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 살던 사람은 누구인가?

by 이냐니뇨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나보다 앞서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이다(여럿이 살았다고 알고 있다.)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집을 구석구석 고치고 들어왔다. 처음에 집을 보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고쳤다. 이전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주인 할머니가 비협조적인 탓도 있었지만 사람이 살았다고는 쉽게 믿기지 않는 집 컨디션 탓이 컸다. 하나하나 고쳐갈 때마다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바로 내가 들어오기 전에 이 집에서 살던 사람들이다. 대체 집에서 뭘 하면서 살았던 건지 모르겠다.



이 집에는 방이 3개다. 큰 방 하나, 작은 방이 둘. 집을 고치다 보니 방마다 살았던 사람이 성격이 꽤나 달랐던 것 같다(당연한 얘기♪ 당연한 얘기♬). 안방에 살던 사람(들)은 일단 몹시 게으르다. 모기를 많이 잡았던 것 같은데 아마 에어컨이 있어서 벌레 출입이 자유로웠나 보다. 근데 모기를 잡고 도통 치우질 않았다. 벽에 얼룩덜룩 모기의 사체나 사체들이 남긴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내가 셀프 도배를 결심하게 만든 주범이다.


옷방으로 쓰고 있는 다른 방에 살던 사람은 좀 무던한 스타일이었나 보다. 약간 기안84 현실판일 것 같은 느낌. 이 집의 창틀과 문마다 어설픈 솜씨로 페인트를 칠한 흔적이 있긴 했는데, 유독 이 방의 페인트가 자유분방하게 칠해져 있다. 하, 그걸 보양 작업도 없이 했는지 페인트들이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그뿐은 아니다. 장판이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다. 덕분에 장판 시공도 결심하게 됐다. 사실 옷방이라 그냥 흐린 눈 하고 살 지 엄청나게 고민했는데 사려 깊은 친구가 이사 선물로 장판을 사주었다.


마지막으로 지금 취미 겸 손님용 방으로 쓰고 있는 방은, 하, 다시 생각해도 한숨이 난다. 벽에는 못자국이 20개는 있었던 것 같다. 다행히 다 뽑고 떠나갔지만 정말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국들이었다. 그리고 대체 뭐지, 복싱이라도 한 걸까? 아니면 실연의 아픔에 주먹질이라도 한 걸까? 문에 움푹 패인 자국이 어찌나 많던 지. 안 그래도 집이 지어진 이래 한 번도 바꾼 적 없는 듯한 문인데 그걸 이렇게 망가뜨리다니. 덕분에 나는 여길 채우고 칠하느라 퍼티 장인이 되었다.



녹슨 욕조에서 샤워기에 비타민 필터만 끼워진 흔적이며 무너져가는 싱크대와 문이 잘 닫히지도 않는 신발장을 그대로 쓰던 사람들. 멀쩡한 콘센트도 하나 없는데 심지어 그 위에 어설프게 페인트칠을 한 사람들. 현관 문고리는 덜렁거리고(도어락은 있었지만) 도어 스토퍼도 망가졌는데 그냥 살던 사람들. 인터폰도 동작 안 한 지 오래에다 수화기는 떨어져 버린 채로(그들이 떼었는 지도) 살던 사람들.


아직도 조금씩 집을 다듬어가다 보면 자연인처럼 살던 이전 사람들의 흔적이 눈에 띈다. 이제는 꽤나 익숙해 져서 가볍게 웃어 넘기며 산다. 그래도 좀 신기하다. 살기 불편하지 않았을까 싶고. 아니면 나보다 많이 무던해서 이런 건 잘 안 보였는 지도 모르겠다. 여러 모로 궁금해지는 사람들이다.



KakaoTalk_20250926_213531067.jpg
KakaoTalk_20250926_213636460.jpg
디테일을 볼 수록 참 황당했던 집안 상태.



처음에는 이런 걸 볼 때마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이 집을 이 꼴로 만드나, 싶어서 원망스러운 순간이 얼마나 많던지. 그런데 뭐, 이 사람들도 내가 이 구옥에 살면서 생각하듯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예쁘지만 좀 더 깨끗하고 쾌적한 곳에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설픈 손길로 페인트를 덕지덕지 칠해둔 거 아닐까? 그리고 예쁘게 사는 것만이 답은 아니니까 뭐, 즐겁게 살았겠지. 어떤 사연으로 이 집에서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좀 집을 깨끗하게 쓰면서 살고 계셨으면 좋겠다.



#뚝딱대는구옥살이

keyword
이전 07화호구와트 입학 지원서