때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요즘이다. 그리고 엄마가 어느 때보다 존경스럽게 여겨진다. 그때의 버거웠을 엄마를 찾아가 토닥여 주고 싶어지는 밤.
#뚝딱대는구옥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